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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슬픈 벌초


BY 송영애 2005-07-15

      언제나 슬픈 벌초 송영애 해마다 휴가철이면 일년 열 두 달을 산 속에서 초록빛 풀이불을 덮고 나란히 누워 계시는 아버지와 할머니를 뵈러 고향 진도로 간다. 항상 휴가 때 벌초를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할머니 가신 길 위에 서서 아무리 둘러 봐도 두 분이 흘리고 간 흔적은 실오라기도 찾을 수 없고 멀리 내 맘 싣고 날아가는 새 한 마리만 하염없이 흐르는 내 눈물에 서러움을 보탤 뿐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아버지와 할머니를 뵈러 사람들이 잘 다니질 않아 거칠어진 풀밭 길을 벌초기로 베며 두 분이 누워 계시는 무덤가로 들어섰다. 예전엔 우리가 경작하던 밭이었는데 이제는 사람이 많지 않은 산골짜기의 밭은 거저 가지라고 해도 아무도 쳐다보질 않는다. 그래서 해묵어 더욱 거칠어진 억센 잡초들만이 무덤가로 향하여 내딛는 내 발길을 더욱 아프게 만들뿐이다. 작년에 다 베었는데도 어느새 내 키만큼이나 웃자란 잡초들이 아버지와 할머니를 제 품 속에 꼭 안고 있었다. 진도에 사시는 큰 고모님, 그리고 작은 고모님내외분과 울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고 나와 결혼 한 내 남편과 함께 벌초를 시작했다. 살아서는 뭐가 그리 불만이 많았던지 아버지는 할머니를 원수처럼 대하고 구박하시더니 죽어서는 사이좋게 나란히 누워 있으면서 아들과 엄마가 오순도순 이야기도 곧잘 하나보다. 무덤 위에 피어 있는 꽃의 종류도 같고 풀의 종류도 같으니 말이다. 무더운 날씨에 고모부께서 벌초기로 벌초를 하시면 남편은 뒤에서 갈퀴로 베어진 풀들을 쓸어낸다. 남편의 엎드린 등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왠지 나보다 더 쓸쓸해 보인다. 남편의 부모님도 일찍 돌아가셨는데 장모님이나 장인 어른도 안 계시니.... 부모님은 우리 힘으론 살수도, 얻을 수도 없는 것이기에 서로의 부모님이 없는 우린 담쟁이넝쿨처럼 꼭 붙어 가족이라는 단단한 울타리를 더욱 소중히 지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벌초가 끝나고 술을 따라 할머니 묘에 한 잔 드리고 절을 했다. 고모님 두 분은 할머니의 무덤을, 풀을 바로 베어 거친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쓰다듬으시며 "어메! 영애 왔네! 죽을 때 그렇게도 애타게 부르던 영애가 신랑 데리고 이렇게 왔네......어짜든지 우리 영애 잘 살게 해주고, 돈도 많이 벌게 해주고, 아그들도 건강하게 잘 크게 보살펴주게. 불쌍한 우리 어메......" 큰 고모님의 눈물 바람이 끝나자 이번엔 작은 고모님이 어린아이처럼 소리내어 우시다 눈물을 훔치시며 "어메......이 좋은 시상 두고 어찌께 떠나부렀능가......불쌍한 우리 어메...... 고생만 징하게 하다가 갔네. 이 좋은 시상 한 번 못 살고 그냥 갔능가! 억울해서 어찌께 눈을 감았능가......" 할머니의 회색 빛 설움이 생각나 고모님들과 함께 나도 흐르는 눈물을 훔치지 않고 무덤 위에 덜 베어진 풀들만 뽑았다. 시집을 두 번이나 가셨다던 할머니. 팔자가 세서 첫 번째 남편이 죽자 다시 시집을 갔지만 그 남편마저도 일찍 떠나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결혼하여 이제 고생 끝이고 행복하나했더니 갑작스런 며느리의 죽음에 말못할 세상 설움 모두 짊어지고 굽은 등으로 세상을 헤쳐나가시던 내 불쌍한 할머니. 할머니께 나까지 속썩인 일들이 고스란히 생각나 더욱 마음을 헤집어 놓으니 눈물이 쉬 그치질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할머니께 인사 아닌 인사를 나눈 후, 바로 곁에 누워 계시는 아버지무덤으로 자리를 옮겼다. 잔잔한 미소가 아름답던 아버지의 모습이 뇌리에 떠올라 마음이 오히려 편안해졌다. 난 속으로 '아부지! 우리 남편 보이요? 아부지 보셨으면 참말로 좋아했을 텐데...... 잘 생겼지라우?' 왠지 표준말로하면 아버지가 알아듣지 못할까 봐 사투리로 말하고 나니 아버지가 배시시 웃으시는 듯, 자리를 바꾸는 구름사이로 얼굴을 내민 햇살이 아버지의 무덤을 환하게 비춘다. 어쩌다가 이 등대 같은 사람들을 다 잃고 난 홀로 이렇게 무인도 같은 세상에 떨궈졌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하지만 아무리 발버둥쳐도 다시 올 수 없는 세월이기에 흔들리는 마음을 꼭 붙잡고 산을 내려왔다. 남편은 늘, 우린 죽으면 묘를 만들지 말고 화장을 하자고 하지만 우리가 늙어서 먼 길을 떠났을 때, 내 자식들이 나중에라도 문득 삶이 서러워질 때 찾아갈 수 있는 곳이 바람소리 고요하고 새소리 청아한 숲 속이었으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초를 끝내고 내려오는 길에 분위기도 모르고 속없이 뛰노는 메뚜기 몇 마리 잡고 눈 먼 매미 몇 마리 잡아 차에서 기다리던 아이들에게 주니 기겁을 하며 도망치는 녀석들의 모습이 그저 재밌기만 하다. 먼 훗날 내 아이들은 무덤 가에서 나처럼 서럽게 울지 않길 간절히 바라며 돌담 밑의 능소화 꽃잎 하나를 따서 딸아이의 귀에 꽂으니 딸아이의 고운 미소가 능소화의 꽃잎을 닮아 더욱 곱다. 2004년 8월 어느날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