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의 개학일에 맞춰 휴가를 잡았다.
그러다보니 더위도 한풀 꺾였고 비도 주룩주룩 내리는 날들이었다.
드디어 168 큰 키인 내 키를 뛰어넘은 딸아이.
아직은 살이 많이 찐 상태이긴 하지만 그래도 1년 전 보성으로 보낼 때보다 훨씬 보기가 편해졌다.
한창 날이 서 날카로웠던 딸아이의 심리상태도 한결 부드러워졌고 예전의 사랑스럽던 눈빛과 몸짓도 많이 되찾아서 아이와 함께 있던 시간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여전히 철이 없고 작은 일에도 감정의 기복이 심해지는 편이지만 나는 그런 모습이 되레 아플만큼 사랑스럽다.
이 어리석은 철부지 아가씨를 그래서 자꾸 어루만지고 껴안고 살을 부빈다.
잠에 빠진 아이를 살짝 건드리면 내 쪽으로 몸을 돌리며 포옥 안긴다.
귀도 만져주고 뺨에 뽀뽀도 해 주고 감은 눈 위로도 입을 맞춘다.
예쁘다. 예쁘다. 내 딸은 참 예쁘다.
내 딸이 얼마나 예쁜지 다른 사람들이 몰라준다 해도, 그래서 딸아이의 어리석음을 미움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해도 끝까지 나는 믿는다.
딸아이의 선함을... 순수함을... 아름다운 우둔함을...
아이는 나름대로 잘 살고싶어한다. 그런데도 두려움이 너무 많다.
자신의 싸이 홈피에 들린 친구들의 한마디에도 터무니 없을만큼 행복해 하고 또 바보스러울만큼 우울해 하기도 하는 아이를 향해 말해준다. 끊임없이...
<너를 찾아... 그런 건 어쩜 아무 것도 아냐. 주위의 사소한 일에 네 인생이 좌우되지 않도록 네가 중심을 잡고 강해져... 너 자신으로부터 행복을 찾으렴... 제발... 내 아이야...>
<너 사진 세 장 퍼 간다. 내 홈피에도 와주렴. 널 사랑해. 내일 보자.>
집에 와서 아이의 싸이 홈피에 들렀더니 아이의 친구 하나가 방명록에 이런 글을 남겼다.
지금은 개학을 해서 이미 그 아이와도 즐거운 만남을 가졌는데...
미리 이 글을 보았다면 아이는 더 행복해했겠지.
사흘을 함께 여행하면서 아이는 즐거워하기도 했고 힘들어하기도 했고 때로 아빠한테 또 나한테 혼이 나기도 했다.
조금만 힘들어도 짜증내는 모습을 보여서 혼났고 동생한테 덜 잘해줘서 혼나기도 했다.
혼이 나도 별로 마음에 담지 못하고 금방 헤헤거려서 예쁘기도 하지만 또 그 때문에 더 자주 혼이 나기도 한다. 이 눈치 없는 철부지는....
학교에 짐을 내려주고 친구들과 반갑게 인사하며 좋아라 하는 모습을 본 뒤, 우리는 다시 먼 길을 떠나왔다.
다시 오랜 시간 헤어져 있어야했기에 우리는 일초도 아쉬워 어쩔 줄 몰라했는데 그래도 이별의 시간은 결국 오고 말았지.
새벽에 다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남편은 내내 운전을 하고 힘든 일을 도맡아 하느라 몸 상태가 엉망이 되었다.
아들아이도 곧 아빠 키를 넘어설 만큼 훌쩍 커 버렸고 또 그 값을 하느라 나름대로 무거운 짐도 들고 도우려고 애썼지만 남편에게는 눈에 보이는 그런 것들보다 훨씬 무거운 짐들이 가슴에, 어깨에 수북했을 것이다.
내가 씻는 사이 남편은 혼자서 몹시 울적해졌나보다.
혼자 문을 닫고 다른 방에 있다.
살짝 들여다보니 무거운 기운이 감돌고 남편의 몸은 떨리고 있다.
아... 우는구나.
내 가슴이 철렁한다.
남자의 눈물은 너무나 속상하고 또 아프다.
왜... 울기까지 하는 걸까.
여러가지 생각들이 오가겠지.
딸아이의 생각과 맞물려 다른 이런 저런 어려움까지 떠 올라 몹시도 힘들겠지.
딸아이를 혼낸 것 조차도 마음에 상처가 되어 자기 속을 후벼 파겠지.
살짝 방 문을 닫고 돌아 선다.
좋은 여행 되게 하려고 잠도 몇 시간 못 자면서 내내 운전하며 이 곳 저곳 구경 시켜줬던 남편이 잠이 오지 않는지 수면제를 꺼내먹는다.
시원하게 씻고 나와 개운했던 몸과 마음이 일순 무겁게 축축하게 가라앉는다.
그냥 대충 사랑하고 대충 아끼면 이런 아픔은 없을 텐데...
사랑도 병이어라,
병이어라.
절대적 아픔이어라.
우린 왜 사랑하며 사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