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닌, 소원하던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큰아버진 아들이 둘이었고, 아버지도 둘은 돼야한다고
밑으로 둘을 더 낳았으나 둘다 딸이었다..
당시 칠십년대 후반 팔십년대로 넘어가던 시절 표어가 둘만낳아 잘기르자
였건만,,,, 그 산꼴짜기에서는 그렇게 아랑곳하지 않고 아들에 목숨건
부모님이 계셨던 것이다.......
어머니는 셋째딸이었고, 미모가 있었다... 그산골에선 보기드물정도로
피부도 희었고,,, 나의 초등 졸업사진에 한복입고 찍은 사진을 보니 삼십대 후반,
지금의 내 나이인데도 갓 시집온 새색씨 같았다...
그러나 성격은 좀 무뚝뚝한거 같다... 잔정이 없는 성격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였을까,,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 산너머의 외가로 가는 일이 잦았고,
거기서 아마 어머니께 하고싶은 말들을 쏟아놓으신거 같았다.
그러나 자기딸 흉보는 사위가 어찌 이쁠것이냐,, 그것도 술먹고 찾아와서,,,
점점 아버진 직접적으로 어머니를 괴롭혔고,, 처가의 온갖 험담을 동네사람이
다 듣도록 고함치고 다니는게 일이었다...
우리가 점점 자랄수록 우리에 대한 험담도 늘어갔고,, 동네사람들은 아버지를
통해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알정도 였다..
어머니는 늘 우리들에게 잘해라,너희들이 잘해야 아버지가 너희들 험담하고
다니지 않는다,, 그게 우리 교육의 전부였다... 부끄러움..
우린 늘 부끄러웠다..
동네사람들 앞에 낮들고 다닐수 없는 죄인처럼 늘 부끄러웠다..
남들이 욕한다.... 그게 우리 생활을 지배했다...
아버지가 술주정 뱅이여서 부끄러웠고, 딸이 많아 부끄러웠다.
아버진 지금도 모르겠지만 운동회가 제일 싫었다..
우리아버지가 술주정 뱅이라는걸 전교생들이 다 아는 날이었으니까..
한학년이 한반이고 전교생이 이백명 안팍의 거의 형제들로 구성된 시골의
학교에 운동회는 바로 축제날이므로 온갖 풍성한 가을 음식과 과일을 싸서
학교로 온 가족들, 그사이에 꼭 보고싶지 않은 아버지가 있었지만, 언제나
아버지가 빠진적은 없었다..
오학년쯤 된 어느날 그날도 운동회날이었다.
미술대회에 나갔던 내그림이 전국대회에서 상을받아 (상품이 무척많았는데
화구세트와 물감 붓등 당시로선 처음보는 것들이었다) 운동회날
전교생과 학부모들 앞에서 상을 받은것이다.-- 그림대회 나간다고 수업끝나고
남아서 그림 그리고 집에 늦게 갔다가 아버지께 엄청나게 혼났는데--빨리집에
와서 동생돌보고 농사일 안돕고 놀다온다고,,,
상받을때는 술취한채로 달려나와서 나혼자 들기 어려운 상품을 받아들고
만면에 웃음 띄우셨다...
난 정말 그자리에서 내가 투명인간이 되어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