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의 그 빛깔이 발끝에 묻힐 정도였던 그 해 스무살때, 처음 그 애를 만났었다.
뭐랄까, 순박하게 보였던 단발 머리의 풋풋함이랄까.
시골이 집인 그 애는 오빠네 집에서 학교를 다니던 외동딸이었고
다섯 형제의 천둥 망아지 같았던 나는
막연하게 그렸던 '외동 딸'에 대한 아스름한 그 무엇이 부러웠었는지도.
하루가 멀다 하게 수업을 빠지고는 우린 지겹게도 그 벤취에 앉아 있었고
걸어서 집에 까지
걸어서 학교 안을 몇 번 돌아 보기
걸어서 종점에서 종점까지
고여 있는 시간처럼 이십대의 나날들을 흘려 보냈었다.
동기들이 군인이 되어 하나 둘 곁을 떠나고
거짓말도 짝을 이루어 서로를 비밀의 그늘로 몰래 숨겨 주면서 방학을 보내기도 했었다.
그렇게만 시간이 흐르고
그 시간은 나이의 한계성도 넘지 못하리란 막연함에
그렇게 4년을 함께 했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우린 왜 헤어졌었는지.
앞서거니 뒷서거니 결혼도 한 해에 걸쳐서 함께 했었는데
생활이란 테두리는 사람의 마음도 가두어 버리는 열쇠를 가졌었는지
졸업생의 근황을 알리는 책을 받았다.
앨범과 더불어 펼쳐 놓고
성형 외과의 전, 후 사진을 비교 하듯이
아, 얘가 이렇게 변했구나
어머, 얘는 어쩜 ......
사진속의 모습들은 그 시간에서 여전한데
현재의 그들은 다른 모습으로 세상속에서 이름을 내세우고 있었다.
아무개 동네에서 아무개씨로 명명 지어진 그들
평범한 동네에서 누구네 엄마로 땀을 닦고 앉아 있는 몇 호집 아줌마.
아무도 내 이름은 모른다.. 현재 상황에서는.
그저 몇 호집 누구네 엄마로만 아니면 그저 실실 잘 웃는 약간은 생뚱맞은 아줌마 정도로만.
초침을 분해하고
시침을 하나 둘씩 그전처럼 엮어 본들 난 아무래도
지금의 나로 존재 할지도.
그 애에게서 실로 몇년만에 전화가 왔다.
아마 그 애도 그 책을 보았겠지.
대뜸 툭 내뱉는 그 애의 한마디에
난 시간을 원망하고는 몇 마디 하지 못하고 끊어 버렸다.
스무 살의 혼돈기에서 서로를 가장 이해 해 주었고
서로에게 살가운 손길이 되었던 말 들이
시간이란 벽을 거슬러 넘지 못한 채 그 곳에서만 진을 치고 있었고
우린
너무도 멀리서 이렇게 살고 있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