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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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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게..우아하게........


BY 蓮堂(그린미) 2005-08-02

흔히들 대우를 해 줘야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대우를 해 주어도 제대로 된 대우 한번 받을 수 없는 아귀 안 맞는 푸대접에 비명 한번 못 지르고  숨죽이며 살아온 우리 어머니들의 한스러움은 시대가 밀려가도 풀어지지 않는 응어리로 남아 있다.
최소한의 인간 대우, 사람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가장 기본적인 대우마저도 사치라고 여겨야 했던 암울한 시대의 내 어머니들의 얘기다.
예전의 우리 어머니들의 식탁은 부엌 바닥이었다.
넓지 않은 방 구조를 굳이 핑계를 댈 수도 있겠지만 男尊女卑의 봉건적이고도 권위적인 의식의 문제가 더 크게 자리하고 있는 까닭이었다.
여자는 남자보다 낮아야 한다, 그러니까 당연히 방보다도 더 낮기만 한 부엌에서 밥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밥상은 여자가 밥 올려놓고 먹으면 무슨 천지개벽이라도 할것 같이 금기시 되었던 때가 있었다
빈부의 차이, 지역적 또는 시대적으로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여자를 대우 해 주지 않은 건 관습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부엌 한쪽 구석에 쌓아놓은 불쏘시개 짚단을 한 움큼 바닥에 깔고 앉으면 그게 식탁의자가 되었고, 박 바가지에 한 덩이 쏟아 부은 보리밥덩이는 맛과 영양가 무시한, 단순히 인생고를 해결하기 위하여 시어터진 김치 한 조각과 함께 목구멍으로 밀어 넣는 행위로 허기를 달래야 했다.
아궁이에 지피고 난 잔불에 몸 녹이며 바가지 껴안고 앉아서 뱃속 채워야 하는 그 설음 덩이는 식은 보리밥 덩이만큼이나 단단하고 야물기만 했다.
바가지에 밥 담아 먹는 며느리는 배 크다고 바가지 빼앗은 시어머니 얘기도 심심찮게 들었다.
없는 집 살림에 배구럭이 큰 며느리 들이면 살림 거덜난다는 구실로 바가지조차도 허용이 되지 않았다는 흉측한 얘기 또한 전설로 남아 있다.
그러나 층층시하의 시집어른들과 남편의 피붙이들, 그리고 아이들 몫으로 밥상 차려서 방으로 올려  놓고 나면 솥 안이 텅 비어 있을 때가 허다했다.
궁색한 살림에 아녀자의 몫이라고 따로 마련되어 있을 리 없는 밥그릇이었다.
누룽지라도 있으면 그나마도 다행스러웠지만 그것조차도 돌아오지 않을 때는 주린 배를 한사발의 냉수로 채워야 했었다.
나는 굶어도 가족만은 굶길 수 없다는 절대절명의 책임감으로 똘똘 뭉쳐진 우리 어머니들의 思考는 그 시대의 어머니 상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가슴 저미는 희생이었다.
어디에선가 들은 기억이 났다.
체증이 걸리면 허기를 느낄수 없다고 해서 일부러 밥덩이 통채로 목에 밀어 넣어도 체하지도 않더라는 가슴 아픈 얘기를 듣다보니 미어터지는 살덩이 빼려고 천문학적인 돈들이는 요즘의 풍속도에서 격세지감을 느껴야 했다.
허우적거리며 긴 세월 보내 놓고 나면 어느 듯 반백의 머리로 며느리를 들이게 되는데 이때쯤이면 방에 앉아서 밥상을 받아보게 되지만 이것 역시 어른들이 안 계신 뒤에야 누릴 수 있는 혜택이었다.
장수하는 시어른들 밑에서의 입지는 여전히 아랫사람이어야 했고 안방차지 하려고 하면 어느 듯 북망산이 가까이에서 부르고 있었다.
내 어머니가 그러했고 어머니의 어머니가 그리 하셨다.
가난이 빚어낸 단순한 무지가 아닌 여자를 비하시키고 남자에게 예속된 하찮은 부속물에 불과 하다는 부계사상이 오랜 세월 그 시대를 틀어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가족이라기보다는 가사노동과 종족보전의 의미 외에는 여자에게 부여된 건 아무것도 없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마저도 알게 모르게 박탈당하고 산 그 어두웠던 과거에 새삼 머리가 휘둘려지는 느낌이었다.

혼자서 식은 밥 한 덩어리에 아침에 끓여놓은 된장찌개 두어 숟갈 퍼 넣고 짓이기듯이 비비다 보면 문득 숟가락 끝에 끌려 나오는 서글픔이 울대를 쥐고 흔들었다.
가족들이 뿔뿔이 집을 떠나가고 나면 언제나 나 혼자서 밥을 먹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난 어머니가 생각났다.
부엌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급하게 한끼 떼우고 나서 물 두멍에 바가지 넣어 휘휘 저어 퍼 마신 물은 못 다 채운 어머니의 뱃속을 그나마도 지탱해 주었다.
바가지 밑으로 줄줄 흘러내리던 물꼬리가 어머니의 앞섶을 적시던 모습이 생각나면 난 항상 목젖이 뻣뻣 해 지는 갈증을 느끼곤 했다.
지금은 이 넓은 집에서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얼마든지 누릴 수 있는 식탁문화를 게으름의 극치로 항상 궁상맞게 쭈그리고 앉아서 한끼를 떼우곤 했다
나 혼자 먹는 거 웬만하면 그릇 한 개라도 덜 적시고 숟가락 하나라도 더 씻는 게 귀찮고 번거롭다고 생각해서 대충 목구멍만 채우면 된다는 지극히 검소한(?) 발상이 때로는 서글퍼졌다.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먹고 살아야 하나라는 사치스러운 자괴감에 헛웃음이 새어 나왔지만 불특정인을 향한 형체없는 원망의 꼬리가 잘리워 지지 않는다.
가족들이, 아니 하다 못해 아이 하나라도 내 곁에 남아 있다면 이런 구차한 밥상의 모양새는 아니건만 스스로에게 너무 소홀하고 나 자신을 너무 푸대접하고 있다는 거 알지만 상식대로 아는 대로 살아지지는 않는다.
뿐만 아니라 난 웬만하면 내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가족들 입에 들어가는 게 더 즐거울 수밖에 없는 그 옛날 우리 어머니의 모습 그대로 닮아가고 있다는 걸 알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옛날엔 가난이 주범이었지만 지금은 넘치는 모정만이 주범이었다.
가족들을 위해서는 하루종일 싱크대 앞에 서 있을수 있지만 나를 위해서는 일분 일초도 움직이기를 거부할 바에는 스스로가 천하다고 여겨질수 밖에 없다.
스스로를 구석으로 몰아넣고 스스로의 몰락이 감당이 안되어서 갈팡질팡하는 구질구질한 자화상이었고, 자업자득이었고, 원천적인 모순 덩어리의 산물이었다.

아이들이나 남편이 나를 위해서 먹거리를 권할 때 덥석 받아먹는 스타일이 아닌 나를 보고 남편이 화를 낸 적이 있었다.
그렇게 살다간 다음엔 대우도 못 받고 얻어먹을 거도 못 먹고 굶어죽기 십상이라고..........
말하자면 난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별종으로 둔갑될 수 있다는 뼈 박힌 말이었다
내가 나를 홀대하는데 어느 누가 살갑게 엎어지듯 대우 해 주겠냐는 지극히 당연하고도 옳은 말에 내심으로는 고개가 끄덕여 지지만 행동으로 옮겨지는데는 많은 생각을 해야 했다.

내 친구가 그러했다.
자기는 이 세상에서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자라고...
그래서 혼자 있어도 온갖 반찬 다 차려서 우아하게 먹고, 우아하게 차 마시고 우아한 옷 입고 우아하게 외출 하다고.
우아하게.....우아하게.......
그녀 스스로 우아하다는 생각 - 착각일수도 있지만 - 을 가지고 있으니까 남편도 아이들도, 아내를 엄마를 제일로 여기고 대우 해 준다고....
남의 나라 얘기 같아서 한참을 부러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그래..맞다...그녀는 참으로 우아하고 참으로 괜찮아 보이는 여자였다.
나를 높힘으로서 상대방 눈높이도 덩달아 달려 올라간다는 거 지금이라도 늦지 않은 깨달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