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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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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BY 은하수 2006-02-10

셋째 이야기

 

옛날에 엄마는 네가 아들이었으면 더 안 낳았을 거다 하고 내게 말씀하시곤 하였다.

그러면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 때문에 엄마가 고생을 더 하는 것 같아서였다.

둘째가 태어났을 때 나는 아직 두 돐밖에 안된 어린 아이였기에 특별한 기억이 남아있는 건

없다. 하지만 내가 초미의 관심권 안에서 어느날 갑자기 밖으로 밀려났음을, 내가 받던 사랑

이 팍 줄었음을 피부로 어렴풋이 감지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 때가 동생을 본 때가

아니었나 싶다. 아직 어린 아기의 마음에 담겨야 했던 영문모를 쓸쓸한 그 감정이 지금도 느

껴진다. 풍선을 손에 들고 놀던 아이가 문득 풍선이 터져있는 걸 발견했을 때 그런 마음이 들

라나?

셋째가 태어났을 때 난 네 돐을 넘긴 나이였다. 하지만 그 땐 동생을 봐서 서러운 마음이 들

었다기 보다 엄마의 안타까움이 어린 내게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어른들은 제어할 수 있는

이성이 있었지만 내게는 그런 방어능력이 없었기에 집안에 깔린 무거운 분위기만이 더 증폭

되어 온몸으로 전해져 왔다. 셋째로 아들이 태어나 주길 간절히 바랬건만 딸이 태어났을 때

당시 엄마를 포함한 집안 어른들의 실망감은 지금 생각해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섭섭해 했던 것 같다. 엄마는.

새 생명의 탄생으로 당연한 축제 분위기는 고사하고 딱 초상집 분위기였다. 삼수생이었던 엄

마는 또 낙방의 고배를 마신 것이었다. 셋째는 그렇게 집안의 섭섭이, 천덕꾸러기로 태어났

다.

내가 초등 2학년 겨울방학 때 엄마는 마지막 필사의 도전을 했다. 그리고 드디어 오랜 기다

림 끝에 찾아온 성공의 달콤함을 맛보았다. 엄마는 세상을 얻은 듯한 기쁨을 누렸던 것 같다.

난 기억에 없는데 엄마는 누나인 우리에게 막내동생이 귀엽다면 아기똥을 찍어 먹어보라는

주문도 했었단다. 엄마의 얘기에 난 속으로 경악을 했었지만 당시 엄마의 기쁨과 막내동생에

대한 사랑이 어느정도였는지는 알 것 같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