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화장실에서 나오려고 문을 당기는 데 손잡이가 빠졌다.
!!!
눈에서 불똥이 튀는 순간.
어째어째 대충 끼워서 돌려서 문열고 나왔다.
거기서 끝나면 내가 아니다.
그건 이집트 와서 나를 만난 사람이면 다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 집안 남자들이 인품좋고 능력있고 다 좋은 데
딱 한가지 흠이 있다면 그건 집안일에 '전.혀.'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할아버지가 그러셨고
우리 아버지가 그러셨다.
전구 하나 갈아끼지도 못하고
세면대 파이프도 청소할 줄 모르고
나는 우리 집안 남자들이 손에 망치잡고 있는 모습을
도대체 본적이 없다.
옛날식으로야 '점잖으신 어른들'이라고 할 수 있었겠지만
현대적으로 따지면 '집안에서는 도무지 쓰잘데기 없는 남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건 우리 할머니 표현이다.
나는 할머니가 손수 사들고 오신 형광등을 갈아끼지'도 못하시는'
할아버지한테 너무나도 놀랬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존경하는 할아버지가 '고렇게 작은 일도' 못하시는 데 대한
충격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었고
할머니가 늘 '이것도 못하셔요?'라고 입버릇처럼
질문도 아니게 중얼거림도 아니게 푸념하시는 것을
늘 들은 경험이 나를 '똑똑하게 매사를 판단하도록' 만든 것 같다.
집안일도 여자가 해, 애들도 여자가 키워, 거기다 우리집안 여자들은
자기 직업도 있었는 데 그럼 여자는 바깥일도 해, 형광등까지도 여자가
갈아? 어린 내가 생각해도 갸웃한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21세기에 와서
그것도 한국도 아닌 카이로에서
머?집안 화장실 손잡이가 빠져?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이야?
당장 눈앞에 보이는 대로 고함으로 타작하는 나.
- 거기 둘(남편과 아들)! 이 손잡이 빠진 거 알아 몰라? 알지?
근데 왜 가만 있어. 왜 이것도 못고쳐. 남자들이 이래도 되는 거야?
(숨 한번 짧게 쉬고)
집안일도 여자가 해, 애들도 여자가 키워, 바깥일도 해,
화장실 손잡이도 내가 갈아? (말하면서 다시 갸우뚱하는 나. 어디서
많이 듣던…) 둘다 내다버리기 전에 손잡이 갈아 빨랑.
이럴 때 영어가 얼마나 좋은 지 아는 사람은 알거다.
존댓말 안써도 되지요. 대충 '욧점'만 말해도 다 알아듣지요.
근데 때마침 정전이 되었다.
어디가 어딘지 안보여서 못고치겠다는 둘.
그런다고 봐줄줄 알고?
- 둘다 저기 구석에 가서 두손들고 서있어!
이렇게 이집트의 공휴일은 간다.
[카이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