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1박2일의 즐거운 송년모임을 마치고 돌아와 잠시 쉬고 있을 즈음
조카의 울음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전해졌다.
\"숙모, 아빠가 쓰러지셨어요. 빨리 올라오셔요\"
하나 밖에 없는 형, 집안의 기둥이자 남편에겐 큰 버팀목이였던 시아주버님의 소식을
접한 시각이 지난주 일요일 저녁 7시 40분 경이었다.
피곤해 잠시 잠을 자고 일어나니 남편은 어디를 갔는지 없었다. 급히 찾아보니 친구들과
술한잔 하고 있었다.
서울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차를 끌고 갈 수도 없고 해서 택시를 대절하였다.
하숙하는 아들에게 전화하여 병원 응급실로 보내고 이곳저곳 친척들에게도 소식을 전하였다.
부디 깨어나기를 기원하면서...
어두운 고속도로 위를 질주하고 있을 무렵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큰아빠 조금전에 돌아가셨어.\"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말도 안돼, 이럴수가, 어떡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지금 이 시간 벌어졌지만
정말 인정할 수가 없었다.
술 취해 옆에 앉아있는 남편은 긴 한숨만 내 쉰다.
재작년 11월 말경,
작은시누 남편은 간암말기 판정을 받고 3개월만에 저 세상으로 떠나 갔다.
투병하는 시어머님의 병구완으로 강릉까지 오고가며 많이 지쳐 있을 무렵 들었던
부음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3월,
작년 3월 새 생명이 움트기 시작하는 계절 앞에서 시어머님은 10년동안
앓고 계시던 만성신부전증으로 그 명을 다 하고 말았다.
어머님 첫 제를 올리고 한 해가 스러져갈 무렵 들려온 형의 사망 소식....
이 무슨일인가...
아니 우리 집안에 무슨 원한이 맺혀 있기에 3년동안 내리 초상이 벌어진단 말인가.
병원 응급실에서 아주버님이 몸담고 있었던 학교의 부속병원으로 시신을 옮긴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올겨울 들어 가장 추웠다는 서울의 일요일...
아주버님은 점심을 집에서 드신 후 곤하게 오수를 즐긴 다음 인사동에서 저녁
모임이 있다고 나가셨다고 한다.
곧이어 쓰러져 병원으로 옮겼다는 소식을 접하고 부리나케 아이들과 함께 종로의 한
병원 응급실로 달려간 모양이다.
고혈압으로 잠깐 몇번 쓰러진 적이 있기에 그정도에서 그치려니 생각했던 것이 오산이었나..
그후로 아주버님은 말 한번, 눈한번 떠보지 못하고 영영 이 세상과 이별을 하고 만 것이다.
이 얼마나 허망한가...
이렇게 억울할데가 어디 있는가...
어디에 가서 하소연 한단 말인가.
54세의 나이...
30세 젊은 나이에 대학교수직을 맡으면서 파란을 겪고 딛고 일어서 각계 신망을 두터이
만들어 오신 분...
큰소리로 자식자랑하던 어머님의 기세를 더욱 올려주셨던 분....
형은 그렇게 황망스럽게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이제 홀로남은 형님과 27, 24세의 조카들...
남은 자들은 살아남게 마련이라 말하지만 그들의 아픔을 누가 대신하겠는가.
빈소에서 마주친 형님을 보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뜻밖의 소식에 빈소를 찾아오는 조문객들...
눈이 휘둥그레, 입이 벌어져 말 못하는 사람들...
함께 모임장소에 있다가 변을 당하여 당황해 하던 이들...
이 모두가 아직도 믿기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신없이 보낸 병원에서의 3일을 보내고
모든 식구들이 이곳으로 함께 내려와 5일장을 치루고 오늘까지 북적거리다 모두 올라갔다.
장지는 이곳 동해바다 양지바른 부모님 산소 아래...
산 사람만이 묘소 앞에서 가슴아린 예를 치루고 다시 일상 속으로 돌아와 떠들어댄다.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가 현실을 직시할 때 비어있는 허허로움을 느낄 것이다.
남편과 형, 두 누이들....
모두가 홀로 남았다. 우리만 빼고....
젊은 나이에 과부만 셋인 집안이 되어 버렸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