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아이들은 크리스마스캐롤을
틀며 분위기를 업그레이드 시킨다.나의 아이들이
기쁘다는 표현을 배운 계기 이기도 하다.
나는 친정이 없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어릴때부터 새어머니와 큰오빠의 보살핌 속에
생활했기에 그리 여유있는 생활을 못해봤다.
다행일지 불행일지 형제들이 많아 그틈바구니에
섞여 내가 살고 있는 상태에 대한 행,불행을 가늠할
여유가 없었던것같다.
그런 중에도 우리 형제들은 노래하고 악기 다루고
하는 것을 즐겼다.막내 오빠의 기타 솜씨,나의 성악,
배다른 동생 막네의 피아노 솜씨,바로 밑의 여동생
수채화 그림은 우리 가족의 마음을 풍요롭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였다.
가난하고 어려웠던 어린시절 크리스마스 싼타는
늘 카드에 싼타 할머니라고 적혀 있었고 밤사이
양말 한짝 머리위에 놓여 있거나 과자 한봉 이면
하늘을 나를듯 기뻤다.
그것이 나의 어린시절 추억이고 기쁨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평범한 남편과 살다보니
그가 보냈던 어린 시절과 나의 어린 시절이 그리
차이도 없었지만 친어머니의 비호 속에 누린 어린
시절은 꼼꼼하고 절제하고 철저한 시간관리로
어떻게보면 너무도 이기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성장해 있었다.
첫아이는 예쁜 딸을 얻었고 둘째는 조금 나이차이가
나는 아들이다.남편은 아이들의 황금같은 아름다움을
잘 못느끼는듯하다.기쁨도 슬픔도 그들의 천성이라고
생각하는 것같다.
작은 아이가 다섯 살쯤 되었을때 머라이어 캐리의 캐롤을
아이들에게 CD로 들려 주었다.두아이의 경직된 표정이
맑게 빛나는걸 볼수 있었다.그후로 12월의 캐롤은 아이들과
나만이 아는 기쁨의 표현 방법으로 자리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