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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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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이야기(잦은 태풍)


BY 개망초꽃 2005-11-30

실제로 자연현상인 태풍으로 피해를 본 일이 나는 별로 없다. 태풍이 대한민국을 관통할지도 모른다고 텔레비전은 며칠 전부터 겁을 주지만 대부분 동해 쪽으로 빠져나가면서 비를 동반한 태풍은 도랑을 만들고, 미친년머리처럼 나무만 엉켜 놓았다. 자연의 순리로 피해를 본적이 없는 난데, 살아가는 내 모습은 태풍이 빗겨가질 않고 관통을 해서는 나의 눈물은 도랑이 되고, 나의 머리카락은 미친년이 되는지, 살아 계시다는 하나님은 너무, 너무, 너무하시다.


8살 때 아버지 기둥을 뽑아 갔을 때는, 나는 외갓집에 팽개쳐져 있고, 엄마는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하신다고 서울쪽으로 날아가셨단다. 그때 내게 남아 있던 건, 엄마를 향한 막연한 기다림. 노을이 질 때 까지 엄마를 기다리다 외갓집으로 터덜거리며 걷던 도랑 가에 물봉선화꽃. 꽃에 반해 놀다보면 잠시 잊었던 엄마. 다 휩쓸고 갔어도 남아있던 들꽃은 친구가 되고, 나무는 듬직하게 나를 내려다보았다.


26살 때 첫 딸을 낳았다. 남편은 도박에 빠져 남겨진 건 빚더미뿐이었다. 딸아이에게 내복 사 줄 돈이 없어 결혼반지를 팔았는데, 남편은 그걸 가지고 도박이랑 외도를 해서 다 날리고, 결혼을 지키겠다는 약속은 도박이란 년하고 바꾸어버렸다. 결국은 첫 돌도 안 된 딸아이를 들쳐 업고 집값이 싼 성남시로 새 출발을 위해 이사를 했지만 남편은 여전히 도박과 떨어질 줄을 몰랐다. 찰떡궁합인가보다.


42살 때, 도박과 사업부진과 그로인한 술로 가정은 강도 높은 태풍을 만나 건질 게 없었다. 단 하나 건진 건 이혼서류였다. 덜래덜래 이혼 서류를 들고 동사무소로 향하던 길엔 때 이른 코스모스가 피어 있었다. 동사무소에서 습득한 핸드폰을 시멘트 바닥에 내동댕이 치는걸로 16년만에 결혼을 끝냈다.


45살, 서점 일을 처음 시작할 때는 겁이 났었다. 처음 대하는 일이고, 수백 가지가 넘는 책을 파악해서 고객님들에게 설명을 해서 책을 사게 만드는 일은 머리속이 얼얼한 일이었다. 처음 시작할 때 운영자께서는 3개월만 아르바이트를 하면 월급을 올려주고 정식직원도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그러나 3개월이 지나 정식직원 자격이 있다는 듯이 말은 하면서도 계속 밤 시간을 위주로 시간당 계산을 해서 주는, 처음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나도 안다, 몇 년씩 책 판매 일을 해 오던 직원 분들보다 많이 부족한 걸 알기에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하고, 일하는 시간에 늦거나 사정이 있다고 결근을 하거나 그런 일을 만들지 않았다. 하다못해 직원 분들이 시간을 이리저리 급하게 바꿔도 대꾸 한마디 하지 않고 내 약속까지 취소해가며 애착을 갖고 일을 했다.


일을 하는 동안 어릴 적에 본 동화를 읽으며 눈물을 글써덩거렸고, 학창시절에 본 문학을 다시 접하며 설레는 가슴을 달래기도 했다. 설명을 열심히 해서 책을 팔면 책 팔았다고 친구한테 자랑을 했고, 책을 많이 팔던날은 퇴근길이 고양이 걸음걸이처럼 가벼웠다.


여름엔 느티나무 밑을 우산삼아 뛰었고, 가을엔 색색으로 물드는 나뭇잎을 쳐다보며 출근을 했다. 늦가을엔 낙엽이 많이 쌓인 길을 걸으며, 지는 가을 소리를 귀 기울이며 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나뭇잎과 함께 지고, 11월도 며칠 남지 않던 지난 금요일, 우연히 12월 계획표를 봤다. 근데 그 속엔 내 이름이 빠져 있었다.

“제 이름이 왜 없나요?”
직원이 당황하는 눈빛이 확실하게 보였다.

“전 잘 모르고, 전무님이 말씀하실거에요.”

저녁에 전무님한테 전화가 왔다.

“내일부터 야근만 계속하시구요. 화정점만 출근하세요. 새로 직원 한분을 더 채용했는데, 그 분이 오후엔 근무를 못하신다니까 야근만 하셔야겠어요. 시간은 원래대로 같고요. 새로 오신분이 일이 익숙해지면 그때는 주엽점과 화정점 두 군데에서 지금처럼 하세요.”

“야근만요? 정식직원은 언제 되나요?”
“그건 두고 봐야 되고요. 망초님은 경력이 없으시고, 매출도 적으시고...두고 보자고요.”
아니 내일부터 인사이동이 있으면서 오늘 저녁에나 전화로 말을 하고, 그것도 12월 계획서를 보고서 내가 물어보니까 그때서야 말을 한 것 같았다. 그런데 왜 내 이름이 빠졌냐고 물었더니, 직원 한분이 갑자기 그만 둔다고 했단다. 그럼 그 직원이 그만 두지 않았다면 나보고 스스로 알아서 집에서 푹쉬라는 거 아니었던가? 난 이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밤새도록 생각에 생각을 더하고 곱했다. 나누어 보기도 했다. 퍼센트를 따져보기도 했다. 그래도 결론은 더 참고 다녀야지 했다. 그동안 애쓴 시간이 아까웠다. 서점 일을 파악하면서 굳어진 머리를 빙빙 돌린 것이 안쓰러웠다.


다음날은 쉬는 토요일이라서 친구가 일하는 곳에서 책을 보고 있었다. 화정점에서 전화가 왔다. 대뜸 한다는 소리가 오늘 출근 안하시고 뭐하세요 한다.

“저...토요일은 쉬는 날이잖아요...”

쉬는 날 쉬는데 뭘 잘못했나... 주눅이 들어서 말을 했다.

“아니 어제 나오라고 했잖아요?”
오마나...뭔소리래...내가 분명히 못나간다고 했는데...

“제가 못나간다고 말했는데요...”

우씨~~~쉬는 날도 편히 못 쉬게 난리네...

“언제 못나온다고 했어요.아무말도 안했잖아요? 그래가지고 정식직원이 되겠어요? 알았어욧!” 그리고 화정점 직원은 전화기를 패대기치듯 던졌다.

난 깜짝 놀라서 핸드폰을 들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밤새 잠을 설쳤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 그만 두어야하나..그럼 난 뭔일을할까... 내가 뭔 잘못을 했나...토요일 쉬는 날로 정한 건 내가 아니고 직원들 아닌가...? 이틀째 잠을 못 잤다.


일요일이였다. 일단 출근은 해야겠다. 그러나 사과는 받고 출근을 해야겠다.

화정점에 전화를 걸었다.

“저...어제 그 말 듣고 출근을 못하겠어요. 쉬는 날 쉬는데..그렇게 일방적으로 말하시면 안 되지요.”

“아니 출근을 안 하다니요? 그러시면 안되지욧!”

난 미안하다는 말은 기대하지도 않는다.

다만 어제 한 말은 취소한다든가 좀 심했다든가 그러길 바랬다.

“화정점씨?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하면 되겠어요? 제가 잘못한 게 없는데..그렇게 말하면...”
“됐어욧!”

그리고 화정점씨는 어제처럼 수화기를 우당탕 내려놓는 소리가 찬바람으로 밀려 들어왔다.

눈물이 나왔다. 손끝이 떨렸다. 난 이미 12월 인사이동에서 무시를 당한 상태고, 자존심은 쓰레기처럼 구겨진 상태였다. 더 이상은 서점에 나갈 일이 없겠다. 서점하고의 인연은 여기까지가 끝이다.


월요일, 창밖은 어둠이 짙었다. 한낮인데도 하늘은 열리지 않고 구름그늘속에 가려져 있었다. 서점 총 책임자인 전무님한테 전화를 걸었다. 구차하게 변명도 하고 싶지 않았다. 전무님이 원하는 조건이 내게 맞지 않아 그만두겠다고 했다. 전무님은 그동안 잘 해 주시더니 갑자기 왜 그러시냐고 반문했다. 죄송하다고 덧붙이고 소파에 턱을 괴고 앉아 창밖을 보았다.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바람이 쳤다. 비는 순식간에 창문을 가리고 앞은 보이지 않았다. 내 눈에선 눈물이 빗물처럼 흘렀다.

‘눈물이 아니다 이건 빗물이다. 난 다시 일어난다. 그동안 여러 번 태풍은 날 덮쳤고, 난 여리지만 강한 정신과 약골이지만 몸뚱이 하나로 버텼다.’


밥이 먹히질 않았다. 그래도 밥상을 차려 놓고 텔레비전을 켜고 여느 때처럼 밥을 먹었다.

서점에 나가던 시간은 오후 6시부터 밤 열시까지라서 저녁 먹기가 애매했다. 늦은 점심을 먹고 저녁은 퇴근 후 11시쯤 먹을 때가 많았다. 직원들이 저녁 먹었냐고 물으면 집에 가서 먹으면 돼요 하면서 직원 식당에서 밥을 먹지 않았다. 네 시간 근무하면서 저녁시간을 축내며 식당에 앉아 있기가 미안해서 그랬다. 목이 메여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 오늘까지만 슬퍼하자.’


밤에 커피를 마셨다. 서점에서 커피를 마셨다고 혼났었다. 그래도 몰래 마시는 커피가 향이 진했고, 꿀처럼 달콤했고, 우유처럼 부드러웠다. 컴퓨터를 뒤적이다가 김광석의 '일어나' 노래를 발견했다.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번 해 보는 거야~~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서점이야기는 오개월만에 끝을 맺는다. 오래도록 쓰고 싶었지만 사람 사는 일이 내 맘같지 않음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사람 사는 일이 태풍처럼 왔다가 흔적만 남기고 사라지는 일이 어디 한 둘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