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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 지 스팟


BY 김경란 2005-08-24

 



지난 주 일요일 6시
홍대 앞 '지 스팟'을 다녀왔다.

지하
음침하고 어두운 동굴을 들어가는 느낌
벽걸이 화면에서는
반라의 여인과
근육을 드러난 젊은 남자들의
포효에 가까운 노래, 동작, 음악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탁자와
많지 않은 몇 개의 의자
한 쪽 벽에는
성인용품들이 즐비하게 놓여있었고
맘내키는 대로 갖다 먹으라고 몇 종류의 음식들이 늘어져있었다

무대에는 간이 침대와
함부로 널부러진 이불
붉은 빛이 감도는 불빛, 촛불, 화면, 그리고 낯선 분위기들
그리고 대부분 평범한 옷차림을 한
젊은 사람들의 긴장된 표정은
무엇때문이었을까.

빨간색 티셔츠와 허름한 양복을 걸친
마광수 교수!
같은 테이블에 무심하게 마주 앉아
소박하고 마른, 그러나 당당해보이는 그를 만났다.
생각해보면
내 사고 속에 그에 대한 시비는 없다!
그의 논리에 대한 찬반도 내겐 의미가 없다!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일이지만
십년 동안 섹스를 못해봤다는 그의 말은
사실처럼 들렸다.
맥주를 마시면서 분위기에 익숙해갈 즈음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들기 시작했고
결국은 앉을 자리가 없어서 많은 사람들이 서서 행사를 지켜봤다
지난 모임에는
열 명 정도 왔는데...라고 흘리는 마교수의 표정은
고맙다, 라고 하고 싶어했다.
무엇에 대한 고마움인지는
언어로 표현하기에는 졸색할 뿐.

몇 명의 젊은이들이 한 명 씩 무대로 나가
마이크 앞에서
털어놓는 부끄럼 없는 -부끄럽지 않을 리 없지만 - 성고백
이미 그 나이와 경험을 지나쳐온 우리에게는
지루하고 진부한 고백이라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나는 내가 왜 여기 있지, 하고 생각했다.
그는 연실 김성봉 선생님이 만들어주신
노래 몇 곡을 반복해서
들어주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어느 새 그는 김성봉 선생님의 골수팬이 되어가고 있었다.


섹쉬한 '피아노'와
감미로운 '기다리겠어요' 는
어디 내놔도 으뜸 갈 노래라는 생각은
노래가 만들어지면서부터 들었기 때문에
마교수도 당연히 좋아하실 거라는 건 의심치 않았지만
그렇게까지 좋아하실 줄은 몰랐다.

그는 최종혁 선생님께
가사 많이 쓸테니
노래만들어달라는 약속과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저 허허 웃으시는 최샘,
긍정도 부정도 아닌 최샘의 표정을 나는 읽는다.
최샘의 다양한 생각의 한 끄트머리에서 항상 전전하는 나는
이럴 때 항상 당황스러워 속으로 킥킥 웃을 뿐이었다.
표정과 언어와 행동이 아니라
서로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연배시니까
김성봉 선생님과 최종혁 선생님과 마광수 교수님이
비슷한 마인드를 지니셨다면
충분히 공감대를 구축해놓으셨을 거라는 믿음이
잠깐 들었다.

공연과 이벤트가 뒤에 많이 남은 듯했지만
다소 거북하기도 하고
머리가 좀 아팠다.
아마도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에 대해
말초신경조차도 놀랐을 탓이리.
그래서 우리 일행은 먼저 일어나 여의도로 향했다.
당진 심심산골에서 상경한
늘씬하고 예쁘고 처녀 같은 그녀에게는
한강만큼 감동적인 현장이 또 있을까.
강바람은 잠시 혼란스러웠던 머리를 식혀주고
기분을 전환시켜주기엔 적절했고
선상 '노들나루'에서의 키위 쥬스는
거북한 속을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한강의 밤풍경은
아름다웠고, 슬펐고, 빛났다.
나는 지금 슬프게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는 중이었다.
시간은 몇 배 빨리 흘러갔다.

집에 돌아와 가방을 여니
마광수 교수가 모두에게 나눠준 선물
콘돔과 투명브라끈과
자신의 그림엽서 즐거운 사라가 있었다.
남편은 한참을
낄낄거리며 웃더니
한 마디 한다
콘돔에 촉진제는 왜 넣었대?
지 스팟,
무슨 뜻일까? ^^

암튼, 6년 전
괴이한 재즈바를 다녀온 이래 너무도
오랜만에 그와 유사한 빛깔의 별천지에 다녀온 기분
혹은
잠시 내가 사는 세상이 아닌 딴 세상을 다녀온 기분은
묘하고 충동적이었다!
내가 40대 중반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 또한
무관하지는 않으리.
새로운 경험은 늘 나를 긴장하게 하고
즐겁게 한다.
아마도 늘 변화를 꿈꾸는 나의 변태적 기질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가슴을 두드려본다.

3부 이벤트에서는 아마도
채찍과 수갑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잘만 버티고 있었다면
신비한 오르가즘을 경험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빨리 도평리로 돌아가
백세주를 마시고 싶다는 욕구는
그보다 더 강했다.

마광수 교수는 자기 삶에 솔직했고
내 이론에 당당했고
성담론에 요란스럽지 않고 점잖은 남자였다는 것이
지난 번에 이어 두번째 드는 생각이다.
이것이 설령 오해라면
이런 오해는 오래 가도 괜찮다는 생각도.

눈을 크게 뜨고 잘 찾아보면
부정 보다는
긍정이 쉽게 눈에 뜨일 때가 많다
세상 모든 사물에 대하여
부정은 단지 관념으로만 존재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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