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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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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소풍


BY 모퉁이 2005-10-26

[아침 9시까지 버스 정류장에 나오세요]

길 안내를 해보기도 처음이다.

몇 해 전에 친구를 따라 기차를 타고 가 봤던  경기도 연천군 신탄리.

경원선 열차가 더 달리지 못해 철마는 달리고 싶다~고

외쳐대다 지쳐 끊어진 철길 마지막 동네.

 

의정부역에서 꽃그림이 예쁘게 그려진 통일호 열차를 탔다.

가을이 떠나기 전에 가을을 만나러 가는 길에는 동행자가 무척 많았다.

노란 개나리 복장의 유치원생에서부터 연세 지긋한 어르신까지

 열차 안은 만원을 넘어 이만원(?)도 더 되었다.

 

1시간 20여분을 느리게 달리는 열차 안에서 지나가는 가을을 훔쳐보았다.

이미 털린 깻단은 누워서 어리광을 부리고 이제 속이 차기 시작한

배추는 배부른 몸통이 짚벨트에 질끈 묶여 있었고

콩타작을 하는 할머니 옆의 어린 손자가 손을 흔들었다.

 

소풍가는 아이처럼 계란도 몇 개 삶고 오징어도 구워 넣고

냉동실에서 꺼낸 절편도 구웠는데 무릎에 안은 유치원 꼬마 때문에

계란은 커녕 커피도 한 잔 마시지 못했다.

소요산 역에서 내 무릎의 아이가 내리고 일부 등산객들이 내리자

삶은 계란을 꺼냈는데 계란은 이미 찌그러져서 까기는 쉬웠다.

커피와 먹는 계란 맛이 구수했다.

밀감으로 입가심을 하고 다시 지나는 풍경을 머리속에 훔쳐 넣었다.

 

신탄리 역에 도착.

곧바로 고대산으로 향했다.

그 곳엔 아직도 지뢰가 있으니 조심하라는 말은 정말일까.

등산로는 얼마나 밟아댔는지 반질반질 했다.

헌데 우리와 같은 코스를 밟는 사람이 없었다.

고대산은 1코스 2코스 3코스가 있는데

우리가 택한 2코스는 경사가 가파르고 칼바위라는 이름만으로도

무시한 고개를 넘어야 되는 코스라 많이들 택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북한산에도 칼바위가 있는데 두 번을 넘으면서 식은땀을 흘렸는데

이곳 역시 양손에 로프를 쥐어야 되는 난코스였다.

약간의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오금이 저리고 어지러웠다.

 

2코스로 해서 1코스나 3코스로 하산을 하고 싶었는데

식은땀을 흘리는 사람이 있어서 결국 고대산 고대봉 정상을 밟지 못하고

회귀해야 해서 무척 아쉬웠다.

여행은 목적지에서 찾는 기쁨도 있지만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도 있다.

묵은 이야기가 정겹고,찐고구마도 맛있고,지나가는 구름도 예쁘다.

 

가을 해가 일찍 집으로 돌아가자 거리는 금새 어두워졌다.

해 지고 돌아오는 등산객을 보면 의아했다는 친구가

머쓱한 어깨를 흔들며 깔깔 웃는다.

바람좋고 햇살 좋은 날 마음 맞는 사람 몇이서

가을 소풍을 떠나고 싶던 마음을 이룬 날이다.

어느 가을 날,오늘 떠난 길이 추억 페이지에 남아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