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이모가 세분 계시다. 제일 큰 이모는 원주에 살고 계시고, 넷째이모와 막내이모는 서울 화곡동쪽에 살고 계시다. 난 유달리 이모들과 절친하다. 이모들과 함께 외갓집에서 어린시절을 보내서 그런지 이모는 엄마 같고 언니 같고 친구 같다.
특히 막내이모랑은 나이 차이도 일곱 살밖에 나지 않고, 성격이나 좋아하는 취미가 비슷해서 친언니나 마찬가지고, 속내를 다 보여 줄 수 있는 친구이기도 하다. 엄마에게 할 수 없는 얘기를 막내이모에겐 할 수 있다. 친구에겐 자존심 때문에 숨기게 될 일도 막내이모에겐 털어 놔도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다. 경쟁의식도 없고, 시기도 없다.
장사할 땐 장사한다고 시간이 나질 않았고, 서점에 다닐 땐 출근하는 시간을 맞추다보니 이모들과 여유 있게 지낼 시간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전화나 하고 집안에 큰 행사가 있어야 얼굴을 잠깐씩 보게 되었는데, 졸지에 실업자가 되다보니 이모랑 전화 통화도 자주하고 이모네 집에도 다녀왔다. 그리고 올 해 95해를 사신 외할머니께서 넷째이모네 집에서 겨울을 보내신다고 춘천에서 올라와 계셔서 겸사겸사 넷째이모네 집엘 갔다.
넷째이모는 오동통한 편이다. 성격이 활달하고 붙임성이 좋아서 길가는 누구하고도 이웃친구가 되어 금방 떠들고 웃고하는 수더분표 아줌마다. 옷집이 맘에 들면 동네사람 다 데리고 가서 옷을 팔아주고, 미장원이 맘에 들면 산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을 데리고 미장원으로 달려가는 별 이득이 없어도 이사람 저 사람에게 나눌줄 아는 후한 인심을 가졌다. 그리고 처녀 적엔 시를 써서 당선도 된 감성이 풍부한 산골처녀였다. 엉덩이까지 오는 긴 머리를 닿고 다니는 긴머리소녀이기도 했다. 통통에서 날씬이로 살을 빼려고 산을 오가는 길에서 그 겨울의 찻집을 소리 높여 부르는 젖가슴도 감성도 풍만한 여인네이기도 하다.
막내이모는 꽃과 동물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고 한다. 아파트 일층에 살면서 화단에 갖가지 꽃이 피고 지는 동네에서 유명한 꽃순이다. 개 한 마리를 항상 끌어안고 다니고, 동네 떠돌이 고양이를 화단으로 불러 모아 먹이를 주는 고양이 엄마이기도 하다. 어디를 가도 예쁘다는 말을 인사로 듣는 예쁜이 이모다. 옷도 공주처럼 예쁘게 입고, 살림도 동네에서 최고로 윤이 나게 깔끔하게 해서 결백증이 있기도 하다. 요즘 하루 일과는 산에서 살고 있는 개를 보살피려고 매일 산에 가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라고 한다. 산에 가서 밥과 물을 주고 한참씩 놀아주다가 내려온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나랑 성격이 잘 맞아서 전화통을 잡고 한 시간씩 수다를 신나게 떨어주는 친구같은 막내이모다.
넷째 이모네 도착하니 외할머니가 내 이름을 부르며 반겨주시고, 막내이모는 막내이모네 개 체리와 함께 벌써 와 있었다. 개 두 마리가 동시에 반겨준다. 또 한 마리는 넷째이모네 개 우피다. 우피골드를 닮았다고 해서 개 이름이 우피인데, 외할머니와 살아온 인생살이가 비슷해서 언제 저세상으로 갈지 모르는 늙을 대로 늙은 개다.
외할머니는 올 해까지 살면 아흔다섯이라는 해를 사시게 된다. 막내 이모 말마따나 나이 구십이 넘으면 산 년이나 죽은 년이다 똑같다고 한다. 외할머니는 이 말을 듣고 같이 웃으신다. 나이 오십이 넘으면 예쁜 년이나 못생긴 년이나 똑같고, 나이 육십이면 못배운년이나 배운 년이나 똑같다고는 말이 있듯이, 외할머니는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연세이시다. 그래도 아직 총명하셔서 농담도 잘 알아들으시고 같이 웃으신다. 기억력도 그대로고, 귀도 눈도 먹지를 않으셨다. 연속극도 이해를 잘 하셔서 연속극 보는 재미로 사신다고 한다. 식사도 잘 하시고 소화도 잘 하셔서 화장실도 잘 다니신다. 다만 치아가 없으셔서 무른 것만 드신다. 인절미와 귤을 좋아하신다고 해서 인절미와 귤을 사가지고 갔다. 날 보자마자 우리 아이들 안부를 물으시고 올 해 집을 샀다며 잘했다 잘했다 하시며 칭찬을 해 주셨다. 뼈밖에 안남은 할머니 어깨를 주물러 드리는데 몸에서 구린네가 났다. 노인네 냄새라고 이모가 얘기해 주었다.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음이 겉으로 맡아진다. 사는 것이 늙고 죽는 것인데, 사는 것이 별 것이 아닌데...내가 뭘 해서 아이들과 먹고 사나 한숨을 쉬었더니, 이모들이 고생 너무 하지 말고 살라고 한다. 신경 많이 쓰지 말고, 편하게 살라고 한다. 집도 있고, 상아아빠가 있고, 착한 아이들이 있는데 큰 걱정 하지 말라고 한다. 늙으면 다 부질없고 별 것이 아닌 세상사인데 말이다.
넷째이모는 칼국수를 잘한다. 직접 반죽해 만든 칼국수에 감자 뭉텅뭉텅 넣고 멸치국물로 국물을 내고 조선간장 양념을 얹어 먹는 칼국수는 이모만의 음식솜씨다. 칼국수를 만들기 전에 이모들은 길게 늘어트린 내 머리를 보고 만날 때부터 잔소리를 하더니 기어이 저녁시간때쯤에 더 이상 못 참겠다고, 당장 미용실에 가자고 잡아 당겨서 컴컴한 골목길을 이모손에 이끌려 냅다 달렸다. 미용실은 후줄근하니 지져분하고 촌스러웠다. 보나마나 촌스러운 머리가 나오게 생겼는데 넷째이모는 아니라고 무조건 짧게 잘라서 파마를 해달라고 주문을 넣었다. 어..어..아닌데..하는데..내 머리는 썩둑 잘려지고, 순식간에 파마를 말고, 뜨거운 바람을 쏘이는 기계나 나타나고 중화제 칠하고 한시간만에 이모와 미장원에서 원하던 뽀글뽀글 쌍둥한 머리로 아주 잘 나왔다. 난 갑자기 촌 아줌마가 되어 미장원을 나오고, 하긴 나도 이제 나이가 사십 중반을 넘어서고 있는데, 허구헌날 긴 웨이브를 고수한다는 것은 내 나이를 왜곡하고 있는것이나 다름없었다.
외할머니도 파마한 게 낫네 하시고, 개 두 마리도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막내이모는 훨씬 산뜻하고 젊어 보인다고 그러고....뭐가, 뭔지...여하튼, 긴 머리를 썽둥 자르고 파마를 뽀그르르 했다.
밤 열한시쯤 집에 도착하니 우리 아들 날 보자마자 으헉! 하면서 뒤로 물러선다. 엄마 왜 그러셨어요, 전에 머리가 나아요. 한다. 그런가? 하고 거울을 보고 옆으로 섰다가 뒤로 돌아 비춰봤다가 에따 모르겠다 하고 잤다. 아침에 일어나 머리를 다시 감고 아무리 돌아보고 옆으로 봐도 이건 완전 이모들 스타일이다. 우짜겠나...이모들 입장에선 이 머리가 산뜻하고 상큼하고 발랄한 것을...완전 이모들 스타일이다. 하긴 내가 오십대 이모들을 닮았겠지, 삼십대 미시족을 닮았겠냐....에휴~~집에서 노니 다행이지, 이 거원...한달 정도 지나면 괜찮겠지...그래 마음 편한게 제일이다. 나이 오십이면 미인평등이라 했는데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