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 식장을 떠나려는 영구차를 붙잡고 오렬하는 상주를바라보던
조문겨 중에 친구로 보이는 두분이서 나누던 애기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우는것은 오기싫은 세상 오는것이 억울해서
우는것이고 죽은 망자 앞에서 우는것은 보내기 싫어서 우는것이라고.
그 말을 듣고 보니 아기들이 오기싫은 세상 오는게 억울해서 우느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망자의 곁에서 통곡하며 오열하는 상주들은 보내는게 싫어서 ..헤어지는게 싫어서
한번 헤어지면 영원히 못볼것이 억욱해서 우는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출발 합니다, 상주들 차에 타세요 ..
세상에 오는게 억욱해서 울었다는아이가 어른이 되고 생을 살았던 세상과는
75년ㄴ의 세월을 이별하고 영ㅇ혼의 세계로 떠났다.
새벽녘 집을 나서는데 날씨마저 얄굿다,
회오리 바람이 몰아친다,
대문을 나섰다 다시 집으로 들어와 두툼한 옷으로 갈아입고 목도리를 두르고 .
겨울 날씨라느것을 실감케 했다,
지금껏 따스 한 날씨이던니 오늘 하루 만이라도 고운 날씨였으면 좋으련만 가는이나 보내는
이들의 마음마저 춥게 한다,
길가의 가로수들이 떨어져 바람레 휘리릭 이리저리 흩어진다,
인생도 언제 인가는 낙엽이 려니 허무 한 인생...
아름답고 화려했던 젊은 날의 정열적인 날들이 있었다면 거것은 내가 세상에 태어나
누려야 하는 내몴인것을 그렇지만 그 몴을 다누리지못하고 간다면 얼마나 억울할 것인가,?
빨리가자고 재촉하는것도 아니것만 운구차는 낙엽날리는길을 잘도 달린다,
상주들은 몟밤을 잠도 제대로 자지못한 탓으로 지쳐 잠이 들고 아직은
어린 손주들만이 지들끼리 뭐가 좋은지 쫑알거린다,
몠시간을 달려 대전 국립묘지에 도착했다.
망자가 국가 유공자라서 국립묘지에 온것이다
한 시절을 멋스럽게 풍미하며 사셧던 분이다 자신이 그렇게
멋스럽게 세월을 사는동안 그 가족에겐 고통도 잇었다.
사 촌 형님께서는 어지간히 마음이 포근한 분이셧기네 남편의 그런 생활을
탓하지않으셧다 그게 남편의 사는방법이라고 햇다,
그 분의 덕분으로 내가 국립묘지에 온것이다 언제 이곳에 와 볼수 있을것인가.
들어 서는입구부터 잘 정돈된 잔듸밭과 나무들 한참을 들어가니
충혼탑이 보인다 저곳에 높으신분들이 분향을 하시든 곳이구나,
티브이에서만 보든곳을 직접와서 보니 내가 다른곳에 와있는느낌이다,
늠늠하고 멎진 병사들이 안내를 하고 분항소에서 분항을 하고 있는데 신병들인모양이다상관의지시를받고 몟멨 병사들이 팔에 흰보자기를 두르고 그리고 서로 옷매무새를 만져주고는
어디론가 간다,
아마 유골함을 안장하려 가는모양이다,
세워져 있는비석들을 보니 현ㅇ충일날 티브이에서 보았던 비석을 안고 통곡하든 어머님들의 모습도떠오르고,동작동 여섯배의 크기라 하는데 내사마 동작동엘 가보지 않아서 그크기가 얼마인지 모르것다.
어쨋던 굉장히 넓다 아마 몌몟십만평은 될것같다,
이곳에도 여지없이 신분과 게급의 차이를 느낄수 잇다,
장례 지금의 장례 문화는 많ㅇ이 바뀌었다,
얼릴적 내가 보았던 장례는 종이로 울긋 불긋 꽃을 만들어서 상여를 만들고 여려가지 깃발을 동네 장ㅅ정들이 상여를 메고 소리꾼 한 사람이 앞에서 꾕과리를치면서
이제가면 언제오노 언제 다시 볼까나 하면서 앞소리를 하면 상여를메고 가든
상여끄ㅜㄴ들은 어홍 어홍 어야릉차 어홍 ... 하면서 듀ㅣ소리를 하고
그러면 상주들은 더욱 구슬피 울고 햇는데
나도 내 친정 부모님 돌아가시고 상여 뒤를따르면서 참 많이도 울었다,
아마 부모님 돌아갔을때 참...슬퍼서도 울었겠지만 내 설움에 더 울었던게 아닌가 싶다 .
세월이흐르니 모든게 변하면서 장례 문화까지 바뀌었으니 사람도
사는방식들이 바뀔수 밖에...
추운 날씨속에 망자의 유골을 우선 안치하고 일주일 후에 와서 안장한다는말을 듣고
돌아왔다..
오늘하루도 많은 님들이 가족들괴ㅏ 이별하고 가셧나 보다,,이곳 저곳에서 눈물짓는 모습들이 보였다...
이렇게 사촌시숙을 대전 국립묘지에 모셔 두고 조금은 쓸쓸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부디 모든 님들이 좋은 곳으로 가셔서 편안한 후생을 사셔으면 하는마음이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