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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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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전화


BY 항구 2005-10-20

부재중 전화 한통이 보인다.
전화번호를 보는 순간 강제로 잊어야 하는
얼굴을 마주친 듯 머뭇거림이 시작된다.

이젠 마음속에 안타까움 말고
어떤 것도 남지 않았는데 도저히 재통화를
누를 수 없다.

두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전화가 온다.
주저하다 전화를 받았지만
서로 어색한 순간들이 계속 이어진다.

그 순간을 빨리 지나고 싶은 심정인
나와는 달리 그 분은 물들어 가는 가을에
지난날 좋았던 시간들이 떠오른다며
다소 젖어 있다.

가까운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근황을 계속 묻는다.

내 자신 비록 지극히 평범하나
살아가면서 정한 원칙이 둘 있다.

내가 만난 소중한 사람들에게 어떤
상황이던지 돈거래를 하지 않으며
마음 아프게 하지 말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두번째 원칙은
말이나 행동을 조심하였지만
알게 모르게 벗어난 일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첫번째 원칙은 힘들게 엮어가는
상황이 계속되어도 은행을 창구로 삼았다.

작년 숨가쁜 전화를 출근길에 받았다.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은행앞에 삼십분을
기다려 수중에도 없는 돈을 부탁대로
부쳤다.점심때도 또 그렇게 했다.

제일원칙을 깨면서 그렇게 한 것은
그 돈 가치보다 그분이 더 소중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돈은 돌아왔지만
신뢰가 사라져 버렸다.결과를 두고 차라리
그냥 줄 것을 하고 몇번이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일년이 지난 이 순간에
모든 것이 내 탓이라는  뼈아픈
후회를 하지만 한번 금이 간 마음은
예전처럼 돌아가지 않는다.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그 분의 형편을
두고 머리로는 백번 이해를 할 수 있으나 
가슴은 더 이상  다가가지 않으려고 버틴다.

마치 한 번 불에 데인 어린 아기가
다시는 그 행동을 반복하지 않듯이
그 분에 대하여 나는 어린아이와 같다.

그렇지만 그동안 쌓은 정이 너무 깊고 높아
밑바닥에 깔린 두꺼운 정을 무시할 수는
없다.

예전처럼 전화기 붙들고
몇 시간씩 웃으며 이야기할 수 날들을
그리워하며 안타까운 인연을 계속 이어갈
것이다. 

사람은 결코 믿는 존재가 아니라
사랑의 대상임을 소중했던 사람을
잃어버린 나의 어리석음을 통해 다시 한번

뼈저리게 받아 들인다.

 

이 가을 한통의 전화가 
그리운 내 삶의 터전을 되돌아보며

낯선 도시에서 맞는 첫번째 가을을 

더  외롭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