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태.양.
(극심한 폭풍우 뒤에는 더욱 찬란한 태양이 뜬다)
하늘은 또다시 푸르러 양털 구름 잔잔히 떼지어 가고
너무도 밝고 맑아서 어느 봄날이 살짝 잘못 찾아 온 것만 같다
노여운 폭풍우의 철퇴를 운좋게 피한 후
(물론 경상도 동해안 지방은 일부 비피해를 입었다 한다)
졸였던 가슴과 흔들리는 상념을 가만히 달래주는 날씨의 조화가
놀란 아기를 어르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용광로마저 녹일 기세이던 태양도
계절의 변화에 동참하여
서늘한 바람과의 조우를 반기며
한가로운 여유를 즐기고 있다
끝까지 여름을 사수하려던
화려해서 오히려 슬펐던
칸나꽃 울타리는 어느사이 처연히 스러져 가며
한치의 오차도 허용 않고
쉬임 없이 굴러가는 계절의 수레바퀴에 이제 순응한다
높이 자란 은행나무 무성한 초록 잎새들 위에
빌딩 숲 유리창 위에
자동차 지붕 위에
차들이 오가는 포도 위에 반짝이는
가을 햇살 내려 앉아 바람결에 흔들거리면
내 마음도 따라 일렁인다
모짜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0번을 들으면서
아름다운 구월을 사랑했다던 헤세를
나도 사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