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가 간다.
많다면 많은 날들을 살면서, 가장 힘이 들었던 한해였다.
지천명의 나이는,
어떤 일이라도 수용을 할 수 있는 나이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난 수용할 수 없는 일들로 올해의 마지막날에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난 너무 교만 하고 철이 없고, 더 낮아져야 하기 때문에 아직도
더 감당해야 한다면 잘 견디어 보리라 생각한다.
오십줄로 들어서던 첫해에는,
이제 뺄셈을 하는 나이가 되었노라고, 남을 위해 살겠다고
결심도 했었다.
아이들은 모두 성인이 되었고, 우리 부부는 앞머리가 희끗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직은 밖에 나가면 젊다는 말을 듣기도 하고,
남편의 손을 잡고 길을 걸을 때면 아직도 연인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을 보면 난 아직도 수줍음이 남아 있는 여인네인데.....
올해 첫날 담임 목사님의 축복 기도를 받던 그 시간부터
기억을 더듬어 보면,
참으로 힘든 시간들이 많았다.
그는 계속 일이 풀리지 않았고,
우연인지,오래전 그와 처음으로
만나 연인이 되었던 그 봄날 기념일에 난, 직장을 갖게 되었다.
아침이면 뛸듯이 일어나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하고 붐비는
지하철에 몸을 실으며, 새삼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의식도
갖게 되었고, 바쁘게 사는 현대인의 대열에 나도 당당히 끼어
살게 되었다는 자부심도 생겼다.
허나, 만만치 않은 회사일은 상당한 부피의 스트레스를 가져왔다
여유있게 책을 읽는 다거나, 음악을 듣는 다거나, 친구들과
늘어지게 수다를 떨며 여행을 한다는 따위의 일들은 나와 거리가
먼 일이 되어졌다.
난 바쁘고 바빠졌고, 피곤에 지쳐 집에 오면 거실 쇼파에 쓰러져
버리는 저녁이 많아졌다.
그러나,
아침마다 난 새로워지기 위해 노력하고, 화장하고 꾸미며
회사에 가면서 작은 즐거움을 느끼기도 한다.
찬란했던 나의 인생의 봄날은, 분명히 다시 오리라는 희망을
가져 보며.....
찌는 듯이 무덥던 그여름의 고비에 우리는 산밑에 자리잡은
이곳 현대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거실에서 산이 보인다는 대단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우린 계속
마음에 여유를 갖지 못했다.
집 평수가 줄었다는 것은 이유가 되지 않았고,
바쁘다는 이유가 있었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큰 이유를 우리는
갖고 있었다.
아빤 아빠대로, 아들은 아들대로 주말알바와 막바지의 공익생활
을 힘들어 했고, 작은 딸은 딸대로 야근과 철야 작업의 바쁜
회사에 힘들어 했다.
큰딸은 박사 마지막 학기와 일이 많은 평가원일에 디스크가
왔고, 가정생활도 힘들어 했다.
그앤 세찬바람이 부는 추운곳에 서 있다.
내년에 고대와 세종대 강의를 맞게되는 기쁜일도, 박사를 수료한
대견함도 단순히 기뻐할 수 없게....
난 아무 도움을 줄 수가 없다 .
그것은 더 내게 짐이 되어 괴롭힌다.
엄마의 힘듬은 뒷전으로 밀릴정도로 우린 자신들의 자리에서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다.
올해는 단풍이 아름다웠다. 산을 보며 지내기 때문에 그아름다움
을 더 가까이 느끼며 살았지만,
우리의 감정은 늘 까칠하고 메말라지기만 했다.
유난히 추운 겨울이 계절과 함께 슬픔이 되어 우리에게 왔다.
눈에 눈물을 달고 지내는 날이 많았다.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달고 다니는 시간들이 많아 질 수록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까짓것 쯤이야.....
그래서 우린 강해지고 있다.
난 주위를 풍요롭게도 윤기 있게도 할 수 없는 능력없는 여자
이다. 그 자신없음은 올해 내내 나를 따라 다니며 괴롭혔다.
좀더 능력 있는 여자가 될 수는 없는걸까?
정말,
빨리 가버려라! 2005년! 라고 수도 없이 뇌이던 올 한해!
잘가거라~ 그리고 나의 남은 날들 동안 올해 같은 해는 다시는
오지 말아다오!
몇시간 후면,
많은 기도 제목을 가지고 송구영신 예배를 보러간다.
그러나,
나에겐 희망이 있다.
하나님의 사랑이 있고, 누구보다 뜨거운 사랑으로 사는 가족이
있으니까......
우리의 사랑은 모든것을 이길 수 있을 정도로 깊고 깊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