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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으로 성별을 알리는 젠더리빌 유행이 아이스크림 직원에게 민폐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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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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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단순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BY hayoon1021 2005-07-02

ㄱ은 직장 다닐 때, 가장 친했던 친구다. 나이도 동갑이고 성격도 비슷해서 여고때 단짝 사귀듯이 가깝게 지냈다. 

그런데 내가 그만둘 무렵 몇 가지 오해가 생기면서 둘 사이가 서먹해졌다. 아마 내가 계속 직장을 다녔다면 매일 보니까 어떻게든 오해는 풀어졌을 거다. 하지만 매듭을 그대로 둔 채 난  직장을 그만뒀고, 우리 사이는 그 상태로 굳어버렸다.

어느새 6개월이 흘렀다.

그동안 처음 한두 번 전화통화한 것 말고는 서로 연락을 안 했다. 가까운 데 살면서 그러기도 쉽지 않을 텐데, 마치 잊은 듯 지냈다. 

정작 시간이 지나면서 ㄱ과 내가 서먹해졌던 원래의 이유는 희미해졌다. 

누가 됐던 먼저 연락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ㄱ말고 ㅇ이라는 동갑 친구가 있다. 셋이 함께 어울리긴 했지만, ㄱ과 내가 워낙 친해서 약간 밀려나 있던 친구다. ㅇ과는 한 동네 사는지라 가끔 얼굴은 보고 지낸다. ㅇ은 ㄱ과 내가 왜 연락을 안 하고 지내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내 문젠데 나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 확실한 이유는 있었다. 너무 깊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

[한 번 안 해 버리니, 다시 하기가  쉽지 않네....] 이렇게 얼버무렸다.

그러다가 3일 전에 ㅇ한테서 전화가 왔다. ㄱ의 어머니가 수술을 해서 중환자실에 있는데, 이런 때 자연스럽게 한 번 찾아가 보라는 속 깊은 배려였다.

그래서 ㅇ과 함께 병문안을 갔다. 어머니 병수발로 얼굴이 많이 상한 ㄱ은 활달한 웃음으로 우리를 맞았다. 잠깐 있다 와서 마음에 담아둔 말을 다 하지는 못 했지만, 우리는 예전과 달라진 게 없다는 확신은 얻었다. 

[둘다 연락 안 했으니까 피장파장인 거 알지?]

이 한 마디로 6개월 간의 공백은 먼지처럼 사라졌다.

이렇게 간단한 걸, 난 왜 시간을 끌었을까? 

ㄱ이 어쩜 정말로 나한테 화가 나서, 다시는 날 안 보고 싶어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가장 큰 벽이었다. 이렇게 턱, 얼굴 한 번 보는 걸로 끝날 일을 말이다.

장마 세상이다.

어젯밤에도 엄청났다. 자정 무렵, 천둥 번개가 잔뜩 겁을 주더니 이내 세상을 다 쓸어버릴 듯이 장대비가 쏟아졌다. 우리집은 2층이라 그런대로 안심인데, 시동생네가 걱정이었다. 연립 반지하라 이맘때면 늘 불안하다. 하지만 올해는 선뜻 전화를 못 한다. 작년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서다. 

작년 장마 때, 먼저 전화를 했었다. 동서는 별 일 없냐는 내 말에, 당연히 별 일 없다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 날 전화를 끊는 내 기분이 개운치 않았었다. 반지하라도 끄떡없다는 동서의 대답이 약간 꼬여있다고 느낀 건, 내가 과민한 탓이었을까?

결국 오늘밤, 시동생한테서 먼저 전화가 왔다. 남편이 받았다. 거실로 물이 넘쳤단다. 

쾅, 후회가 머리를 내리쳤다. 먼저 전화 했어야 돼.....

어디 살건 장마철에 안부전화를 하는 건 가족으로서 당연한 일인데, 난 너무 깊이, 앞서 생각하고 있었던 거다. 간밤에 잠도 못 자고 물난리 겪었을 걸 생각하니, 먹은 저녁밥이 목에 딱 걸려버리는 것 같다.

사람들은 내가 참 생각이 많다고 한다. 매사가 너무 심각하고 복잡하단다.

이런 내 성격 때문에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은 남편이다. 남편은 내가 너무 피곤하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가벼운 것보다는 신중한 게 낫다고 맞섰다.

한데, 그런 자부심이 오늘밤은 꼬리를 내렸다.   

동서 기분을 배려한답시고 사실은 내 마음대로 해버린 꼴에 지나지 않는다.

얼마나 섭섭했을까? 형제라고 달랑 둘뿐인데, 그 난리를 치르면서 연락 한 번 없는 형내외를 얼마나 원망했을까? 우리 물 넘쳤어, 할 때까지 무심했다니...

남자들끼리 통화를 했으니까 동서한테는 내일쯤에나 전화를 해봐야겠다.

백 년도 못 사는 인생이 천 년의 근심을 지고 산다고 했던가?

가끔은 단순하게 생각하고 바로 행동으로 옮겨버리는 게 최선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즉흥적으로 집을 샀던 시동생은 이번에도 즉흥적으로 집을 내놨다고 한다. 한 번 물난리를 겪었으니 정이 뚝 떨어졌을 그 심정은 이해하지만, 웬지 손해가 클 것 같다. 

집을 살 때도 전세라면 몰라도, 반지하를 대출까지 끼고 살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그들의 선택인지라 아무 말 안 했었다. 그 때 말리기라도 해봤어야 가족된 도리가 아니었을까?

괜히 형제 간에 마음 상하기 싫어 슬그머니 넘어가버린 건 우리의 이기심 아닌가?

아, 또... 생각이 꼬리를 물려고 한다. 천성이다.

난 언제쯤 단순해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