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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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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딸2.


BY 합격이엄마. 2005-06-18

동생이 아기를 낳았다.

15일 새벽, 주말의 영화를 보고 잠든 지, 한시간 후, 난 수화기를 들었고

이어 끊긴 전화기를 내려다보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웃옷을 갈아입기 시작

하는데 다시 엄마의 비명이 들려왔었다.

온 식구가 출동을 했고 날은 추웠고 히터를 틀었던 아빠는 덥다는 엄마의

신경질섞인 음성에 애꿎은 히터만 꺼버렸다. 가족들이 내뿜는 입김만 차안

에 가득찼고 우리 모두는 벙어리처럼 그렇게 굳어져만 갔다. 한참을 달려가

는데 병원간판 아래로 셔터가 내려진 병원입구가 보였다. 의사가 나왔고 간

호복을 덜 입은 간호사가 하품을 하며 종종 뛰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의사가 기다리라고 한 대기실에 막 신을 벗고 들어서는데 피묻은 거즈

한 장이 컴퓨터위에 그대로 방치돼있다. 감사나워진 기분에 앉을 엄두가 안

나건만 시간만 더디 흘러갔다.

다시 밖으로 다 나가 대기의자에 차갑게 앉아있는데 분만대기실의 문이 열리

고 앳된 간호사가 졸음이 묻어있는 얼굴로 우리를 안으로 인도한다. 굴비두릅

꿰듯 우르르 안으로 들어갔던 우리는 다시 어린 간호사의 호통질에 역시 꿰인

굴비들처럼 우르르 나가 실내화로 도로 갈아신고 들어온다.

여러개의 바늘에 피멍이 맺힌 팔뚝으로 옆으로 누워있는 동생은 생급스럽다.

겁을 먹어 손끝이 덜덜 떨리고 초점을 잃어가는 눈속에는 앞으로 닥칠 일에 관

한 두려움이 가득차 보였다.

미련떨지 말고 절개해.

자신의 뱃속 아이의 태명을 부르며 즐거운 상상을 하고 있던 동생에게 이런 말

을 한 사람이 나다.

태변을 먹어서 바로 수술들어가야겠습니다.

마취의사가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는데 말 잘 듣는 학생들을 다독이듯 긴장

하고 늘어선 가족들에게 의사는 담담하게 말을 하고 뒤따라 들어간다. 자연분만,

그 하나를 위해 운동장을 세 바퀴씩 돌고 백화점엘 가면 전층을 돌아다니다 무료

시식코너를 섭렵하는 재미로 살았다던 동생. 난 내가 한 말이 씨알이 된 건 아니

었는지 곰곰 생각했다.

잘 할 수 있어.

엄마의 손에 이어 남편의 손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동생. 그 부운 손을 막 잡아

주려는데 어린 간호사는 또 독촉을 한다. 그만 나가달라고. 시간이 되었다고.

날잠을 자야했던 그녀의 목소리에 짜증이 뚝뚝 묻어난다. 아직 어린 그녀에겐

임신이나 출산은 남의 나라 이야기일 테고 자신은 하루종일 보게 되는 일상일

것이니 새삼 긴장할 일따윈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이 첫대면인 우리에

겐 힘들고 고된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동생이 거쳐할 회복실에서 케이블을 건

성 보고 있는데 남동생의 들뜬 얼굴이 불쑥 고개를 들이민다.

내막증이 심했어요.

친구들의 추천을 받고 찾아간 의사였다. 의사는 이런 자궁에 애가 들어섰다는 것이

기적이란 말도 덧붙였다. 애를 하나 더 낳으면 더 좋아질 수 있고 또 하나 낳으면 더

더 좋아질 수도 있겠단 말도 한다. 제부의 얼굴이 하얗게 커지던 순간, 신생아실 커

텐이 환하게 열렸다.

찍고 또 찍고. 제부는 아기의 얼굴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말을 시켜도 대꾸조차

할 수 없을만큼 너무 많이 기다려온 이 아이. 33평의 아파트에서 공무원아빠에 총명

한 엄마를 둔 이 아이는 그런대로 무난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내 아들 이쁘죠?

아들? 난 제부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 얼굴이 긍정적으로 보였던지 제부는 연이어

말을 한다.

득남턱 쏘라고 난리일텐데...

그럼 득녀턱이란 건 없단 말인가? 개인적으로 난 엄마가 딸 셋을 내리 두고서도 코맹맹

이 소리로 따알! 이렇게 불러주는 걸 내 일생 한번도 없었다. 반면 남동생이 하나뿐인 이

집엔 아드을! 비염의 음성으로 응석까지 부리곤하는 나이든 엄마를 종종 볼 일은 있어왔

다. 그래서 난 내가 성인이 되고 어른이 되면 세상이 조금은 바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우린 딸이예요, 아들이 이미 있거든.

곁에서 우리 가족을 지켜보고 있던 또다른 산모를 데려온 대기의자 위, 중년 여인의 말

씀이었다. 세상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얼얼얼...

아들얼굴에 정신이 팔려 그 좋아하는 밥도 안 먹고 어르고 있는 제부다. 그 곁에서 산모

를 두고 밥을 다 먹느냐며 화를 냈던 엄마의 수저질이 유독 더뎠다. 산 사람은 살아야한

다며 부러 밥위로 콩장도 올려주고 김치도 얹어주고 한 건 나였다. 젊은 동생은 동생이지

만 이제 막 시작된 집안의 대소사에 엄마의 건강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딴집에선 이미

벌어지고도 남았을 이번 일이 우린 처음이었고 그래서 20년 가깝게 사는 동네 아줌마들은

이제 시작이라며 그런 초짜엄마를 걱정해주었다. 나나 27세인 여동생이나 이 순간만큼은

죄인임이 틀림없겠지만 사실 곰발바닥처럼 까맣게 부푼 동생의 발을 보며, 속옷하나 갖춰

입지 못한 채 앳된 간호사들의 일상사 이야기를 들으며 마취의사를 홀로 기다렸을 분만대

위의 동생을 생각하니 결혼의 의무감이 싫어진 것도 있었다. 왜 세월이 변했어도 달라지

는 건 없는걸까? 여자만이 애를 낳아야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아들을 좋아하고 그 아들로

인해 한턱을 크게 쏘는.

친구들사이에 혼자 딸을 가진 친구가 먼저 찾아왔다. 딸을 낳고 난 후 친구는 없던 게 하

나 생겼다. 바로 딸자랑을 아들가진 친구들앞에서 거품을 물로 길게 한다는 것! 친구들

이 각자 헤어지고 나서 안부통화를 하게 되면 한결같이 나오는 말이 이 앤 시샘을 한다로,

결말이 나곤 했다. 그 친구가 제일 먼저 찾아와 아이 내복 하나를 내놓고 갔고 이미 아들을

둘이나 둔 윗동서라는 동갑쟁이 동서가 찾아와선 사 온 음료수 한 통을 제 아이들이 다 해

치우곤 또 갔다했고 제부는 회사에서 피자를 쏘고 병원에선 역시 아가씨들이 좋아할 피자

를 또 쏴야했다. 회사에서처럼 9900원짜리 두 판이 아니고 17000원짜리 두 판으로. 여자들

은 예민하고 말많은 동물임을 감안해 내린 특단의 조치랬다.

오줌을 쌌나? 똥을 쌌나?

아기를 데려다달라고 간호사실에 보채고 이어 만지고 어르고 하는 제부를 보니 차츰 속이

상하기 시작하는 걸 느낀다. 우는 소리에 쉬지못하는 산모, 그 산모를 돌봐야하는 엄마, 그

런 엄마때문에라도 병원에 연 사흘 출근도장을 찍어야만하는 나. 아이는 이쁘지만 노동은

노동이었다. 그런 내 감정을 자칫 아기가 없이 강아지만 키우느라 몰이해한 사람이라고 평

할까보아 내심 조심했었다. 그러나 감정은 숨길 수 없었고 난 결국 싫은 소리를 내뱉고야만

다. 아기를 데리러왔던 간호사를 다시 내려보낸 제부를 보며 난 내 동생의 언니임을 그예

선택하고 만 것이었다.

자꾸 손타면 애 안 커요!

옆방에선 찬송가소리가 흘러나온다.

다이아몬드형의 인체로 팔짜걸음을 똑같이 걷는 16인의 산모들이 모여있는 조리원 첫날이

다. 딸 넷,아들이 열 둘. 아기이름과 산모이름, 그리고 성별이 적힌 간판이 입구에 크게 걸려

있다. 산모실, 휴게실, 하다못해 화장실까지 일반인이 적응하기엔 너무 더운 온도다. 두꺼운

겨울옷은 거추장스러워지고 양말을 신은 발바닥엔 땀이 차 올랐다. 무통을 맞은 허리가 아파
오는지 동생은 낮아진 방안생활에 힘들어했다. 방안으로 밥을 날라오고 시간시간 젖을 먹여

야하는 어린 신생아도 뉘여졌다. 잠을 잘 자고 황금색변을 보고 울지도 않는 어린 신생아.

제부의 유년기가 이러했을까 싶게 너무 닮아버린 이 얼굴. 이래서 남자들이 아들을 바라는

 

걸까? 난 이 작고 여린 얼굴을 한동안 응시하고 또 응시한다.

밥 먹는 거 보니까 좋지?

동생이 화장실에 간 사이 난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암것도 못 먹는 산모를 두고 밥
을 목구멍으로 넘길 수 있느냐며 밥먹기를 혼신의 힘으로 거부했던 엄마. 필생의 뜻을 지닌

 

지율스님처럼 엄마의 얼굴이 꼭 그러했다. 가스가 나오고 변을 보고. 이 별 일 아닌 일이 산

 

모에겐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난 새삼 깨달았다. 하루에 한번,변을 보는 즐거움. 난 동

 

생이 변비로 인해 고생않기를 바라는 언니다. 엄마처럼 대신 아파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을 할 정도는 아니지만, 힘들어할때 그 곁에 있어주고픈 언니이기도 하다. 여자들이 이토

 

록 아들낳기를 원하는 건 어쩜, 당신들이 겪으셨던 그 고통을 도로 되물림하기 싫은, 여자만

 

의 감정표현인지도 모르겠다.

훈(태명)아! 난 니가 훈이였든 훈숙이였든 상관없는 이모란다.

그저 건강하게 황금색변을 보아주어 기뜩하고 엄마의 자궁속을 더 건강하게 만들어주어 고

 

맙기만한 이모란다. 3년을 기다린 니 아빠는 아들과 함께 축구공을 차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지만 난 니가 타인의 아픔에 동조하고 힘없는 동물을 사랑하며 더러워지는 환경에 맞서 싸울

 

면역력 강한 인간이 되어주길 바랄 뿐인 이모란다.

나오느라 정말 고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