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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만나 그 산에 갔어.


BY 개망초꽃 2005-08-08

그렇게 너를 만나 그 산을 갔어.

너를 만나지 몇 년이 흘러

이제 나는 다시 너를 만나서 그 산으로 흘러가게 된거야.


그 곳은 일산처럼 여름이었어.

일산의 나무처럼 초록색 긴 치마를 입고 있었고,

호수공원에 무리지어 피어 있던 원추리 꽃보다

산에 피어 있던 꽃은 더 밝은 색 난방을 입고 있었어.

오솔 길가엔 며느리 밥풀 꽃이 밥풀을 두 개 물고 얼른 감추려 했는데,

내게 들켜서는 부끄러운지 두 눈을 감아 버렸어.

아...맞다.

네가 먼저 꽃을 발견하고 며느리 밥풀 꽃이다 그랬지?

그래서 내가 숨이 찬 목소리로 그래에~~밥풀을 두 개 물고 있네. 그랬고...

너 그게 봤니? 꿩의 다리라는 꽃?

이름이 확실하게 맞는지 모르지만 내 기억 속은 맞는다고 그러네...

민들레꽃의 씨 알지? 그것처럼 동그랗게 피어 있었어.

바위틈에 하얗게 피어 나를 보았는데 너한테 말해준다는 게

바위에 오른다는 게 무섭다보니 말해 줄 여유가 없었어.


난 심장이 보통사람들과 다른가봐.

바위에 오르면 오를수록 바위가 무서운 거야.

그 바위가 나를 낭떠러지로 내 동댕이쳐 뼈마디 마디를 분리시킬 것 같거든,

그 바위가 나를 쭐떡 미끄러뜨려서 굴려서는 나무토막이 되어 영원히 산에 묻힐 것 같거든,

그 바위가 나에게 덮쳐 하나밖에 없는 내 몸뚱이를 빈대떡으로 만들 것 같거든.

그 바위가 날 받아주질 않았다기 보다는

내가 바위를 안아줄 수 없는 냉혈인간인지도 모르지만...

어찌됐든 난 바위와 시절인연이 닿지 않는 평생선일지도 몰라.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어떤 사람일지도 모르지...

어떤 사람? 옛날엔 있어서...막연하게나마 어떤 사람이...

근데 지금은 없어.

사랑은 하고 싶지만 사랑을 믿을 수 없다는 게 맞는 말이야.

내가 너에게 자꾸 사랑타령을 하지만

사랑할 대상이 없다기 보다는, 뭐... 쉽게 말해 세상에 반은 남자라는데,

사랑할 수 없는 내가 더 문제가 있는거지...


산에 오를 때마다 쉽게 산을 오른 적이 별로 없었어.

대부분 산에 오를 때마다 내가 왜 여기에 오르는 거지?

내가 왜 여기에 오르면서 가슴이 터질 듯 숨이 차야하고,

내가 왜 여기에 오르면서 다리통이 못쓰게 될 것 같이 아파야하는지...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돈이 생기는 일도 아닌데, 내가 왜 여기에 오르는 거지?

근데 산에 오른다는 것이 참으로, 참...신기할 때가 많아.

산에 오른지 30분쯤엔 벌써 힘들어서 어떻게 저 산봉우리를 오르나?

걱정이 먼저 앞에서 걸어가는 거야.

한 시간쯤 되면 어떤지 알아?

아이고...내가 미쳤지 여길 왜 와가지고 집에 있음 지금쯤 실컷 잠자고

맛있는 거 먹으면서 세상에서 제일 편한 자세로 티비를 보거나 책을 볼 텐데...

그런데, 한 봉우리를 넘고, 너무 힘들어 점심 맛이 뭔지도 모르고 먹고선,

과일을 먹고, 이번 산행 땐 얼린 체리가 밥보다 더 땡겼어. 너도 진짜 맛있다고 했지?

커피를 마시면, 왠지 비었던 일상에 무엇인가가 채워져 있는 거야.

이런 기분으로 너는 길도 없는 바위를 오르는 거니?

내 자신이 뭔가를 이루었다는 자신감 같은 거, 이것 때문에 바위를  정복거니?

구파발에서 탱탱 얼린 물 한 병을 사서는 원효봉을 넘기면서

그 한 병을 목구멍으로 마저 넘겼어.

빈 물통을 가방 옆구리에 찔러 넣으면서 여름엔 두 병정도는 물을 챙겨야겠구나 했어.


점심을 먹고 오후에 출근한다는 너를 먼저 보내고,

난 다시 하나의 봉우리를 보며 둔탁맞은 워킹화를 믿고 염초봉을 향했어.

네가 가끔씩 간다는 그 곳은 완전 직벽이었어.

조물주가 한번에 힘을 주고, 두 번도 아닌 한방에 칼로 무 자르듯이 깎았더구나.

직벽 밑에서 올려다 본 난 입이 벌어져서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쳐다보다가

나와 똑같이 올라갈 엄두도 못내는 옆 사람과 그랬어.

으아~~~쳐다보기만 해도 무섭워요. 어지럽다...

더 떠들어봤자 올라가는 사람들에게 폐만끼치기만 해서

입 다물고 앉아 있어도 현기증 나는 그곳을 벗어나 우회를 했어.


올라가면서 또 떠들었어.

올라가는 길도 장난이 아니네...

계속 돌계단이었어.

또 떠들었어. 장난이 아니네...


산에 오르는 길을 인생길에 비유를 하지.

쉬운 말로 산 넘어 산이라는 말도 있고...

나도 힘들 때마다 산 넘어 산이야 그랬지.


염초봉을 오르는 일행과 우회하는 우리와 위문에서 만나기로 했어.

우회하는 우리가 먼저 도착해서 위문아래에 앉아 한 숨을 돌렸어.

다 왔다는 안도의 숨일 수도 있고, 더 이상 오르지 않아도 된다는 정착의 숨일 수도 있어.

여기서 난 너에게 온 문자를 확인했어. ‘아랫세상엔 비가 오고 있단다.’

커피 한 잔을 마셨어.

우회하는 오르락 산길에서 멀리서 울리던 천둥 소리가 가슴을 울리는 메아리였어.

그 메아리가 안개가 되어 커피 잔으로 스며들었어.

수문장처럼 서 있던 바위로 안개는 스며들고, 바위에 있는 나무에게 스미고,

바위틈에 피어 있던 꿩의다리꽃에게도 살며시 스며들었어.

저 아랫세상에 비가 오고 있다는 증거였고,

이제 곧 이 산에도 비가 올 거라는 예고였어.


 

이제 남은 건 내리막길이야.

힘들게 올라서는 길이 있으면 반드시 쉽게 내려가는 길이 있기 마련,

이래서 인생길을 산길과 비교를 했나 봐.

내려가는 산길에서 소낙비를 만났어.

그러나 오래된 산과 함께 살아온 나무가 비를 받혀줘서

모자와 겉옷만 조금 떨어질 뿐 내 몸으로 스미진 않았어.

그리고 비는 곧 다른 곳으로 떠나고...

너와 만났던 그곳에서 너도 먼저 떠나고 나도 떠나왔어.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몸무게의 반은 되는 배낭을 메고,

우리가 내려온 그 길을 올라가고 있었어.

사람으로 태어나 죽음으로 가는 길은 비슷비슷해.

이런 말도 있잖아. ‘인생길은 한발 한발 죽음으로 가는 길이다.’

그러나 그 무게는 다 틀려.

내가 짊어진 배낭은 지금 올라가는 저 사람들에 비핸 아무것도 아니지...

내가 짊어진 세상 짐은 나보다 힘들게 사는 사람들에 비해선 아무것도 아니지...

 

올라서기 시작할 때 힘들 산행이었지만

정상에서 내려다 본 아랫세상은

"너 까짓 거, 아무것도 아니야 우습다고...흐흥~~"

그리고, 내려서 바라다 본 산은 아름답기만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