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이십대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 찬란한 이십대가 불과 두세 달밖에 남지 않은 순간까지도 키스 한 번 제대로 못 해 본 여자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나였다.
내 별명이 한때는 \'연애박사\'였다. 책이나 영화에서 주워들은 지식으로 친구들 연애상담을 도맡아 했던 내게 친구들이 붙여준 거다. 하지만 이론에 밝으면 실전에 약하다고, 정작 나는 백지 그 자체였다.
해서 스물여덟 살에 서울행을 결심하면서 나는 분명하게 결혼을 포기했다. 선 봐서 억지로 결혼하느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기로 한 것이다. 그리 뜻을 정하자 마음은 편해졌지만, 어딘가 한 구석이 약간 섭섭하긴 했다. 결혼은 안 해도 찐한 연애는 한 번 해 봐야 될 것 같았다. 그 조급증은 스물아홉 가을을 맞이하면서 더 심해졌다.
그런 내 가슴에 염장을 지르는 일이 생겼다. 같은 화실에서 일하는 친구가 이혼을 한다는 거였다. 그 친구는 스물일곱 살이었는데, 스물에 만나 사랑하고 4년 정도 살다가 이제 헤어진다는 거였다. 나는 사랑 한 번 못 해 보고 이렇게 시들고 있는데, 할 거 다 해 보고 새 출발해도 그 친구는 나보다 두 살이 더 젊었다. 너무 불공평했다. 나는 친구의 고민을 들어 주면서도 마음 한 편으로는 그 이별마저 부러워했다.
드디어 그들이 갈라서는 날이 왔다.
그들 부부는 각자 방을 얻어 놓고, 살림을 반으로 나누어 같은 날 이사를 나갔다. 그 친구 쪽 도우미는 나뿐이었고, 친구 남편을 도우러 온 사람들은 많았다. 다 같은 계통에 일하는 사람들이라 조금씩 안면은 있었다.
그 집은 4층이었는데 사다리차도 없이 사람이 직접 모든 짐을 내렸다. 장롱을 내릴 때는 계단 모서리마다 걸려 진땀을 뺐다. 그 와중에도 친구는 끝까지 장롱을 포기하지 않고 가져갔는데, 막상 새로 이사할 친구네 방에는 들어가지도 않아 결국 버렸다. 미아처럼 골목에 버려진 그 장롱은 그들이 헤어진 사실을 비로소 실감나게 했다.
남자들이 많으니까 난 그냥 친구 옆에서 돕는 척만 하고 있어도 되었다. 하지만 꼼꼼한 친구가 이미 전날 다 싸고 분류도 다 해놓아서, 남은 일이라곤 나르는 것뿐이었다. 나는 친구가 가져갈 짐 위주로 나르기 시작했다.
남자들은 하나 내려놓고 담배 한 대 피고, 하나 내려놓고 물 한 번 마시는 등 여유를 부렸지만 난 쉬지 않고 날랐다. 난 꾀를 피울 줄 모른다. 그게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그런 점이 오히려 남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좀 쉬고 싶어도 한 사람이 너무 열심히 하면 신경이 쓰여 그럴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적당히 주변 사람들과 맞춰줄 필요도 있다. 어떤 자리에서 남 얘기가 나올 때 맞장구는 못 쳐 줄망정 반박을 하면 안 될 것 같은 불문율이 있는 것처럼. 튀지 않으려면 말이다.
하여간 그날 나는 미련스러울 정도로 열심히 날랐다. 내려오면 바로 올라가고, 내려오면 또 바로 올라가고. 그러다 보니 계단에서 내려오는 사람, 올라가는 사람들과 마주칠 일이 많이 생겼다.
그 중에서도 유독 한 남자와 자주 부딪혔다. 그는 안경을 낀 데다 야구 모자까지 눌러 써서 입매만 겨우 드러냈는데도 잘 생겨 보였다. 그와 마주치면 내가 먼저 구석에 착 붙어 섰고, 그러면 그가 살짝 몸을 돌려 지나갔다. 그 짧은 순간이 그렇게 설렐 수가 없었다. 그 맛에 힘든 줄도 모르고 신나게 날랐다.
드디어 짐을 다 싣고 친구와 나는 먼저 그 곳을 떠났다. 친구 부부는 잠깐 시장이라도 가는 것처럼 \'안녕\'하며 헤어졌다. 깔끔한 이별이었다. 물론 속마음은 그게 다가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살던 사람들도 그렇게 미련 없이 등을 돌리는데, 나는 생전 처음 본 그 남자와 떨어지는 게 어찌나 아쉽던지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멈추고 싶었다. 이제 그들 부부는 만날 일이 없을 것이고, 그럼 친구 남편의 후배인 그를 볼 기회도 아예 없을 것이기에 너무 마음이 답답했다.
친구의 작은 옥탑 방에서 이삿짐을 정리하면서 슬쩍 그 남자에 관해 물어봤다. 하지만 그 친구도 남편 친구나 후배는 웬만하면 다 아는데 아까 그 사람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씩 웃더니 생각 있으면 소개해 줄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철없이 \'정말?\'하고 받았다. 그들이 이미 헤어진 사이라는 걸 염두에 두기에는, 처음 본 그에게 끌리는 내 마음이 너무 강렬했다. 친구는 내 마음이 결정되면 언제고 얘기하라고 했다.
당시의 내게는 남자보다도 연애가 중요했다. 서른이 되기 전에 짝사랑 같은 거 말고 진짜 연애란 걸 한 번 해 봐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었다. 그런 시점에서 내 앞에 짜잔 하고 나타난 그 사람을 어떻게 뿌리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머리만 굴리고 있는데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났다. 친구 남편을 통해 그 남자가 먼저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해 온 것이다. 아, 나만 애를 태운 게 아니었다.
그리하여 2주 만에 다시 그를 만났다. 그는 나보다 한 살 많은 서른이었다. 어쩜, 그때는 그 나이조차 마음에 쏙 들었다. 당시 나는 마흔 먹은 남자랑 선보라는 얘기까지 듣던 참이었다. 내 나이에는 그것도 과분한 거라고 사람들은 내 기를 팍팍 죽였다. 정말 그런가 하고 겁먹던 차에 만난 서른이란 나이는 마치 연하인 양 신선했다. 그리하여 이십대의 마지막 크리스마스에 나는 첫 키스를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었다.
그가 나한테 반한 이유는 이런 것이었다. 그날 이삿짐 나르는 걸 보니 힘을 잘 쓸 것 같아서 마음에 들었고, 또 첫 데이트 때 먼저 온 내가 신문을 읽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보기 좋았다는 것. 지금은? 다 속았단다. 덩치는 커 가지고 막상 힘은 하나도 못 쓴다고 툴툴거리고, 생각 좀 해 가며 책을 읽으라고 내 머리를 톡톡 친다. 읽기는 열심히 읽는데 도무지 교양이나 지혜라곤 찾아볼 수가 없으니 이해가 안 간단다.
연애할 때부터 참 많이도 싸웠고 결혼한 지금도 그 전쟁은 진행 중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이 사실은 잊지 않는다. 우리가 보통 인연인가? 남들 헤어지는 마당에 눈이 맞은 커플 아닌가?
뒤늦게 불타오른 열정은 인생의 목표까지도 바꿔 버렸다. 남편도 나도 만화에 대한 애착과 꿈이 있었지만 결혼을 택함으로써 그걸 버려야 했다. 지금 우리는 단란한 일상과 두 토끼 보는 재미에 빠져 있지만, 세월이 흘러 언젠가 한 번은 놓쳐 버린 꿈을 아쉬워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랑했으므로 후회는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