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가 15개월쯤 되었을 때 집을 뛰쳐 나갔었다.
왠지 집에 있으면 혼자 도태되는 것 같고
지금 기회를 놓치면 영원히 나올 수 없을 것 같아
썩은 동화줄이건 튼튼한 동화줄이건 안 가리고 막 잡았다.
남편은 말한다.
'그 때, 멀리 다른 지역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서 차근차근 직장을 찾아 보았더라면
둘째 낳느라고 사표를 던지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일리 있는 말이다.
지금 둘째 아이가 15개월이다.
마음이 일렁인다.
지금이 아니면 내가 깡그리 없어질 것 같은 불안감이 강하게 몰아친다.
'30대 후반의 나이, 두 아이의 엄마'라는 대문짝만한 명함만이 떡 하니 나를 짖누른다.
딱 한 달 전 일이다.
마감 이틀 전에 이력서를 부랴부랴내었다. 전국에서 한 명 뽑는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뭐에 홀린 것 마냥 한 아이는 손을 잡고 한 아이는 들쳐 업고 시댁에 올라갔고 새벽별을 보며 도서관을 향했고 하루 종일 책과 씨름을 했다. 딱 열흘간을.
지금 생각하면 미친 짓이다 싶은데 그 때는 왜 그리 절실했는지.
나에게 남은 건 '이제는 안되는 모양이다'라는 깊은 상실감과 한달 생활비쯤 되는 어마어마한 경제적 손실뿐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제 나를 받아 줄 곳은 아무 곳도 없나?
막막함이 가슴 중앙을 횅 하니 쓸고 간다.
꼬부라져 있는 나에게 남편이 '당신이 그렇게 일하고 싶은 이유가 뭔데?'묻는다.
뭘까?
돈이 없어서.
-없어도 이 때까지 잘 살아왔다. 없으면 안 쓰면 되는 일이고.
아이들을 잘 키울 자신이 없어서.
-일하는 게 더 편하긴 한데. 엄마가 자신이 없으면 다른 사람은 어떻게 키우나
나를 내세울 명분을 찾기 위해
-조금은 있다.
행복해지기 위해
-맞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일을 하고 있을 때 살아있는 느낌이 든다.
내가 좋아하는 일, 남에게 봉사하는 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을 때에야 비로소행복하다. 아직 인간이 덜 되어서인지 집안 일을 하고 있을 때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나에겐 29에 만난 애인같은 좋아하는 일이 있기에 더더욱 그렇다.
40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 실패로 만신창이 된 마음을 쓸어내리며 다시 인터넷을 이리저리 뒤지고 있다.
제 2의 재기를 꿈꾸며.
7살난 첫째 아이는 엄마의 재기를 열렬히 응원하는 단 한명의 후원자다.
엄마의 치밀한 잔소리의 망을 벗어날 길은 그 길밖에 없음을 알고 있기에.
남편은 반신반의.
맞벌이의 경제적 혜택은 탐이 나지만, 전업주부인 아내가 챙겨주는 이 안락한 생활을 포기하기는 싫은 눈치.
15개월 된 둘째는 어떤 생각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