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망초꽃님의 글을 읽으며 촉촉한 기분에 젖어있는데 벨이 울렸습니다.
보성에서 보낸 딸아이의 짐입니다.
커다란 박스가 두개인데 그냥 대충 빨래감만 정리하고 다시 컴 앞에 앉았습니다.
하필이면 예쁜 딸내미 오는 날 비님이 오시나... 좀 속상했는데 보성엔 비가 오지않는다합니다.
버스를 타고올지 기차를 타고올지 아이는 아직 연락이 없습니다.
어제 많은 학부모님들이 그 곳에 내려가서 바베큐파티도 하고 오늘 자신의 아이와 함께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텐데
울아인 짐만 보내놓고 아직 연락이 없네요.
학교에서 아마 맛있는 점심을 먹이고 보내려나봅니다.
저도 내려갈까 생각했지만 이 곳의 일도 있고 또 이주 전에 이미 아이를 보고온 터라 그냥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이주 후면 올 아이를 보러 일부러 멀고먼 보성까지 내려간 이유가 뭔지 궁금하시지 않으신가요?
좀 창피한 이야기이지만 아이가 기말고사를 앞두고 공부를 너무 등한시해서 공부시키러 부부가 함께 내려간 것이랍니다.
딸아인 아직 자기 인생에 대해 깊은 고뇌가 없나봅니다.
또래 아이들의 평균적인 고민 정도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 때도 내려 갔을 때 친구들과 단합대회를 못하게 되는 것이 속상해서 입이 쑥 튀어나왔지요.
엄마아빠는 잠도 안 자고 새벽길을 달려 그 먼 곳까지 저 시험공부시키러 달려갔건만...
너무 속상해서 그냥 그 길로 다시 돌아오려했습니다.
그러자 딸아인 엉엉 울대요.
가지말라고... 그냥 친구들과 함께 단합대회하는 것 보고 그러면 안되냐고...
미리 약속하고 간건데 왜 그리 철없이 구는지 처음엔 정말 미웠습니다.
잠시 차에 올라탄 아이는 우리가 준비해간 과자꾸러미를 들여다보더니 미안한 듯 배시시 웃습니다.
"엄마, 그냥 엄마 따라 가서 공부할게"
"왜, 과자보따리 보니 맘이 바뀌었어?"
"응..헤헤"
친구들이 먹을 과자를 몇 봉지 넣어주고 우린 가까운 숙박시설에 가서 아이 공부도 시키고 맛있는 것도 사주고 그랬답니다.
사실은 선생님이 저희 아이를 너무 안타까워하셔서 내려간 것이지요.
교외시험을 보면 성적이 매우 뛰어나게 나온다고 합니다. 기본이 아주 탄탄하다고 하셨지요.
그런데 정작 내신에 들어가는 시험은 너무 태평으로 준비해서 성적이 형편없다며 부모님이 좀 도와주는 것이 어떠냐 하셨습니다.
자칫 그대로 내버려두면 상급학교 진학조차 어려울 판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그런 말을 크게 귀담아 듣질 않습니다.
제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 시기란 걸 별로 실감하질 못하나봅니다.
생각해보면 그것도 능력같습니다.
딸아인 그런 면에서 안타깝게도 너무 어린 것이지요.
아빠가 1등하면 mp3 사 준다고 했더니 그제야 조금 의욕을 가지는 것 같아보일 정도였습니다.
고맙게도 그 때 아이는 이틀을 아빠와 저랑 함께 열심히 공부해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양의 공부를 이틀로 다 보충할 수는 없었습니다.
남은 십여일을 최선을 다하라고 말해주고 우린 걱정스럽게 돌아와야 했습니다.
헤어질 때 아이 얼굴을 보았습니다,
눈을 아주 크게 동그랗게 떴습니다. 억지웃음 가득한 얼굴로...
전 알 수 있었지요.
우는 모습 참으려고 무지 애쓰는구나.
철없는 아이가 그래도 저 정도는 자라주었구나...
그런데 두시간정도 지나 결국은 엉엉 우는 아이의 전화를 받아야했습니다.
엄마 너무 보고싶어요.. 흑흑...힘드실텐데 조심해서 가세요.
보름 뒤면 볼 건데.. 왜 울어 라고 말하면서도 괜히 눈물이 자꾸 나왔습니다.
결론적으로 아이는 시험을 잘 못본 것 같습니다. 잘봤으면 금방 전화라도 했을 텐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괜히 1등이라 말했나봅니다. 좀 더 현실적인 목표를 주었으면 더 열심히 했을지도 모르는데...
결과가 나와야 알겠지만 아무튼 2학기를 굉장히 잘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이번 방학을 좀 충실히 보내야하는데...
아이와 치룰 전쟁이 미리부터 겁이 나기도 합니다.
컴퓨터도 절대 못하게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저도 많이 자제해야겟지요.
어쩜 당분간 자주는 못 들어올 것 같습니다.
그래도 격려해주세요.
우리 모녀 열심히 화이팅 할 수 있도록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