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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색된 고추가루


BY 해피앤딩 2005-09-20

 

          <변색된 고춧가루>


떨어진 홍시 몇 개를 주우려고 산을 오르다가, 시골에서 뒷집 아낙을 만났다.

지난 번 그녀가 말리고 있는 빨간 고추가 하도 예뻐, 얼마에 팔 거냐고 물었더니, 아직 시세를 몰라, 장에 가서 물어보고, 다음에 알려 주겠단다.

그러나 다음 주말에 시골에 갔을 때도, 또 그 다음 주말에 갔을 때도 그녀가 잠자코 있기에, 아마 팔 의향이 없는가 보다 접어두고, 대형 할인 마트에서 파는 건고추를 사 버렸다.

전에 몇 번 그녀에게 건고추를 산 적이 있었지만, 두 식구 먹는 고추라야, 일년에 5근 남짓인데 그것은 시골에서 사기에는 적은 양이라 공연히 미안해지고, 고추를 가장 비싼 시세에 팔고서도 어쩐지 선심을 베푸는 것 같은 그녀의 말투에 약간 부담스러웠었다.

널린 고추를 만지작거리고 있던 그녀가, 머뭇거리면서 아직 고추를 사지 않았으면 자기 네 고추를 샀으면 하는 눈치기에, 전혀 언급을 하지 않아서, 그냥 할인 마트에서 샀다고 했더니, 자기는 자기대로 내가 아무 말이 없어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그랬다기보다는 누군가 140근을 사겠다고 했다가 값이 맞지 않아, 사지 않는 바람에, 고추가 남아도는 모양이다.

지금 말리는 고추를 보니 작고 모양이 제멋대로인데다, 만져보니 흠뻑 젖어 말랑말랑하다.

묻지는 않고, 속으로 ‘끝물 고추라서 그런가?’ 하고 있는데, 그녀는 고추를 깨끗이 물로 씻어 젖은 거란다. ‘아, 이 고추는 본인들이 먹으려고 농약을 치지 않아 모양이 들쑥날쑥 이고, 또 그나마 남아있는 농약성분을 물로 씻어냈구나!’ 언뜻 스치는 생각이다.

신문에서는 중국산 농산물에 농약성분이 많다고 법석이지만, 우리 농산물 먹기도 겁이 나기는 마찬가지다.

농약을 자주 뿌려주지 않으면, 일년 농사를 망치는지 농부들은 농약 통을 걸머지고 산다.

건강식품인 인삼 농사도 예외는 아닌 듯, 앞 동네 누구는 독한 농약을 인삼에 뿌려대다 중독이 되어, 큰도시 종합병원으로 치료를 받으러 가더라고 그녀가 말한다.

하긴 인삼은 일년도 아닌 4년 근(根)을 파는 것이니, 잘못 했다간 4년 농사를 그르치는 것이다.

하지만 농약으로 떡칠을 한 건강식품은 먹지 않느니만 못하지 않은가.

그녀는 한참 자기 고추 자랑을 하더니, 외지에 나가있는 옆집 큰며느리가 일하는 식당에서 진안고추라고 믿고 산 고추가 허옇게 변하고 김치를 담그면 부글부글 끓는 바람에 낭패를 보았다고 전언한다.  때로 고추가 빨리 익으라고 약을 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고춧가루는 변색이 되고 김치가 부글거린단다.

참 두루 기가 막힐 노릇이다. 왜냐하면 나도 지난해 산 빨간 고추를 빻아, 냉장고 밑 칸에 보관해 두었는데, 얼마 전  열어보니 색깔이 허옇게 변해 있었다.

버리자니 아까워서 김치를 담갔더니, 때깔 없는 것은 그렇다 치고, 어처구니없이 물러진 김치에 기겁을 하고, 점점 형편없어지는 내 음식솜씨에 기가 죽어 있던 판이었다.

그 변색된 고춧가루를 미련 없이 버리긴 하겠지만, 앞으로 무엇을 믿고 고추를 살까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