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눈에 불 켜지는 사람 만나기가 참으로 쉽지 않다.
입체적으로 뜯어보고 가닥가닥 떼어서 해부했을 때 완벽한 점수 주어지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神이다.
물이 좋으면 정자가 허술하고 정자가 좋으면 물이 탁하다.
그러나 물좋고 정자좋은 곳이 있다고 해도 이미 다른 사람이 차지하고 앉아 있는, 선점을 빼앗긴 아쉬움으로 인해서 플러스 알파의 높은 점수를 더 얹어주게 된다.
그래서 남의 밭에 콩과 놓친 고기가 더 커 보인다고 했나?
내 것에 대한 만족도는 굿자놓은 화투판 같이 밋밋하고 평균치에 미달하기 때문에 신비감이나 호기심은 아예 기대조차도 하기 어렵다.
보완을 원하는 욕심이 은근슬쩍 옆으로 눈길을 새어 나가게 하는데..........
십여년전에 여고 동창회에 가기 위해서 시외버스를 타게 되었다.
지독한 멀미로 인해서 자리에 앉자마자 곧바로 눈을 감고 의자뒤에 몸을 던지듯이 묻어 버렸다.
이럴땐 잠시만 눈을 붙이고 나도 머릿속이 개운하고 멀미를 하지 않기에 짧은 시간이라도 눈을 붙혀야 편할 것 같았다.
얼마가 지난뒤에 눈을 떴다.
그런데 처음 차에 탔을때는 안 보이던 남자가 중간에서 탔는지 건너편 앞자리에 뒷꼭지만 보인채로 앉아 있었다.
순간 그 남자의 뒷 모습이 강하게 내 두눈을 찔러 버렸고 갑자기 내 가슴이 심하게 요동을 치면서 괜스레 얼굴이 화끈 거렸다.
감색양복을 입고 속에는 옅은 핑크색 와이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양복 깃위로 살짝 드러난 핑크색 와이셔츠의 보일듯 말듯한 가느다란 선이 마치 자로 그은듯이 반듯하고 선명했다.
굵지도 가늘지도 않고 마치 양복 깃위에다가 핑크색 바이어스를 대고 박음질이라도 한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흐트러짐이 없었다.
단정하게 깎아 올린 뒷머리와 턱을 괴고 있는 손가락엔 은색 반지가 끼어져 있었다.
기혼남이든 미혼남이든 그게 중요하게 아니고 얼굴이라도 한번 보았으면 하는 맘이 간절했지만 드러내 놓고 앞에 얼쩡 거리기도 민망했다.
마냥 뚫어 질듯이 쳐다보기만 했을 뿐 나를 위한 기회는 오지 않았다.
한번쯤 뒤를 돌아다 보아 주기를 바랬으나 그 남자는 뒷꼭지가 근질거리지도 않았는지 가끔씩 시계를 들여다 보기도 하고 머리를 뒤로 쓸어 올리기만 할 뿐 미동도 하지 않았다.
목적지는 다가오는데 알지 못하는 흥분과 초조함 때문에 혼자서 속 앓이만 해야 했다.
'그래 내리면서 슬쩍 함 훔쳐보자.....'
목적지에 다다르자 그 남자도 앞서서 일어서더니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가는 것이었다.
이대로 놓치고 말것 같은 허탈감에 바짝 붙어서서 옆모습이라도 볼려고 했지만 무심한 그 남자는 불이 붙고 있는 뒷 여자의 가슴팍은 염두에도 없는듯 그대로 휘적 휘적 옆 골목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완전히 지붕 쳐다 본 개가 되고 말았지만 혼자서 싱겁게 웃는 걸로 끝을 내고 여운의 꼬리를 완전히 거두지를 못했다.
얼굴 한번 못 보고 그대로 보내 버린게 못내 아쉽고 깝깝했다.
그날의 그 감동이 잊혀지지 않아서 남편에게 핑크색 와이셔츠를 입혀 놓았지만 입을 때마다 양복깃과 와이셔츠의 굵기 함수관계가 엉망이었다.
굵다가 가늘다가 흐트러지다가..........
가슴 뛰게 했던 그날의 그 가늘고 선명했던 선의 매력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수가 없었다.
차라리 재봉틀로 드르륵 박아서 대리 만족이라도 느껴보고 싶을 정도로 간절했던 그 기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있는 이유는 뭘까.
내 생애에 그렇게 간절하게 맘속을 휘저어 놓았던 사람도 없었다.
그 감정은 무엇이었나.
만일 그때 그 남자가 손을 내 밀었다면 난 모든것 버리고 따라 나섰을것 같은 벼랑에 선 기분이었다.
윈저공이 심프슨 부인을 택한 이유를 알겠다고 하면 너무 심한 비약이 되겠지만 첫눈에 준 그 감동의 깊이는 셈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바닥을 드러내지 않는다.
내 가까이 있는 사람이 요즘 바람이 났다.
가정과 일을 건성으로 돌볼 정도로 깊이 빠져 있어서 온 식구들이 걱정을 하고 있지만 안중에도 없는 듯 하다.
와이프가 울면서 하소연 했지만 마땅이 들려줄 얘기가 없어서 이 얘기를 들려 주었다.
빠지는건 잠시의 틈이 허용이 된 만큼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다, 삶의 크라이막스를 맞이한 싯점이니까 머지않아서 다가올 내리막길을 기다리라고..........
누군든 잠시잠깐의 틈은 보일 수 있다는, 어쩌면 그 당시의 나를 변명할려고 일부러 들려주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