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부도를 내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갈곳이 없었던 우리는 일단 부모님의 전갈로 시막내이모댁으로 갔다
그곳에는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식구들이 다 모여 있었다
시부모님, 우리 때문에 집을 날린 시작은집 식구들, 시이모들, 모두 모여 근심어린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베풀기 좋아하는 막내이모는 우리를 위해 상다리가 부러져라 맛있는것을 해주셧고
철 없는 나는 그 많은 식구들 설것이에 신물이 나 했다
그 집에서 이틀을 보내고 간곳이 시고종사촌집이었다
금호동이라는 동네였는데
집안은 햇볕이 들지 않아 이층이었는데도 낮에도 불을 켜고 살았다
베란다도 겨우 건조대하나 놓으면 꽉 차는 그런곳이었다
그곳에다 시부모님은 우리를 부탁하고 며칠을 더 머무시다 다른곳으로 떠났다
여전히 철이 없던 나는 남의 집살이가 얼마나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당당하게 두달을 얹혀 살았다
어쩌면 철이 없어서, 눈치를 볼줄 몰라서 내가 마음고생을 덜 한 것이 아닐까 싶다
만약 지금의 나라면 그 집에서 단 삼일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남의 식구가 몇달을 내 집에 와 있는 것이 얼마나 성가시고 귀찮은 것인지
그때는 잘 몰랐다
당시 임신중이던 나는 잠이 무척 많았고
남편이 고종 사촌형네 공장에서 일을 도와주는 동안 낮잠이나 퍼질르게 잤다
그집에는 방2개, 마루하나있는 2층 전세집이었는데
남편과 나는 아이들 방에서 잤고
그 사촌형네는 아이들와 데리고 안방에서 잤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 큰 아이들와 데리고 자는게 얼마나 불편했을까 싶다
부부가 두 달동안 이나 밤일은 어찌했을까
정말 엄청난 불편을 끼친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청소도 제대로 하지 않았던것 같다
겨우 내가 자는방 마루만 청소했지 안방은 한번도 해주지 않았다
그 형님은 직장을 다니느라 몹시 바쁜사람이었는데도
이런 나에게 눈치 한번 주지 않았으니 참으로 고마운 사람이었다
오히려 내가 있으니 식사 준비를 해주어서 무척 고맙고 편하다고
내게 임신복이니 먹을것이니 부족함없이 사다 주었다
하루는 너무 심심해서 동네 구경을 갔었다
좁은 비탈길을 올라가니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이 참 신기했다
대부분 이층 내지는 삼층집들이 이-삼십센티미터 간격으로 지어져 비탈길을 메우고 있었다
집옥상에는 그당시 내눈으로는 개집처럼 지붕에 붙는것이 있었는데
알고보니 옥탑방이라는 것이었고 그곳에도 어김없이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야말로 이동네의 집들은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그 말이 참 어울리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난 서울이라는 곳의 집들은 다 그 모양인줄 알았고
이런 삭막한 곳에서 살 일이 꿈만 같이 느껴졌었다
지금도 가끔 그 동네를 지나다 보면 지금은 깔끔한 아파트로 단장된
그림같은 모습이 보인다
예전의 닥지닥지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잊지 못할 금호동
고마우신 사촌형님네들
지금은 크게 성공하여 우리같은 사람과 어울리지도 않는 분들이지만
정말 내게는 은인과도 같은 분들이시다
갈곳없는 우리들을 두달이나 거두어 주셨으니..
그래서 복을 받아 지금 잘 되셨나보다
가끔은 그립다
다시는 그런 상황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닥지닥지 붙어 있던 금호동의 그 동네가, 철없었던 그 시절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