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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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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여자.


BY 수련 2005-09-20

맏며느리 아닌 맏며느리다.

 

둘째 며느리지만  당찬 남편 덕에 그렇게 되었다.

벌써 내 손으로 제사를 모신지가 15년째다.

조상을 잘 모시면  복 받을거다는 시고모님들의 과잉 공치사에

모른척 바보스럽게 고개를 끄떡이며 히히덕 거렸던 세월속에

시어머니도 돌아가시고, 천연덕 스럽게 동생집에 제사를

모시러 오던 시숙도 돌아가셨다.

 

맏며느리 자리를 마다한 큰 동서는 시숙이 돌아가시자

시댁의 조상하고는 상관 없음이 당연한듯이  발을 끊어버려

기 제사에도 명절에도 아예 연락두절이 된지 3 년째다.

 

큰 시누이네가 명절 때마다 우리집을 징검다리로 여겨

작은 명절 날, 고숙이랑 결혼 한 조카들이 하룻 밤을 자고

큰 시누이만 남기고 명절 날 새벽에 제사를 지내려 갔다가 다시 돌아온다.

 

고숙의 큰 형수가 깐깐하여 하룻 밤 숙식도 눈치가 보이는지,

아니면 좋은 이부자리가 아니라도 우리집 잠자리가 편한지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그렇게 해 왔다.

 

시동생네 4식구가 오고 우리 아이들이 오면 방이 세개인 우리집은

아수라장이 된다. 그래도 3년전부터는 시숙네 가족이 빠지고 나니 그나마 좀 낫다.

 

안방에 우리 식구가 다 자고 맞은 편 작은 방에는 시동생네가,

문간방에는 조카네가, 마루에는 시누이부부가... 도합 14명이다.

숫자로는 얼마 되지않지만 좁은 아파트에서는 무리수다.

 

장롱안에  이불이 다 나오고 베게가 모자라 쿳션까지 다 동원된다.

제사만 지내는건  큰 일이 아니다.

2년전에 서울에 교육갔을 때 우리 가족끼리 제사를 지내보니

속담처럼 '누워서 떡먹기'였다.

 

손님들 치르는 일이 더 수월찮은 건 다 들 알터이다.

일하다 말고 점심, 저녁, 챙겨야지.끊임없는 설겆이.잠자리챙겨주기..등

 

 외가쪽으로 큰 집이다보니 제사지내고 나면 시고모네 사촌들이 인사차 다니러 오고,

사촌 시동생,조카들이 결혼을 하고보니 개구장이 아이들이 큰 손님으로

들이닥쳐  소란을 떨고나면 그야말로 온 집안은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한바탕 소용돌이속에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나면 맥이 다 빠진다.

진열장속의 장식품들이 어디로 갔는지 집안 구석구석을 뒤지고

유리 문마다 아이들의 손자국에,  사진틀을 빼 놓고, 화분을 엎어놓질 않나,

일회용기저귀가 구석구석 끼워져있어 전쟁을 치른후의

전장터 같은 폐허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올해에는 타지에서 근무하게 되어 제사지내러 우리도 손님처럼 집으로 가게 되었다.

아이들도 추석 전날에 왔다가 그 다음 날 표를 끊어 하룻밤만 집에 머물게 되고,

큰 시누네도 올 해부터는 70살인 고숙이 막내이다보니 돌아가신 형님들이 많아

형제들이 각자 집에서 제사를 지내기로 하는 바람에 큰댁으로 제사지내러 가지 않아도

된다는 희소식(?)에 내심 쾌재를 불렀다.

 

시동생네도 추석 며칠전, 부부싸움으로 내 심사를 상하게 하여 오지마라고

호통을 쳤더니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래, 이번에는 홀가분하게 명절을

지내야지. ... 그러나.

 

작은 추석 날, 시동생이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전화를 했다.

"형수님 제사지내려 가면 안됩니까?"

그렇다고 오지마라고 할수는 없지.

" 추석 날 아침 첫 배를 타고 오세요"

동서가 얼른 수화기를 뺏는모양이다.

"형님 일을 못 거들어서 어떻게 해요?. 미안해서..."

"제사 뒤설겆이는 네가 다 하면 되잖아"

"히히히. 죄송해요. 내일 아침에 일찍 갈게요"

 

동서 저만 좋은게 아니라 솔직히 나도 편하고 좋다.

일, 이년 제사 지낸것도 아닌데 그까짓 음식만들기가 대수냐.

요령이 있어 혼자서 차분하게 일하는것이 오히려 더 낫다.

 

애들을 올려보내고 다시 근무지로 오려고 청소를 하는데

조카가 전화를 했다.

마루에서 비스듬히 누워 텔레비젼을 보는 남편을 피해

화장실에 가서 전화를 받았다.

"외숙모, 우리 지금 인사하러 가려는데요"

"어, 어, 어떻하지. 곧 배를 타려고 준비하고 나가는 중이야"

"그래요? 벌써 가시려구요? 그럼 다음에 뵐게요"

"그래라. 너희들도 시댁에 다녀온다고 피곤할텐데 쉬어라" 

 

배 탈 시간은 아직 3시간이나 남았지만 거짓말을 했다.

작은 시누이네 올망졸망한 손자들이 보고싶기는 하지만

6살,4살 ,3살 기어다니는 아이....

어른까지 10명이 들이닥치면.....휴

안되지, 겨우 청소를 다했는데 또 어질러 놓으면 언제 청소를하고

돌아오나..

 

정말 나쁜 올케에 , 외숙모가 되었다.

아니 한없이 게으른 여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래도 어쩌나 게으름이 나를 자꾸 부추기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