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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야기> 삶의 상징이 된 36색 왕자표 크레파스


BY 최지인 2005-12-05

우연한 순간의 일이 어떤 사람에게는 평생 따라다니며
삶을 지배하는 한 상징처럼 되어버리는 일도 있다.

교회당 하나 없는, 그야말로 유교정신이 꼿꼿한 작은 마을에
크리스마스가 무슨 해당사항 있었을까.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일년 내내 거짓말 한번도 안하고
착한 일 많이 한 아이에게만 선물 주신다기에
바가지 머리를 한 순진한 시골떼기는
으레 거짓말도 웬만큼 했고, 착한 일도 그다지 한 기억이 없으니
언감생심 선물 받을 생각은 꿈도 꾸지 않았었다.

그저 엄마가 시장에서, 그것도 큰맘먹고 사다주신
크라운 산도 한 통으로 형제들의 눈이 반짝반짝했고
덤으로 사온 자루만큼이나 큰 비닐봉지에
가득 들어찬 주먹만하던 굴뚝과자를 밤새 좋아라 먹으며 그래도
부모님 눈 밖에까진 나지 않았음을 다행스러워 했던 기억밖에는.

그래도 행복했었다.
어쩌다 할아버지의 선심으로 먹게된 작은 카스테라 한 쪽과
뒤란에 곱게 모셔져? 있던 커다란 홍시 하나씩의
생각 못한 행운이 따라 줄 때도 있었으니.

크라운 산도는 아껴먹을 심산으로 살째기 맛만 보고는
아무도 모르는 서로의 비밀장소에 숨겨두고
입 터져라 홍시로 먼저 입맛을 돋운 뒤
쉽게 먹을 수 있는 굴뚝과자는 보자기를 깐 방바닥에 쏟아
산처럼 쌓아놓고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잽싸게 손을 놀려 입천장이 죄 헐도록 먹어치웠다.
그날만큼은 화로를 둘러싸고 졸음을 참아가며
지루하게 군고구마 익기만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아주 우연히 서울에서 오신 작은 아버님 가족의 방문으로 인해
입에 들어가면 저절로 녹는 육각형으로 된 양과자와
솜털인 듯 뭉게구름인 듯 몽실몽실한 게 하얗게 뒤덮인
부드러운 케잌은 크라운 산도완 비교도 할 수 없는
태어나서 처음 대한 신기한 맛의 경험이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나를 사로잡는 것이 있었으니
유치원 다닌다는 사촌이 가지고 온 색색이 가득 들어있던
36색의 어마어마한? 위용을 자랑하는 커다란 크레파스였다.

크레파스는 12색 왕자표가 다 인줄로만 알았던 시골떼기는
내 선물인가 싶어 얼마나 마음이 부풀고 콩닥거렸던지.....
한데 기대감을 웃도는 허탈함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몇 배의 상실감과 서운함을 몰고왔다.

서울 살이를 하는 사람은
시골 사람에게 은근히 뻐길 무언의 구실이 필요했었을 테고
하필이면 그 우월감을 적당하게 부추겨 줄 조건이
아이의 교육을 핑계로 챙겨 온
두터운 그림일기용 스케치북과 36색 크레파스였다.

그림 그리는 걸 유난히도 좋아했던 나는
먹는 것에 대한 즐거움보다는 밤새도록 어둠을 친구 삼아
그 크레파스를 훔쳐보느라 빨간 토끼눈이 되었어도
새벽이 밝아오는 것이 안타깝기만 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오빠의 책상 위에 놓여진 그 크레파스는
왜 그리도 더욱 더 환한 빛으로 도드라져 보이던지.
발발 떨면서 크레파스 뚜껑에만 살짝 손을 올려놓고도
죄지은 것 마냥 혼자서 흠칫 놀라
숨도 안 쉬고 이불 속으로 기어들기를 몇 번이나 되풀이했었던가.

그림일기를 그린다면서 한색 꺼내고 뚜껑 덮고
또 얼른 집어넣고 한색 꺼내고 잽싸게 뚜껑 닫아버리고
그러면서도 은근히 부러움으로 바라보는 나를 향해
으스대며 웃던 사촌 동생이 똘망똘망한 목소리로
"누나, 있지. 이거 크리스마스 선물로 미리 받은 거야"하던 말.

혼자 속으로 산타는 교통이 좋은 곳만 골라서 오는 갑다,
서울 쪽 산타는 선물도 좋은 것만 주는 갑다, 그러면서도 궁금했다.
'어떻게 산타할아버지는 쟤가 미리 선물을 받고 싶다는 걸 아셨을까.
엄마한테 물어볼까. 아니야, 그러다간 또 쓸데없는 생각이나 한다고
머리나 한대 쥐어 박히겠지. 아하~, 바쁜 아이에겐 미리 다녀가기도 하는갑네'
아둔한 머리로 그렇게 짐작했을 뿐.

부모 마음을 그땐 몰랐었다.
부러움에 불편해진 심기를 다스리려
부뚜막 앞에 바싹 다가앉아 멍하니 쪼그리고 있으려니
엄마가 일렁이는 눈길을 불길 속에 둔 채 나직하게 푸념하셨다.
"하이고...지 새끼 소중허믄 남의 새끼덜 마음도 좀 헤아리던지.
내 새끼 상처는 어떡하라구...돈이 다는 아니지만 서두 요럴 땐 고만
내 속이 헷까닥 뒤집히것구마.."

타 들어가는 부지깽이를 물에 적실 생각도 않은 채
혼자서 중얼거리는 엄마를 보며 아무것도 몰랐었지만
어떤 아릿한 슬픔 같은 게 화인처럼 가슴에 박히던 기억.

그때부터 36색 크레파스는 내게 부의 상징으로 남았다.
그래서일까.
남편의, 쓸데없이 낭비를 부추긴다는 잔소리를 꾹꾹 눌러가며
나는 내 아이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많은 크레파스를
마치 신념처럼 사고 또 사주었다.
아이들이 크레파스보단 그림 물감을 더 많이 사용하는
이즘이 되기 전까지는.

그렇게 해야 내 어린 날의 슬픔이 치유될 것 같은
보상심리론을 들먹이면서까지 억지 변을 세우는 나를
처음엔 어이없어 하던 남편도 나중엔 모르는 척 눈감아 주는 것으로
내 유년의 시간을 슬며시 배려해 주었다.

그리 풍족하지는 않지만
내 유년의 설움이 내 아이들에게는 비껴갈 수 있음이 행복하다.
또한 그런 부여된 요즘 아이들의 환경이 또한 부럽기도 하다.
더하여,
우리 주위에 있을 또 다른 내 유년의 자화상들에게
많은 사랑과 따뜻한 위로의 마음을 보내고 싶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가만히 이불 속으로 손 뻗어
남편에게 후끈한 내 마음을 연결하리라
땀이 채여 불편하더라도 마음으로 말려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