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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길


BY 개망초꽃 2006-02-15

산을 향해 갈때마다 하루전날부터 걱정과 설레임이 교차된다.

오늘은 어떤 산 길가에서 빠른 걸음으로 헥헥거리고,

어떤 바윗길을 올려다보며 가슴이 발랑발랑 뛰고,

능선 길을 걸으며 숨찬 가슴을 진정하며 긴 세상을 보게 될 것인가…….


길을 걸어갈 때마다 그 길은 평탄한 길로만 접어드는 것은 아니다.

그게 세상길이든, 산길이든, 마음길이든, 몸길이든

평화롭고 판판하고 거침없는 길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뭣 빠지게 달려 갈 것만 같은 고속도로도 가끔은 오줌보가 터지게 막힐 때가 있다.

지루하지 않아서 국도가 고속도로보다 좋지만 국도라는 것은

짧은 길을 돌아가야 하는 단점과 울컥 멀미를 나게 하는 나쁜 점이 있다.

산모롱이를 지나면 마을이 그림처럼 나타나고 굽이쳐 흐르는 물길이 국도의 좋은 점이다.

비포장 길은 자연 그대로라서 아름답다. 아스팔트 때가 묻지 않아서,

시멘트 독이 없어서 비포장은 자연이다.

다만 느려터지고 흙먼지를 뒤집어쓰는 걸 감수해야한다.


서울 근교 산을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마다 가는 편이다.

이번 주는 수락산과 불암산을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산을 왜 가냐고 묻는다면 오르고 내려오기 위한 거라면 

누구나 다 아는 대답이라서 장난 하냐고 하겠지만

내가 산을 가는 이유는 산이 좋아 산을 보기 위해 산에서 살고 싶어 간다.

산에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다 때려치우고 산에서 살고 싶다.

때려치울 것도 별로 없으면서 나는 용기 있게 때려패지도 못하고

도시에서 살면서 일주일에 한두 번씩 산에 가서 하루를 살다 온다.


산길을 걸으면 숨이 차서 남들보다 느리게 올라가고,

다리가 터질 듯 아파서 에구에구 앓는 소리를 한다.

다른 사람들은 몇 년씩 산에 다니다보면 숨도 덜 차고 다리도 아프지 않다는데

이 년의 몸뚱이는 풀로 붙였는지, 노화가 빨리 찾아 왔는지 갈 때마다 숨을 할딱이고

다리가 말을 듣질 않는다. 항상 꼴찌 산행을 한다. 걷는 것도 꼴찌. 바위에서도 꼴찌,

먹는 속도도 꼴찌, 장비를 챙기는 것도 꼴찌, 거북이나 달팽이가 따로 없다.

이거원...내 스스로가 느림보임을 인정합니다. 쾅쾅쾅.


이번 산행은 눈이 많았다. 하얀 눈길을 밟으면 눈이 신음하는 소리를 듣게된다.

눈길을 걷다보면 햇볕에 마른 마른길이 나오고,

마른길이 끝나는 지점에 눈이 그렇게 신음소리를 부끄럽게 낸다.

바람을 막아주는 바위 밑에 앉아 뜨거운 차 한 잔과 과일 한 조각씩을 물고 담소를 나누며

멀리 상대편 산을 본다. 마주보는 산은 내게 경쟁상대가 아닌 나를 달래주는 대상이 된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모순투성인 세상이 아닌, 멀리 마주보는 산은 벗이 된다.

떠들고 웃어주고 눈물 흘려주는 서로 벗이 되는 것이 저 건너 산이고,

이쪽에 있는 내가 오른 산이다.

건너 산은 햇볕이 오래 머물지 못한 산이라서 눈이 덮여 있었다.

사이사이 겨울 활엽수 나무는 육십쯤 된 머리카락 같다.

늙어 하얗게 바랜 머리카락사이에 아직은 늙기 싫은 까만 머리 활엽수 나뭇가지들…….

나는 왜 뜨거운 차 한 잔을 마시며 마주보는 건너 산을 보며

늙은이의 머리통을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요즘 들어 부쩍 흰머리가 많이 돋아나서 그런 건 아닐까,

아니면 한 살이 보태져서 그런 걸까…….


바다보다는 산이 좋다.

누군가 바다가 좋으냐, 산이 좋으냐, 물어보면 난 일률적으로 산이 좋소, 했었다.

산이 좋아서 산에서 태어나 산에서 자라 산으로 돌아가고 싶소, 했었다.

어떤 길이 좋으냐고 물어 본적은 없지만 탄탄하게 뚫어져 있는 고속도로보다는

국도를 달려가고 싶소, 국도 보다는 비포장 흙길이 난 걷고 싶소, 

흙 향기나는 길보다 더 걷고 싶은 길은 산을 돌아가는 오솔길을 걷고 싶소, 라고 할 것이다.


토요일 수락산 산길은 내가 꼬랑지였지만 솔내음 나는 오솔길과,

멋들어지게 생긴 바윗길과 간드러진 눈의 신음소리가 어우러진 지루하지 않은 산길이었다.

일요일 불암산은 초보자가 나타나는 바람에 꼴찌에서 두 번째라 부담은 줄어들었지만

초보자 보다는 잘해야 겠다는 부담이 보태졌다. 그러니까 그것이 그거라고 보면 된다.

불암산 산길은 왜 그런지 수락산보다 힘들고 무서웠다.

왜? 그 전날 무리한 뒤풀이 때문인 듯. 뒤풀이? 산행 후에 몸 푸는 세상살이 시간.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