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버스
“하늘 버스를 찾아 주시는 분 사례하겠음!”
주식회사 한 올 02)3454-5796
주요 일간지 에 이런 이상한 광고가 실렸다.
하늘버스라니 하늘을 나는 버스란 말인가? 아니면 천국 가는 버스란 말인가?
주식회사 한 올 이라면 작은 방직 공장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한 올 울트라“ 라는 프로 야구단 까지 가지고 있는 거대한 섬유회사 이었다. 이 회사의 신사복 카사노바는 쾌 유명한 기성복 이었다.
사연인즉 이랬다.
이 회사의 창업자이자 총수이신 한 올 이성 실 회장이 알 수 없는 우울증에다 치매 현상이 겹쳐서 실어증이 걸렸는데 오직 이 회장이 하는 말은 유일하게
“하늘 버스 ”
라는 네 마디이었다. 그리고 이 회장은 하루에 서너 시 간씩 꼭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휠체어를 타고 버스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하늘 버스만 외치고 있었다.
그래서 보다 못한 회사에서 이런 광고를 냈다.
그러자 처음에는 무슨 장난인줄 알아서 장난 전화만 오던 것이 모 스포츠 신문에 이성실 회장의 이 사연이 알려지자 이 회장 늘 나와 있는 대방동 버스 정류장에는 그날부터 이상한 버스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꽃으로 장식한 꽃 버스/ 여러 가지 전원 풍경을 그린 버스/ 날개 달린 천마 모양의 모습을 한 버스/ 미녀들이 잔득 타서 손을 흔드는 버스/ 심지어는 날개 달린 버스 같이 등장하였다. 하지만 이 회장은 맨 처음은 흥미로워 하다가 이내 고개를 숙였다.
이런 해프닝이 벌어지자 구경나온 시민들 취재하는 기자들로 평소에 한가하던 대방동 버스길은 그야말로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 했다. 그러나 온갖 기상천외한 버스가 다 등장 했지만 이 회장이 원하는 버스는 없었고 회사는 초조하기 시작했다.
반면 이런 기상천외한 해프닝으로 회사의 매출은 놀랍게 올라갔고 광고 효과도 엄청 났지만 한편으로는 병든 회장님을 이용해 회사에서 광고효과를 노리고 있다고 비난 하는 측도 있었다.
한편 여기는 경상도 봉화 산골 마을이다.
버스도 하루에 한번 밖에 들어오지 않는 오지인 이곳에는 동네라고 해봤자 벌을 키우고 산삼을 캐는 심마니들이 사는 다섯 가호의 집밖에 없었다.
이곳에 김 혜련 이라는 할머니가 한분 계셨는데 혼자 사시는 분이었다. 나이가 80이 넘어 귀도 어둡고 눈도 침침한 할머니를 돌보는 것은 마을 사람들과 하루에 한번 들리는 집배원 오 달 근이 분이었다.
특히 오달 근 씨는 서른다섯 되도록 장가를 못간 청년으로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처지이라 이 김 혜련 할머니에게는 아들처럼 그런 존재이었다. 오 달 근 이는 이곳에 편지 배달이 없어도 읍내에서 오십 리 길이나 되는 이곳을 꼭 들려서 할머니의 근황을 살펴보고 갔다.
그날도 며칠 전부터 잘 안 나온다는 텔레비전을 고쳐가지고 할머니 댁을 찾았다.
이 심심산골에서 노인의 유일한 심심풀이인 이 텔레비전은 노인의 보물과 같은 것이었다.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방향을 잡자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것은 뉴스 이었다. 뉴스는 이성실 회장의 이야기를 방송하고 있었다.
“야! 아가 저 노인네 눈매하고 입하고 내가 아는 아이하고 닮았다!”
김 혜련 할머니가 혼자 말처럼 그렇게 말했다. 할머니는 귀가 어두워 잘 알아듣지 못하고 화면으로만 텔레비전을 보시는 터이었다.
“저 어머니 뭐라고 말씀 하셨어요!”
오 달 근 이가 할머니에게 반문 하였다.
“아! 이놈아! 저기 저 영감탱이 본적이 있는 것 같다고 지금 아나운서가 뭐라는 거여! 한번 설명해봐라! 아들! “
오 달 근 이는 아무래도 양어머니 김 혜련 여사의 언사가 수상하여 자세히 뉴스 내용을 설명해 주었다.
“ 그래! 내 눈이 틀림없어! 그때 그 학생이 벌써 저런 노인이 되었고 만! 세월은 아무도 막을 수 없어! 애 야! 며칠 우체국에 휴가 좀내고 나하고 서울에 올라가야 하겠다!”
점점 알 수없는 말에 의아 했으나 오 달 근 이는 그 이튿날 우체국에 월차를 내고 할머니와 기차를 타고 서울에 가서 한 올 주식회사를 찾아 갔다. 할머니에게 자초지종의 이야기를 들은 한 올 기획팀은 즉시 행동에 착수하였다.
어쩜 이 할머니가 하늘 버스의 주인공인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확신을 가지고..
그 이튼 날 그날도 어김없이 대방동 정류장에 이성실 회장이 휠체어에 앉아 하늘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고 구경 나온 사람들도 오늘은 어떤 버스가 들어오는가? 궁금해 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언덕길을 힘들게 올라오는 버스가 한 대 있었으니 그것은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그 옛날 60년대의 하늘색 시내버스이었다. 버스는 사람을 가득 태운 채 정류장으로 들어와 멈추었다. 그러자 이성실 회장이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힘겹게 걸어서 정류장 버스 앞으로 갔다. 버스에서는 그 옛날 버스 안내양(여차장)이 껌을 짝짝 씹으며 내려서서는
“대방 동 이 여~ 대 방동 내리셔 여~ 저리 저리 조금만 댕겨 올라 서요!”
그렇게 소리를 지르며 손님을 내리게 하고 있었다.
이 회장이 그곳으로 달려가 다짜고짜 안내양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누 님! 찾고 싶었습니다. 살아계셨군요?”
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야말로 실어증이 일순간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렇게 달려드는 이 회장을 버스 안내양 김 혜련 할머니가 꼭 안아 주었다. 여기저기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 가 터지고 취재 경쟁에 열을 올렸다.
그날 저녁 석간신문에는 “ 하늘 버스 주인공을 찾다!” 라는 큼직한 제목아래 이회장과 김 혜련 할머니의 사연이 소개 되었는데 35년 전 대학 등록금을 가지고 시내버스를 탄 이 성실 군은 그만 버스를 내리려다 등록금을 소매치기를 당한 사실을 알게 되고 너무 어이없는 일에 울면서 버스 종점 가지 가게 되고 마지막 손님인 이 성실 군이 내리지 않자 그 사연을 들은 김 혜련 양이 그 딱한 사정을 알게 도기 그동안 열심히 계를 부어 탄 돈으로 등록금을 마련해 주어 무사히 학교에 등록하게 해 준다.
주소도 안적은 채 이름만 알고 많은 돈을 준 김 혜련.
돈이 되는 데로 해서 갖다 준다 고 약속한 이 성 실 군. 그러나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해서 그 돈을 마련해서 버스 회사를 찾아 갔을 때는 버스 회사의 경영 방침에 의해 안내양 제도가 없어진 뒤 이었다. 그 뒤로 이 회장은 김 혜련 양을 찾으려 팔방으로 수소문 했지만 오지 산골로 시집가서 그곳에 묻혀 사는 김 할머니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 회장이 그 양심에 걸린 일 때문에 그 고마운 버스 “하늘 버스” 를 기다린 것이란다. 이 감동 적인 이야기는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많은 사람들에게 추억 여행을 하게 해 주었다. 그 뒤 이 회장은 그동안 못 갚은 등록금의 몇 천배에 해당하는 돈을 김 혜련 할머니에게 드렸고 아무 혈육이 없는 김 할머니는 오 달 근 이에게 그 많은 돈을 물려주었고 오 달 근 이는 그 돈과 각지에서 그 미담을 듣고 답지한 성금으로 “하늘 버스 ” 라는 양로원을 만들어 운영하였다.
그 양로원 마당에는 한 올 주식회사에서 기증한 60년대 하늘색 시내버스가 이 성실 회장과 김 혜련 할머니의 미담을 간직한 채 서 있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