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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롱잔치, 두 가지 이야기


BY hayoon1021 2005-12-16

 

어제 어린이집 재롱잔치가 있었다.

의상비 명목으로 7만 원이란 거금을 낼 때는 손이 떨렸지만, 그래도 형제가 나란히 한 무대에 서는 건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아깝지 않은 투자였다.

오후 4시부터 시작이라 3시 40분쯤에 갔는데, 벌써 앞자리가 다 차 있었다.  구조를 보니 제일 앞 한두 줄 말고는 어디에 앉아도 남의 뒤통수만 보게 생겼다. 집도 가까우면서 미리 그런 계산을 하지 못한 내가 어리석어 보였다. 그나마 중간쯤에서 비디오 촬영하는 사람 바로 옆에 자리를 잡은 건 다행이었다. 설마 비디오 촬영을 방해하면서까지 앞을 가로막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사회자의 신신당부에도 불구하고 자기 아이 순서가 되면 이성을 잃고 달려 나가는 부모들은 여전히 있었다.

허리를 기역자로 구부리거나 기어서라도 맨 앞으로 나가, 기어이 자기 아이한테 손을 흔들고 사진을 찍는 엄마들을 나는 멍청하게 바라보았다.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도 순간적으로 벌떡 일어나거나 카메라 든 팔을 번쩍 치켜들었다. 내 뒤에 앉은 여자는 처음부터 자리가 뭐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냐는 둥 자기 아이는 키도 작은데 뒷줄에다 세워 놓았다는 둥 쉬지 않고 불만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자기 아이한테 보내는 환호성도 어찌나 큰지, 오죽하면 같이 온 일행이 주의를 줄 정도였다. 난 겁이 나서 그 여자 얼굴을 끝내 쳐다보지 못했다. 강당 안은 아이들의 재롱보다 부모들의 섬뜩한 열정으로 더 달아올랐다.

남편도 나도 엉덩이를 들썩거리기는 했지만, 끝내 나가서 사진을 찍지는 못했다. 우리만 바보 된 것 같아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태연한 척했다. 사실 이해 못 할 것도 없었다. 내 자식의 예쁜 모습을 가까이서 보고 싶고 사진을 찍고 싶은 것은 부모로서 당연한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악착을 떨지 않고 느긋하게 앉아 있는 우리 부부가 좀 이상한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런 중에도 재롱잔치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우리 아이 순서가 되면 전신은 아니더라도 얼굴이라도 보려고 안간힘 썼다. 내 앞에 앉은 덩치 큰 아저씨와 두 칸 앞에서 아예 서 있는 꼬마들의 틈새를 잘 겨냥하면, 겨우 얼굴은 볼 수 있었다. 오늘은 이걸로 만족하고 나머지는 비디오로 보자고 스스로를 달랬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말할 수 없이 편해졌다.


그런데 눈에 거슬리는 게 또 있었다. 바로 행사 중간 중간 진행하는 행운권 추첨이었다. 난 기분이 팍 상했다. 지난 10월, 가을소풍 때의 악몽이 떠올라서였다.

그때 처음으로 아이들 소풍에 따라갔다. 원에서는 이벤트사도 부르고, 선물도 많이 준비하는 등 꽤나 신경 쓴 티를 냈다. 하지만 그런 요란스러운 소풍이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조용한 가을풍경 속에서 김밥도 먹고 낙엽도 주우며 아이들과 추억을 만들고 싶었던 내 기대와는 딴판으로 흘러간 소풍이었기 때문이다.

버스도 엄마랑 아이들이 각자 타고 간데다 처음만 잠깐 전체 놀이를 했을 뿐 애들 따로 엄마들 따로 소풍이었다. 게임과 노래와 춤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금방 피곤이 몰려 왔다. 다들 하니까 시키는 대로 즐거운 척 참여는 했지만, 도대체 누구를 위한 행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진행자가 사이사이 선물을 나눠 줬다. 근데 그 기준이 한 마디로 진행자 맘 대로였다. 게임에 이겨서 주는 건 이해가 가는데 박수를 크게 쳤다거나 제일 신나게 웃었다거나 엉덩이를 섹시하게 흔들었다는 등의 이유로 선물이 주어지는 건 수긍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첨엔 기분 좋게 시작한 선물 증정이 나중에는 엄마들 사이에 묘한 경쟁심을 불러일으켰다. 마지막엔 다들 기를 쓰고 덤벼들었다.

선물 받자고 소풍에 참석한 건 아닌데, 진행자는 모든 초점을 선물에 맞추고 있었다. 이번에 잘 하면 큰 거 나갑니다, 하는 식으로. 큰애는 엄마도 선물 한번 받아 보라고 등을 떠밀었다. 아들이 그러니까 갑자기 무능한 엄마가 된 것 같아 더 화가 치밀었다. 열심히 게임에 참여해도 안 되는 걸 어쩌란 말인가?

나처럼 한 개도 못 받은 엄마가 있나 하면 2개 3개씩 받아간 엄마들도 있었다. 결국 어린이집을 원망했다. 선물 같은 거 처음부터 없었으면 기분 나쁠 것도 없었다. 아니면 한 사람이 한 개 이상의 선물은 못 가져가게 규칙을 정하든가 해서, 좀 더 골고루 돌아가도록 신경 썼어야 했다. 특히 평소 눈에 가시였던 여자가 참가 상까지 쳐서 선물을 4개씩이나 끌어안고 갈 때는 솔직히 배 아파서 혼났다. 그 후유증은 며칠 갔다.

그런데 재롱잔치에 와서 또 그런 꼴을 봐야 하다니, 어찌 화가 안 날 수 있나! 더구나 두 칸 앞자리에 앉은 한 가족은 꼬마 둘이 계속 일어서 있는데다, 여자는 한껏 카메라를 치켜 올려 사진 찍기에 바빠 뒷사람들은 안중에도 없었는데, 그 집이 선물까지 뽑히다니! 세상은 이래저래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롱잔치가 막바지로 갈수록 슬슬 피곤해졌다. 우리는 애가 둘이라 한 명인 집에 비해 볼거리는 많았는데도 이것저것 신경 쓰다 보니 더 지쳐 버렸다. 이제 행운권 추첨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난 아예 관심도 없었고 기대도 하지 않았다. 어라, 그런데 내 번호가 불렸다. 선물을 받고 들어와서도 믿어지지 않았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더 놀라운 일은 곧이어 남편도 뽑힌 것이었다. 나는 얼른 나가라고 남편 옆구리를 찔렀다. 남편도 얼떨떨한 모양이었다. 행사가 다 끝나고 현관에서 애들을 기다리는데, 남편은 선물을 들고 있기가 멋쩍은지 자꾸 나한테 넘겼다.  나도 두 개씩이나 들고 있기는 쑥스러워서 거절했다. 아는 사람들이 두 개나 걸려서 좋겠다고 말을 걸어왔다.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두 놈을 찾아서, 얼른 사람들 사이를 도망치듯이 빠져나왔다. 집에 오자마자 애들은 선물부터 뜯었다. 길쭉한 밀폐용기와 젤리 한 통이었다. 애들은 신나게 젤리를 까먹고 있는데, 난 어쩐 일인지 마음이 안 편했다. 비닐에 젤리를 담았다. 위층에 큰애와 한 반인 여자아이가 있는데, 그 집에라도 좀 나눠줘야 할 것 같았다.

그러다가 말았다. 줄 거였으면 진작 아까 하나를 주고 왔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옆 동에 사는 수정이가 초등학생 언니 손을 잡고 집에 오고 있었는데, 걔 손에 하나 쥐어 줬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면 이번에 큰애한테 양복을 빌려준 한 반 친구한테 그걸 줬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온갖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문득 이놈의 걸 왜 받아서 이리 마음고생을 하나 싶었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안 받고, 약올라하는 게 훨씬 마음 편하다는 것을. 내가 뒤늦게 선물 하나는 양보했어야 한다고 아무리 후회한들, 그건 이미 가식에 불과하다. 남편 번호가 불리고, 머뭇거리는 남편의 옆구리를 쿡 찔렀을 때, 나는 벌써 선물에 눈이 먼 여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다음부터는 절대 공짜선물 따위 기대도 안 할 것이고, 받아 가는 사람 샘내지도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