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441

서점 이야기(1)


BY 개망초꽃 2005-08-23

한달을 놀았다. 이렇게 일년을 더 놀려고 했다.

근데 내게 주어진 건 “놀아라”가 아니였나보다.

한달을 실컷 놀다보니 아침에 일어나면 지겨워서 큰일이네

이 말이 나도 모르게 튕겨져 나오고 있었다.

그러던 중 롯데마트 서점에 다니는 친구한테서 흘러가고 말, 말을 들었다.

전집류 파는 서점에서 직원을 구한다고 했다.


옛날부터 내가 장사를 한다면 막연하게나마 서점을 하고 싶었다.

그것도 서울에서 말고 읍정도되는 지방에서 앞엔 뜰이 있고 뒤에는 산이 보이는

꿈결 같은 꿈을 꾸고 있었다. 아주 막연하고 아주 비현실적인 꿈을...


서점에서 직원을 구한다던데...이 말을 듣고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내가 서점을 직접 한다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고

뜰이 있는 서점은 비현실적이라면

서점에 다니는 것은 꿈도 아니고, 이룰 수 있는 현실이었다.


"서점? 그래 나 들어갈래."

누가 들어오라고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난 서점에 이미 들어가서 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상상에 빠졌다.


내 친구가 일하는 곳은 단행본을 파는, 우리들이 알고 있는 일반적인 서점이고,

내가 혼자 이미 들어가기로 결정한 곳은 전집류,

즉 몇 십 권씩 묶어서 파는 아동할인전집 파는 곳이다.


근데 큰 걸림돌이 하나 내 앞에 버티고 있었다.

나이가 문제가 되었다. 만 40살까지만 이력서를 받는다고 했다.

생일을 안 지났으니까 그걸 빼도 만 43살이었다.

세살이나 추가가된, 속일수 없는 주민등록증을 소유하고 있었다.


친구에게 내가 일하고 싶어 한다고 무족건 말해달라고 했고.

서점 매니저 분하고 통화를 하고, 이력서를 써서 서점으로 면접을 보러갔다.

서점도 크고 롯데마트나 백화점의 특징인 서서 일하는 곳이 아닌

이사급정도쯤 쓸 것 같은 넓은 책상이 있고

모니터가 납작한 최신형 컴퓨터에다가 편한 의자가 짝을 이루고 있었고,

손님과 상담할 수 있는 가죽으로 된 회색 쇼파도 있었다.


일단 면접은 좋은 쪽으로 흘러갔다.

글 쓰는데 취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게 맘에 들었는지...

아님 매니저 분이 나보고 인상이 좋다고 그랬는데 그게 도움이 된 건지.

7월 11일부터 출근을 개시했다.


한달만 더 놀고 싶었다.

아이들과 여름동안 여행도 하고 싶었고

친척들과 장사하느라고 몇 년 동안 못가 본 휴가도 가고 싶었고

실컷 컴퓨터에서 놀면서 글도 쓰고 싶었고

늘어지게 늦잠도 자고

퍼지게 텔레비전도 보고 싶었고

만나고 싶은 친구들 찾아다니고 싶었고

책도 밤새도록 봐야했고

남자친구도 만들어 봐야지 했다.


일하는 시간은 저녁 6시부터 밤 10시까지 네 시간이었다.

아니면 오전 10시부터 2시까지.

그것도 저녁에 나오랬다가 갑자기 밤중에 문자가 와서 오전에 나와 달라고 했다.

이 시간들은 고객이 드문 시간이라서 사실상 난 서점을 지키는 파수꾼역활이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책을 많이 사주고 보여줬다고 자신했는데..

요즘은 초스피드 시대라지만 책도 마찬가지였다.

출판사도 전혀 모르는 곳이 많았고

책의 질이나 내용면에서 아름답고 쉽고 논술적이었다.

교과서와 연계된 유아 책들..그것이 요즘 엄마들이 선호하는 책이었다.

나 개인적으론 자연스럽고 화사한 수채화식의 그림을 좋아하는 반면

요즘 엄마들은 개성이 강하고 지혜롭고 독특한 세계를 좋아한다.

내가 접했던 아이들 책은 획일적인 크기와 두께의 책이었는데

요즘 책은 책 크기가 들쑥날쑥이고 책의 모양도 기발해졌다.

책이름도 참 친근감 있고 자연스러웠다.

“톡톡 똑똑” “탄탄” “쇠똥구리” “마술피리”

책의 종류가 많이 다양해졌다.

경제동화, 수학동화, 자연동화...

아이들이 읽으면 머리가 좋아질 수밖에 없는 요소들을 갖춰서 책장에 진열돼 있었고,

머리 좋은 아이로 키우고 싶은 엄마들이 바램을 출판사들은 겨냥하고 있었다.


서점 직원들은 말들을 얼마나 잘하든지...

옆에서 듣기만 해도 책에 대한 지식이 풍부해서 넘쳐났고,

귀가 쫑긋하니 사고 싶은 마음이 쏙 들게 설명을 잘 했다.

말주변 없는 난...걱정부터 앞서고 있었다.


난 아르바이트 아줌마다.

말단 사원이기도 하다.

그래서 고객이 없는 오전이나 밤 시간에만 서점을 지킨다.

아는 것이 없어서 고객이 오면 일단 웃어주고,

그 다음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어주고,

그 다음은...

“제가요...알바거든요...며칠 안돼서 모르는 게 많아 배우는 중입니다.

죄송합니다. 책에 대해 잘 아시는 분한테 전화 걸어서 알아볼게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서점에서 일하는 직원 분들은 내게 가르쳐 주는 게 별로 없다.

제일 먼저 내 스스로 책을 보고 책을 익혀야 했다.

한 달 동안 책만 보고 외우느라 머리카락이 다 빠질뻔했다.

한달쯤되니 대충 책을 알겠는데

그 다음은 고객들에게 책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이 이제는 더 어렵다.

설명을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책의 제목과 출판사 이름을 외우는 것보다 더 어려운 관문이다.

이 길죽하고 흐미틱하고 아리송한 문을 잘 통과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