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숭아물을 들이고 자판을 두드리자니 불편하네요.
양손가락 두개씩 물을 들이고 있는데...
아프지 않아도 불편한데...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잠시 생각나게 했어요.
딸아이가 봉숭아물을 들인다고 할머니네 화단에서
경비아저씨 안 볼 때 따서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고 하네요.
그것 가지곤 부족할 것 같아 오늘 내가 더 뜯어왔어요.
여러 줄기에서 꽃은 따지 않고 잎만 따왔어요.
한줄기에서만 따면 봉숭아에게도 미안하고, 보기에도 애벌레가 포식을 한 것 같아서
내 딴엔 양심을 버리지 않고 마련한거에요.
봉숭아 잎을 따면서 접시꽃 씨도 받았어요.
접시꽃 씨는 동글납쪽하니 비어있는 벌집 같았어요.
그래도 맨드라미씨보다 훨씬 실하니까 싹이 나긴 나겠지요.
암튼 한 움큼 받아서는 집 앞 화단에 심었어요.
며칠 전에 누군가가 코스모스를 두 줄로 나란히 심어놓았길래
속으로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지요.
코스모스 아줌마 뒤에 더 키가 큰 접시꽃아줌마를 심었지요.
경비아저씨가 시큰둥하게 뭐 심어요? 하잖아요.
뭐 야채나...먹을 걸 심는 줄 아시나 봐요.
젠장…….한여름에 배추씨라도 뿌리는 줄 아남...
꽃씨 심어요, 접시꽃... 하도 화단이 삭막해서요. 했답니다.
우리 집 아파트 화단은 넓기만 하지 아무것도 없어요.
잔디도 다 죽고, 다리긴 나무만 삐쭉하니 크고 있어요.
접시꽃 씨가 올해는 싹이 나지 않을거에요.
겨울을 지나고 내년에 나오길 바라며 씨를 받은 김에 심은거에요.
내년에는 바빠서 화단 들여야 볼 시간이 없을 수도 있으니까요.
혹여 내년에 지금처럼 시간이 넉넉하면 삭막한 뜰에 꽃을 가꿀 생각을 하고 있답니다.
백반을 넣고 봉숭아를 찧었어요.
옛날엔 된장을 넣고 찧었는데...
이사 오면서 마늘 빻던 절구가 없어져서 칼 뒤꿈치로 찧었어요.
고향에선 돌멩이로 찧었는데...
랩으로 둘둘 말은 다음에 실로 피가 안통하지 않을 정도로 묶었어요.
옛날엔 호박잎이니 아주까리 잎으로 둘둘 말았었는데...
딸아이가 고2였을때, 툭하면 대학 들어가면 독립할거야 그랬거든요.
지가 독립투사 아버지라도 뒀다면 이해를 하련만...
말이 씨가 된다고 기숙사에 투숙할 수밖에 없는 대학을 가더니
이제는 집이 소중하다나요. 가족이 함께 밥 먹고 티비보고 이바구떠는게 좋다나요.
그러면서 집에만 붙어있고, 친구를 만나도 금방 집으로 들어오면서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사 와선 동생과 둘이 나눠 먹는 모습이
남동생과 일곱 살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고, 두어 살 차이 나는 것처럼 보여요.
딸아인 세손가락씩 물을 들이고 난 두개씩 들였어요.
서로 예쁘게 될까? 연하게라도 들어야하는데..하면서요.
백화점 아르바이트 할 때 뭐라 안하겠지?
딸아인 이번 주말부터 백화점 알바자리를 마련해 놓고 있고
저도 지금 백화점 알바를 하고 있답니다.
우연히 둘이 같은 일을 하게 되면서,
혼나지 않을까 같은 걱정을 하게 되었어요.
괜찮을 거야. 봉숭아물은...열손가락 다 요란하게 물들이지 않잖아.
봉숭아를 따가지고 오면서 옥수수를 사 가지고 왔어요.
삶지 않은, 천원에 세 통인데..찰옥수수 같았어요.
옥수수를 찌면서 봉숭아도 찧었어요.
고향에서도 봉숭아 물들일때 옥수수를 한솥 가득 삶아서
멍석 깔아 놓고 짤득짤득 진짜 찰옥수수를 먹었지요.
요즘은 그런 찰옥수수는 멸종이 된듯해요.
잘여문 찰옥수수를 칼로 칼자국을 내서 찌면 옥수수 알갱이가 찰떡같았어요.
부엌에 봉숭아 짓이기는 냄새, 옥수수 익어가는 냄새.
모두 유년시절 고향 냄새라서 기분이 붕붕 날아다녔어요.
손톱에 주황색 물이 들길 고대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