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이십오륙년전의 일인듯합니다.
제가 부산에서 직장생활하던 때의 일이니까요.
당시 저는 부신일보에 시를 보낸 적있었습니다.
아마 독자투고란 같은거였습니다.
기억하건대 1980년 1월 28일인 것 같습니다.
제가 보낸 시가 체택되어 신문에 실렸습니다.
신문의 위력탓인지 그 이후 몇몇 남성분에게서 편지가 왔습니다.
다들 글솜씨도 만만치 않고 해서 몇 개를 골라 답장을 보냈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또박또박 정자로 쓰여진 김**이란 사람의 편지가 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 시에 대한 예리한 평가와 더불어 마무리는 여성답지 않고
스케일이 크다는 식으로 호평으로 마무리를 하였습니다.
비록 얼굴을 대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최근에 어느 신문에 실린 이름이 김 **인 사람의 시가 가슴에 참 와닿아서
물어 본적이 있습니다.
김**이란 이름은 같지만 다른 사람인지 모릅니다.
제가 그 분의 시집을 산 것 모르지요.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아
스라한 청춘의 기억속에서
푸카푸카 양치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착각에 빠집니다.
언젠가 제가 전화를 드렸을 때
옆의 다른 사병이 김 **는 양치주이라고 전화를 못 받는다할 때
양치하는 모습이 떠오르더니
지금까지 양치질하는 청년으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고 단지 경북대 국문하과 다니다 군입대한 것과 김춘수 시인께
시공부를 배웠다는 말이 기억납니다.
세월이 비껴가는 동안 까마득하게 멀어지고
닿지 못한 인연이 새삼스레 생각이 나는 건 왠일인지요?
언제고 제 시가 무르익어 시집을 열매맺고 좋은 시 한편이라도 완성하는 날,
꼭 뵙고 싶은 희망이 있습니다.
이런 작은 희망도 살아가는데 한 힘이 됩니다.
언젠가 꼭 그 시인이자 장학사인 김**님이 그 때의 내가 편지를
두 세번 주고 받던 그 분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김 **님!
이 글 읽고 대답해주세요.
제 이름은 실명을 밝히면 김 정숙이고 당시 동래구청 세무과에 근무했습니다.
이산가족이 아니라 이산 詩族이라고나 할까요?
편지란 형식으로 먼 시간의 이끼에 덮인 작은 추억을 되살려봅니다.
시인 김 **가 그 당시 김 **가 아니시더라도 좋으니 늘 행복한 나날 되시길..
2005년 6월 30일 김 정숙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