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일 러시아 출장을 다녀왔다.
나의 동행자는
우리 회사 보스다.
작년 러시아 출장 길에는
러시아 항공 일반석
화장실 앞자리였다.
러시아 항공은 화장실 냄새가
좌석에서도 꼬리꼬리 난다.
대한항공은 비싸다고 했다.
'물 한잔 달라고 할래?'
한국 승무원 없는 곳은 비행기 안에서도 시중들어 드려야 된다.
우리 회사 보스는 영어를 잘 못한다.
바로 그날 그 러시아 항공 비행기가 격추되어 폭발했다.
다행히 내가 탄 비행기는 아니었다.
그 때 4박 5일에 상담 21건,
아침 9시부터 밤 11시까지
통역하랴, 시중들랴,
호텔에 여권 놓고 왔다가
코 앞에서 총 들고 설치는 군인한테
뇌물주고 겨우 무마하기도 하고...
다시는 동행 않으리라 ....
다음번에는 다른 직원도
러시아 구경 시킬겸 데리고 가십사 했다.
그 다음 출장길은
다른 직원 동행하고 가셨다.
대한항공으로.
이번 출장길은 다시 내 차례다.
나랑 가는게 편하단다.
어쩌랴.
보스인걸.
대한항공 비지니스 석이다.
인심 썼다.
그 전 다니던 외국인 회사에서
늘 비지니스 석 타고 다녔던 나의 전적을
알고 있는 보스다.
비행기값 너무 비싸다고 계속 툴툴거리지만 않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이번엔 10박 11일이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피곤하다는 보스에게
마사지 해주는 것으로 나의 업무는 끝났다.
식사? 안하신단다.
나도 굶었다.
비행기 내리고 혼자 드시면
섭섭하실까봐
같이 먹으려고.
다들 골아 떨어진 깜깜한 비행기 안,
잠든 보스의 옆 살짝 지나
비어있는 제일 뒷자리.
개인 등 키고
책 두 권을 다 보니
서울이다.
난 비행기 안에서는 도통 잠을 못 잔다.
인천공항.
연이틀 뜬 눈으로 지샌 나와 달리
보스는 쌩쌩 잘도 간다.
'푹 자서 기운나나봐요, 나는 빨리 못 가겠는데'
따라가기 힘들어 살짝 천천히 가십사...
'나도 피곤해. 좀 일찍 깼어야 하는데 아직 정신이 없어'
'피곤 한 듯 해서 못 깨웠는데 ...'
계속 쌩쌩...에효. 눈치는 쌈싸 드셨나 원.
'이번엔 좀 잤어?'
'한 숨도 못 잤는데...'
'담엔 비지니스 끊을 필요 없겠네, 어차피 못자는거.
나는 잠드니까 어디나 별 상관 없거든. 담 번엔 그 돈으로 크림이나 하나 사 주지'
아하. 이번엔 비행기 값이 비싸서 아무것도 못 사주셨구나.
'밥 먹고 가지 않을래요?'
'아니 소화가 안되서... 그냥 갈래.'
난 너무 허기지단 말은 ......못했다.
거의 뛰듯이 가는 보스를 잠깐 사이 놓쳤다.
서 있어 봐도 안 온다.
어느새 멀리 갔나보다.
끝까지 가도 없다.
후들거리는 다리 끌고 되짚어 반대편 놓쳤던 쪽 가서야...
반색을 하고 서 있다.
담배피러 나갔더랜다.
그놈의 담배... 그게 급해서 그리 쌩쌩 날라 갔었나 보다.
러시아에서 돈 넣어뒀던 봉투를 잃어버려 보스는 한국돈이 없다.
내 지갑에서 보스의 리무진 버스비를 같이 계산했다.
돌아오는 리무진 버스안.
내 옆자리에 보스가 앉는다.
지금은
살 맛대고 옆에 앉기 정말 싫다.
'추운데 있다 와서 그런가 ... 덥네'
비어 있는 다른 자리 찾아 앉았다.
창 밖을 보고 있으려니 눈물이 처량맞게 흐른다.
등 따습고 배 부르면 행복하다던데
연이틀 잠 못잔 고문에
촙고 배고프고 ...
주책이다.
나 지금 오버 하는거야...
속으로 아무리 얘기해봐도 안 멈춰진다.
보스가 눈치챘다.
왜 그래? 옆으로 와서 걱정한다.
아니라고 ...
눈치 챘다 싶으니 그제서야 그친다.
눈이 붓지는 않았겠지?
차마 고개는 못 돌린다.
손 올려 눈물 닦고 표정 관리 될 즈음...
괜찮다고, 괜히 센치해져서 그랬다고해야지.
고개 돌려보니
보스는 그새 잠들어 있다.
집에 돌아오니
우리 꼬맹이
저번 나의 홀 출장길에
길 가다 색깔 예뻐 샀던 크리스탈 반지를
내 손에 끼워 주었다.
그리고 그때 시장통에서 만원 주고 산 귀걸이도 끼워준다.
잊고 있었는데... 새록새록 그 때 생각도 나고...
이쁜 놈. 엄마 방 검색하다 발견한게지.
만나면 줄려고 꺼내 놓았다니... 고놈 참.
남편'웬거야?'
'못 봤어?선물 받았어'
'....'
'누구한테 받았는지 알려 줄까?"
'애인이 줬겠지'
내가 나한테 한 선물이란 말은 굳이 안했다.
아직 그럴듯한 반지하나 사주지 않은
무감한 남편이니
그게 가짜란 걸 알 리도 만무하다.
암 말은 않지만 편치는 않겠지.
참 요상치.
난 속이 풀린다.
이쯤에서 떼어 놓았던 나의 콩깍지를 다시 붙여 보기로 한다.
그래 내 남편이 좀 무심해서 그렇지,
사람은 나쁘지 않지.
원래 안되는 사람이 저 정도라도 신경쓰는것도
자기는 정말 애쓴거야.
남편의 좋은 점을 요것 조것
머리속에 하나씩 넣고
서운함은 지워 나간다.
출장길에 엄한 짓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래도 마누라 데리고 다니잖아.
그럼 그러엄.
슬~ 슬~ 자가최면 효과가 발휘된다.
자!
최면 깨기 전에
이대로 나의 영원한 보스
내 남편 옆으로 가서
자자.
앞으로는
제발
최면 풀리지 않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