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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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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기차를 타고...


BY 은하수 2005-11-29

땅거미가 내려앉아 이미 어두워진

토요일 6시에 기차에 올랐다.

아이들은 앞자리에 남편과 나는 뒷자리에 앉았다.

아이들이 좌석을 마주보게 돌려달라고 부탁해도 우리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니들은 니들끼리 가라구...

결혼하기 전엔 고속버스나 비행기를 많이 탔었다.

결혼하고 나서는 주로 기차를 탄다. 기차는 반드시 예약을 해야 탈 수가 있다.

준비성 없는 내가 기차를 타는건 남편 덕이다.

 

난 기차를 타는 것이 좋다.

 

길이 막힐 염려가 없이 정해진 시각에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버스나 비행기보다 사고의 위험이 훨씬 적어서 안전하기 때문이다.

휴게소에서 볼일 보다가 차를 놓칠까봐 불안해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버스 안에서 갑자기 볼일이 급해졌을때 그 황당함을 겪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하여간 예측 불가능한 돌발상황이 거의 없는 편이어서 안정적이다.

하긴 기차타고 가다가 도중에 내려서 버스로 간 적이 딱 한번 있기는 하다.

칠팔년 전쯤 여름 휴가때 내려갈 때였는데

비가 무진장 많이 와서 산사태인가로 철로가 끊어진 적이 있었다.

 

기차를 타면 그 시간만큼은 잡스러운데 신경을 안써도 된다.

여행 자체에 몰두해 있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와 있는 나를 발견할 것이다.

 

생명있는 것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도시의 풍경이

왠지 허무하게 느껴진다면

기차를 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해가 낮게 깔리는 오후 시간

기차를 타게 된다면

넓은 창 밖 끝간데 없이 펼쳐지는 겨울이 당도해 있는 산과 들의 풍경,

가을걷이를 끝내고 긴 휴식을 취하고 있을 갈색빛 논과 밭들의 모습에서

평온과 안식이 충만할 것이다.

 

해는 아쉽게도 이미 저버린 후라

깜깜한 터널 속과도 같은 밤을 헤치며 기차는 용감하게도 쌩쌩 달린다.

아니 무서워서 빨리 달리나 보다.

 

붉은 씨앗을 가득 품은 석류처럼

환한 불빛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담벼락같은 아파트의 그림자들이 나타나면 

 

불 밝힌 집집마다 사람들의 가슴 속에도

행복의 불씨 하나쯤 지피고 있겠지 상상해 본다.

 

또 대낮같이 밝힌 기다란 비닐하우스들의 야경도 멋있었다.

우리를 태우고 가는 기차 같기도 하고

밤바다에 떠다니는 오징어배 같기도 하였다.

 

공룡같이 커다란 역사의 뱃속을 뚫고 나와

외로이 떨며 서있는 자그마한 간이역도 지나치고

짙게 깔린 밤의 적막을 가르며 쉬지않고 달린 끝에

기차는 종착역에 무사히 당도하였다.

 

역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그 무리속에 아버지도 기다리고 계셨다.

난생처음 집을 떠나는

나를 배웅해주던 20년전에 비하면

많이 늙으신 모습이지만

아직은 당당한 모습으로 서 계셨다.

 

어쨌든 집에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