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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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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 키즈의 추억


BY 은하수 2005-11-17

어렸을 적 내 살던 동네는

얕으막한 구릉지대에 있었지.
그 옛날엔 뱀이 지천인 일명 뱀골이었다지. 어느날
땅꾼들을 불러모아 뱀을 모두 잡아들이고
야산에 무성했을 나무를 캐내고
가파르고 울퉁불퉁한 곳은 불도저로 깎아 내고
이리저리 아스팔트로 덮고
저층 아파트나 판박이 주택들이 들어서고
사람들이 곧 이사와서
고요하고 적막하던 골짜기는 어느새
득실거리는 마을이 되어 버렸다.
이른바 베드타운...

자연의 원주인었던
야생의 수목이나 동물들은 거의 자취가 없어졌거나
다른 곳으로 떠나 갔을 것이다.
떠나면서 또는 죽어가면서
눈물 한방울쯤 아프게 흘렸을지도 모른다.

빼앗은 그 자리에 인간은
아스팔트로 길을 덮고
시멘트로 집을 짓고
인공의 조경수와 잔디를 심었다.

자연이 숨쉬던 구릉지는
어느날 개떼처럼 처들어온
사람들의 마을이 되었다.

철저한 계획 아래
조경과 정비사업이 잘되어
마치 깨끗한 공원에 온 느낌을 주는
조용한 마을이었지만
늘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자연스러움이 주는 아름다움...
자연의 냄새...
약간의 흐트러짐이 주는 긴장의 풀어짐...

덕분에 어느 곳을 가도
눈에 찰 만큼 잘 가꾸어지고 깨끗한 곳을
만나 보지를 못했지만
인공의 미는 푸근하게 감싸는 편안함은
없는 것 같다.

고향이 푸근한 느낌을 못 주는 것이
어찌 꼭 깨끗하고 정돈된 탓이겠느냐만도
내 어릴적 살았던 이야기와도 관련이 있겠지만도...

어린 아이들도 너무 정리 습관을 들이거나
환경이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으면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는다는데
보통의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물론 더러운 것 보다는 깨끗한 쪽을 백번이고 택하겠지만
전혀 티끌도 안 보일 만큼 완벽함보다는
약간의 틈을 내보이는 흐트러짐이
보다 인간적이고 자연에 가까운 것이 아닐런지...

내 살던 동네는 준비된 계획도시로
갈 때마다 확연하게 변모해 간다.
옛날 소풍다니던 인적드물던 산숲도
지금은 자취도 없이 문대어지고
몇채 없던 산골의 농가도 없어지고
뛰어다니던 먼지폴폴 나던 길옆의
농수로 쓰이던 맑은 개울도 청계천 마냥 덮여버리고

추억이 묻힐 곳이 없다.

그렇기에 난 빨리 변하는 마을은 정이 안 간다.
십년뒤에나
이십년뒤에나
삼십년뒤에나
항상 그자리에 표지가 될만한 어떤 상징물이 존재하는
그런 곳이 좋다.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낙후 운운 할 지라도...

내가 절에 가면 까닭없이 안정감을 느끼고
푸근한 느낌을 받는 까닭은
고향마을에 가서 받지 못하는 감정을
그 곳에서 대신 채우게 됨이 아닐까 싶다.

고향을 떠나온지 유수같은 세월이 흘러 어느덧
내가 떠날때의 나이만큼 다시 더한 나이가 되었다.
되고 말았다.
산천도 변하고
같이 떠난 친구들도 어느 하늘아래서
나와 같은 그리움을 안고 잘 살고 있을테지.

돌아갈 고향의 모습은 이리저리 성형한 미인의 얼굴과 같지만
세월이 스치고 간 친구들의 얼굴에서는
옛날 추억을 생생히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친구야... 
추억이 숨쉬는 친구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