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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아, 인간아, 이 못 된 인간아...


BY 낸시 2005-07-01

음식점을 시작한 지 열흘쯤 지났다.

어둑해서 집을 나가 밤 늦게 돌아오는 날들의 반복이다.

오십킬로를 밑도는 몸무게도 오킬로나 더 빠졌다.

나보다 아들이 정말 힘들게 일한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이 안타깝다.

우리가 파는 음식은 한국음식이긴 하지만 다른 식당에서 파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한국사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고 미국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서비스하는 방법도 다른 한국음식점과 다르다.

주문을 받으면 일 분 안에 서비스 할 수가 있다.

그릇도 일회용이다.

가게 안도 햄버거나 샌드위치 가게 비슷하게 보인다.

일하는 사람들은 아들과 나를 제외하면 한국 사람이 없다.

그들에게 음식 만드는 것을 가르쳐 하는 일이라서 처음인 지금은 어려움이 많다.

담아내는 모양, 무침을 할 때 요령, 밥짓기, 찜하는 것, 김밥말기, 야채 자르기...그들에겐 어느 한 가지 익숙한 것이 없다.

아무리 가르쳐도 미처 생각 못한 엉뚱한 곳에서 사고가 나서 음식을 버려야 할 때도 많다.

재료를 사는 것도 요령 부족이라 너무 많이 사서 버리기도 하고, 너무 적게 사서 절절매기도 한다.

일하는 사람들도 익숙한 일이 아니고, 우리도 처음 해보는 일이라, 전혀 광고를 하지 않고 가게 문을 열었다.

손님이 한꺼번에 밀려와도 제대로 해내지 못할 터이니 적은 수의 손님으로 연습을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손님들 반응이 좋은 편이다.

한번 왔다 간 사람이 다시오는 경우가 많다.

어떤 사람은 벌써 다섯번을 온 사람도 있다.

자기들에게 익숙한 음식이 아닌 한국음식을 열흘 만에 다섯번을 먹는 것은 정말 기대 이상의 반응이다.

웨이터나 웨이츄레스가 있는 식당이 아니건만 팁도 후하다.

계산대 앞에 놓인 통에 일불짜리가 수두룩하고 오불짜리도 보인다.

어떤 사람은 십여불어치 음식을 사고 팁을 칠불이나 내고 가기도 했다.

그런데 남편이 말썽이다.

가게에 손님이 적다고 화가 나서 인상을 북북쓰고 다닌다.

손님이 없으니 아무래도 한가한 시간이 많은 종업원들이 잡담하는 꼴도 못 본다.

손님도 없는데 종업원들을 많이 고용했다고 난리다.

신경 쓸 일이 한 둘이 아닌데 가장 신경쓰이는 것은 심통부리고 다니는 남편이다.

어제는 이태리에서 공부하는 딸이 남편에게 전화를 했나보다.

생활비도 필요하고 다시 등록할 때가 되어 등록금도 필요하다고...

가게에서 일하는 날더러 전화해서 우리가 망하게 생긴 형편을 딸에게 제대로 알려야 한다고 퉁명을 떤다.

자기는 딸의 일에 상관도 하기 싫으니 날더러 알아서 하란다.

가게에서는 국제전화를 사용할 수도 없는데...

내가 집에 있는 시간엔 딸이 한참 잠자는 시간이라서 전화 하기가 어렵고...

 

집에 돌아와 남편과 한바탕 싸우고 싶은 것을 참았다.

졸리우니 우선 잠부터 한숨자고...그리 생각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딸에게 전화하라는 말도 못 들은 척 했다.

한숨 자고 일어나니 아직도 한밤중이다.

잠들면 보통 새벽이 되어야 일어나는데 남편의 바가지가 신경쓰여 깊은 잠을 못 들고 깨었나보다.

남편을 찾아보니 거실에서 자고 있다.

요즘 심통부리느라고 잠도 옆에서 안 잔다.

쇼파에 누워 있는 남편 옆에 앉았다.

"인간아, 인간아, 이 못 된 인간아...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제대로 못자고 일하는 아들이랑 각시가 안쓰럽지도 않냐?

인간아, 인간아, 이 못 된 인간아...

우리가 샌드위치 가게를 하는 것도 아닌데 열흘동안 다섯번을 찾아 온 사람도 있는데 그만하면 잘하고 있지 않냐?

인간아, 인간아, 이 못 된 인간아...

칠불짜리 음식먹고 오불 팁으로 내고 가는 것 보면 그 사람들이 얼마나 우리 음식이랑 서비스에 만족하고 있는지 알 만하지 않냐?

인간아, 인간아, 이 못 된 인간아...

도대체 어쩌라고 사람을 들들 볶냐?

......"

어물어물 몇마디 얼버무리듯 대꾸를 하는 듯 마는 듯 하더니 남편은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내 밀을 듣고 보니 그럴 듯 했나 보다.

더 싸울 흥미도 없고 컴을 붙들고 앉아 남편 흉이나 보기로 했다.

아, 정말 못 된 인간이다.

매사에 불평이고 짜증이고, 세상의 온갖 불행은 혼자 다 질머지고 산다.

마치 불행하기로 굳게 결심하고 사는 사람 같다.

인간아, 인간아, 이 못 된 인간아...

제발 웃고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