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시집올때 어머니 연세가 55세였다.
미련한 곰퉁이 며느리는 울 어머니가 적고 많음에 별로 신경을 안썼다.
지금도 어머니는 건강하시다.
난 고맙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이 건강하시고 무엇보다 다달히 생활비를 안드려도 되니
난 그것만이라도 고맙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부모자식간에 효자 아니면 불효자라는 논리에 맞춘다면
난 세상에 둘도 없는 불효자다.
더불어 친정도 거의 왕래를 안하였고 두 부모에겐 배로 불효자다.
효자되는 것보다는 불효자가 나에겐 적성이 맞는지
매번 무슨행사때마다 난 트집을 잡았다.
있는집 행사들은 죄다 요리집이나 근사한 식당에서 하는 것을
당연시 여긴다. 나또한 음식솜씨가 없어 자신이 없지만 이런 일반화 되버린 의식이
괜히 적성이 맞지않다.
나와 어머니의 차이는 있고 없음을 기준으로 시작되어
종국은 없는 쪽이 깨지는 결과를 원하신다.
그런데 말이다. 신기한 것은 나뿐만 아니라 둘째동서는 이혼당하여 없지만
나머지 동서들은 나와 비슷하다.
그러니 어머니는 하나이고 적은 세명이다.
한번은 셋째동서에게 메일이 왔다.
생신을 이름대면 알만한 곳에서 예약하라고 하는데
본인 생각은 도무지 누가 올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큰 형님하고 의논하자하고 하면 성만 내시고
이를 어쩌냐고 나에게 의견을 물었다.
난 한줄의 의견을 메일로 답변했다.
" 계산은 어머니가 하시라고, 예약은 내가 할테니..."
있음을 보여주고 싶은데 왜 말리겠는가?
동서가 그 말을 그대로 전했나보다.
그 이후로 조용히 그 생신을 치뤘는지 뒷말이 없다.
이렇게 세며느리가 하나씩 벗겨내는 양파껍질처럼
어머니가 궁지로 몰렸었나보다.
나 또한 원하지 않았다.
어른대접 깍듯이 하여 내가 복받자! 이런 주의다.
그러나 동서들은 이미 나의 옛날 사건을 동네에서 다 파악한 뒤였으니...
거기에다 둘째 쫒겨나듯이 이런 상황을 본 며느리들이
얼른 잘 피하여 잘 살자! 시어머니를 ....
덕분에 내가 뒤에서 조종하는 배후가 되버렸다.
사실은 그게 아닌데... 이런 말하면 시골은 곧바로 긍정이다. 부정의 강한 긍정이다.
그래서 난 몇년을 입다물고 추이를 지켜봐야 헸다.
어차피 진실이야 늦게든 빨리든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 사이에 어머니는 이빨빠진 종이 호랑이 되버렸고.
큰 형님 입다물고 있는사이 두 동서 무서운 며느리들 되 버렸다.
시어머니가 나에게 전화를 해왔다.
가끔도 아닌 처음으로 나에게 전화를 했다.
얼결에 안부도 못 물어보고 어머니 또한 말문이 굼떴다.
" 어머니! 저 영은이 엄마예요? 말씀하세요?"
수화기 저편에 망설이는 어머니의 얼굴이 상상이 됐다.
어머니는 별 말도 못하시고 밥은 먹었냐는 등 대충 이렇게 말하고 끊었다.
그리곤 난 후 이혼당한 둘째며느리에게 전화가 왔다.
" 형님 꼭 한 번 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고마워요... 어머니에게 사과두 받고 위자료도
받았어요..."
한 참을 멍하니 듣고 있었다.
그 쪽도 울었나 서로 말이 없다.
나도 무슨말을 해야 하는데... 이거 도무지 말을 할 수가 없다.
" 나두 동서에게 사과할께...그 때 내가 도와주었으면 이런일이 없을텐데..."
종점이 다가올때 빨리 내려야 할 버스를 탄 기분이랄까....
짐정리를 그동안 미루다 안한 그 미안한 생각들이 전부 몰아온 것 처럼 생각됐다.
우리 어머니 아들을 넷씩이나 낳았으니...
호랑이 며느리들 앞으로 어떻게 이겨 내실까...
이젠 큰 며느리가 아랫동서쪽이 아닌 어머니쪽으로 얼굴돌려야 할 때가
됐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