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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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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야지 하면서도


BY 동해바다 2006-01-18


      싼게 비지떡이란 말이 영락없다. 
      그리 질척거리지도 않은 거리를 얼마 걷지않아 벌써 느낌이 축축하다. \'헐값으로 산 물
      건이 다 그렇지 뭐\' 혼자 투덜거리며 걷는데 운동화 밑창으로 새어 들어오는 물기때문에
      발이 시렵기 시작한다. 

      간헐적으로 내리는 비를 맞으며 오랜만에 혼자 얕은 산을 찾았다. 늘 말동무가 있어 심
      심치 않았던 산책길, 오늘은 조금 늦은 시각 비오는 날의 유희를 만끽하고 싶었다. 그런
      데 산에 도착하기 전부터 젖어버린 운동화가 어쩐지 껄쩍지근하다. 특별히 애착이 가는 
      물건도 아니건만 아깝다는 이유 하나로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 오늘은 당장 쓰레기통 속
      으로 직행시켜야 할 것 같았다.

      
       

      
      비는 고사하고 한겨울 내려야 할 눈조차 볼 수가 없어 온 대지가 너무 메말라 있었다. 때
      마침 봄비처럼 내려주던 단비에 만물이 촉촉히 젖어 폴폴 날리던 산속의 먼지를 잠재우
      고 있다. 차가운 기운이 피부에 와 닿는다. 숲속에 깃들어 있는 바람소리와 울울한 해송
      의 아늑함에 어수선했던 마음이 절로 내려 앉는다. 마른 쓸쓸함이 솔잎을 모아 융단을 
      만들어 내려앉아 있다.언제나 찾아와 맡는 익숙한 숲 속의 향이 오늘은 푹 젖어 색다른
      느낌을 전해 준다. 참 좋다.

      경사진 숲길을 오르내리며 축축했던 발도 어느새 뽀송뽀송해진 듯 했다. 잠시 불편함으
      로 버려야 한다는 짧은 생각이 절약을 핑계삼아 이내 거두어 버리고 만다. 결국 운동화
      의 생명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보송보송한 발이 말해주고 있다. 우리의 일상은 이렇게
      아름다운 궁상을 떨며 메우는 게 아닌가 싶다.


       


      버리고 싶은 것들....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 중에 버려야 할 것들이 무척이나 많다. 유행지난 옷가지와 신발, 
      그외 붙박이처럼 박혀있는 가구 속에 들어있는 쓸모없는 나의 떨거지들, 무용지물일 수 
      밖에 없는 내 삶의 편린을 가장하고 부동의 자리에서 간택될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손
      에 잡히는 순간 그것들은 나와 이별을 고하는 아픔을 겪을텐데 말이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아온 세월 22년, 참으로 욕심없이 살아왔다고 자부할 수 있
      다. 살면서 일어나는 마찰음에 찢어지는 아픔도 감당하며 살아왔다. 바람 앞에 놓인 촛
      불처럼 언제나 불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 과연 내가 진정으로 버려야 할 것들이 있
      다면 무엇일까. 
      욕심? 이제 내겐 버려야 할 그 어느것도 없다. 마음도 비우고 온갖 욕심 모두 버렸다. 그
      럼에도 힘이 들다. 가벼운 깃털하나 어깨에 올려놓고 \'무겁다 무겁다\' 주문을 외면 그 깃
      털이 쇳덩이처럼 무겁게만 느껴진다. 힘들다고 생각지 말자 나 또한 그리 읊어보지만 껌
      딱지처럼  붙어 살고있는 동반자에게서 나는 그만 지쳐버리고 만다. 
   
      세월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그 세월을 등지고 지나가는 것이라고 한다. 이대로 멈추었으
      면, 빨리 지나가 버렸으면 하는 마음으로 몸을 맡긴다. 가끔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 소중
      한 가정마저도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세월이 약이라는 흔한 말처럼 아늑한 보
      금자리로 자리매김질될 때면 모든 것을 잊고 만다. 아니 잊는 것이 아니라 잊으려 애쓰
      고 살 것이다. 순간의 오판이 섣부른 불행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겠구나 하곤 내 자신을 
      힐책하곤 한다. 하지만 배부른 자의 볼멘소리랄까 정말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항변을 해
      본다.

      작은 새들이 어디에서 모여 들었는지 분주히 나무 위로 날아다니며 짹짹거린다. 새를 보
      다 올려다 본 하늘, 잔뜩 찌푸려 검은 구름으로 가득한 하늘이 웬지 반가워 목이 아플 정
      도로 한참을 바라 보았다. 주룩주룩 내릴 비를 맞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비만 내
      려 준다면 원없이 맞아주리라. 인기척 소리에 뒤돌아 보니 젊은 부부가 올라오고 있었
      다. 조용한 숲속에 혼자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내 모습이 이상했음인지 앞서가면서 힐끔 
      쳐다본다. 야릇한 기분에 천천히 뒤따라 산길을 걸어갔다. 키작은 잡목사이 빨간 열매들
      이 매달려 있다. 물기에 젖어 영롱한 빛을 더해 준다. 

      몇 년 동안 다니던 익숙한 길에 사람들은 싫증이 났는지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내고 있었
      다. 소나무 한 그루를 사이에 두고 양갈래 길이 나 있다. 한사람 두사람 밟을수록 길은 선
      명하게 형태를 갖추고 사람들은 순간 길 앞에서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인다. 멈춰서서
      고민할 필요도 없는 갈래길에 여지없이 폭신한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 모두가 장애없는 
      평탄한 삶을 원하는 이치이리라.

      야트막한 산 위에 다다르니 비 내리는 날의 바닷가와 잿빛 구름으로 포옥 뒤집어쓰고 있
      는 먼 산이 마주보고 있다. 맑은 날 풍경 못지않게 회색빛 차분한 밑그림이 나를 끌어당
      긴다. 전망좋은 위치에 놓인 나무의자가 물기를 안고 한 남자의 운동 파트너가 되어 있
      다. 온 몸으로 애무하다 옷 여미고 떠나는 남자의 뒤를 이어 나도 그 젖은 의자에 발을 올
      려 놓고 느슨해진 운동화 끈을 동여맨다.
      우리들에게 더없는 휴식공간을 만들어 주고 있는 숲 속의 쉼터, 삶의 한 토막이라도 이 
      자리에서 정리되고 미련없이 버릴 수만 있다면 헐거워진 마음의 무게는 깃털보다 더 가
      볍게 느껴진다. 되돌아가는 길, 가느다랗게 내리는 실비가 이 겨울 이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돌아와 나는 다시 어정쩡한 삶의 수레바퀴 속으로 풍덩 잠수하고, 버린다던 운동화는 세
      제 풀어 놓은 미지근한 물 속에 이미 잠수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