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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생기면 일어날 수 있는 일.


BY 합격이엄마. 2005-06-18

집안에 아기가 생기며 변화한 것들이 있다. 그 중 하나, 대낮 오후에 샤워를 하고 있는 나다. 뜨거운 물방울이 닿는 자리자리마다 살피들이 꿈틀대고 고통을 호소한다.

이른 아침 애둘러 식사를 마친 엄마는 동생이 새로 입주한 아파트로 출근도장을 찍듯 매일 달려나가고 국 건성 밥 건성 식사를 마친 아빠도 엄마처럼 분주한 자리를 털어내는 게 한달 가까이다. 아기라는 게, 일순간 온 식구의 스케줄을 틀어쥘 수 있는 대상이 된다는 게, 그리고 기꺼이 그 일을 받아들여야한다는 게 사실 힘이 들 때가 있다. 지금처럼 혼자 있는 집에 보일러를 한껏 올려틀 수 없단 사실, 또 배가 고파도 팩두유나 찾아먹고 떼워야한단 사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아기가 성장을 하면 이런 이모를 알아줄까 의구심이 든다.


시장 상인들은 언제나 힘이 넘친다. 목청도 크고 사람도 불러세우고 흥정에도 공성이 날대로 나있다. 재래시장의 이런 활기가 낮시간을 강마르게 보내던 내겐 충격이었고 놀라움일 적이 있었다. 게으르다는 건 이들에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치일진데 난 제법 그런 사치를 내 몸에 맞는 옷인양 종종 누려왔었다. 이들이 파장무렵 마시는 맥주 한 컵에 난 얼굴이 달아올랐었다.

낡은 아파트를 헐고 새 아파트를 짓는 공사가 인근에선 한창이다. 들들들... 험한 기계소리도 들리고 하얗게 날리는 먼지를 대포같은 물줄기로 날리느라 횡단보도에 늘어섰던 사람들은 잊지않고 구경도 하고 간다. 그 안에 원조격으로 들어서있는 시장에 이런 날 굳이 가는 이유는 산모식을 만들어보기 위함이었다.


조리원의 음식들은 단백하고 붉은 간이 적게 들어간 음식이 많았다. 찐 단호박, 찐 돼지고기, 삼계탕, 나물류와 버섯이 그것이다. 수유부인 경우 고춧가루가 들어간 음식을 피해야했으므로 이것은 집에 와서도 연이어 이어졌다. 삼십년전 아이를 낳았던 엄마는 현대의 산모를 어려워하는 눈치였다. 엄마의 당시엔 시아버지와 사느라 먹으란대로 먹고 주는대로 고마워하고 그랬던 것 같다. 동생은 어렵사리 구해 하루종일 끓인 돼지족발탕을 먹질 못했고 그런 동생을 한심하다고 말하던 엄마도 한 번 맛을 본 이후론 손을 대지않았다. 내가 종일 끓여간 그 탕이 냉장고의 맨 윗칸 제일 잘 어는 자리에 여태도 보관중이란 걸 잘 알고 있다. 엄마가 된다는 건 먹기 싫은 음식, 비위 상하는 음식, 쳐다보기도 싫은 음식, 징글징글한 음식, 역겹고 누린내나는 음식 등도 제법 폼나게 먹어줘야하는 자리는 아닌걸까? 그렇담 동생은 직무유기죄를 범한 것이다. 반나절을 끓이고 또 끓여 그토록 사랑한다던 제 자식을 위해 해나간 나의 첫음식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엄마도 때론 울고 싶은 때가 있단 걸 역시 잘 알고 있다.


온 얼굴이 터질 듯 울고 떼쓰고 하는 일이 아기의 하루일과다. 먹고 자고 그러다 변을 본다. 어떤 분유광고에서처럼 황금색변을 본 날이면 제부를 위시한 그 자리의 온 식구가 덩실덩실 어깨춤에 만세를 부르고 무른 설사이거나 단단한 된 변이거나 아예 변구경조차 못한 날 저녁이면 둘러모여 걱정들을 한다. 아기는 한 무리를 한 자리에 모이게 하는 찰진 힘을 갖고 있었다. 분유내가 적절히 배인 아기의 똥은 성인의 그것과 달랐고 매일 치우는 애완견의 똥과도 달랐다. 농푸른 바다의 해초나 비를 듬뿍 맞은 들풀이 연상되었다. 비릿한 매스꺼움, 그리고 유연한 살내음. 아기변이 철철이 묻은 기저기를 들고 내게 달려오던 제부를 피하자 가족모두는 깔깔대고 웃었다. 엄마의 볼주름이 보조개로 보였다.


엄마가 할머니란 건 지인들과 대화를 나눌 때다. 아기가 너무 이쁘다고 그렇게 이쁜 아기는 처음 보았다고 속내를 말하는 엄마. 찜질방에서 할머니라고 부르던 꼬마에게 화를 냈던 엄마는 몸속에서 마음깊은 곳에서 할머니로 살길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기가 이뻐보이면 나이가 드는 신호란 걸 당신을 보며 알겠다. 근데 난 왜 아직 아기가 이쁘단 생각이 안 드는걸까? 이 나라의 엉성한 육아환경이? 아님 내가 아직 미혼이라서? 그도 아님 처음부터 냉정한 성격이라서??


오백원을 깍아준 닭값에 만족하며 우겨넣고 일어서는데 끙, 다리에 맥이 풀리는 기분이든다. 푸슬대는 비가 얼굴을 간질거려 아킬레스건에 힘을 주어 한 발을 내디디는데 낡은 아파트일대를 너른 천막이 장악한 풍광이 보인다. 난 길을 돌아가야했다.


인터넷으로 본 닭죽의 성공에 힘입어 닭곰탕도 그런대로 나와주었다. 살점 두어점을 툭 떼내 자식같은 애완견의 밥그릇에 넣어주고 난 명절때 먹고 남은 힘없는 나물들을 왕창 털어넣고 비빔밥을 만들어먹는다. 식솔들이 남긴 음식을 커다란 보올에 넣고 질겅질겅 씹어먹는 일. 그건 엄마들이 해야하는 일 아닌가? 근데 미혼인 내가 왜 이러고 있는거지? 이게 다 아기, 그 놈때문이 아닌지 생각한다. 종일 떼쓰다 새벽녘에 깨어 젊은 부모의 잠을 흐트려놓는 아기. 하도 인상을 구기고 우느라 코 중동에 주름 하나가 길게 그어진 그 아기. 똥을 있는대로 싸대서 기저기안을 타고넘어 다리와 발목까지 넘쳐나게 흩뿌려놓는 바로 그 아기.


그깟 침갖고 뭘 그래?

출산도 했으면서 침 서너대갖고 생난리로 전화를 걸어온다.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고 곁엔 할머니들만 보이고 그녀들 대개는 곁방 맛사지방에서 발이나 허리를 지지며 호명되길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심심도 하고 아플 것도 상상하면서 보내는 시간. 이 또한 아기로 인해 생긴 보기드문 일일 것이다. 동생은 여간해선 침을 맞지 않는 애다. 무통주사는 맞을때만 좋고 맞고나선 후유증이 심했다. 하긴 토실토실한 엉덩이에 감기주사 한대를 맞더라도 열가지의 고민이 떠오르는데 그 딱딱한 허리에 주사를 맞는 일이라니... 여자는 약해도 엄마는 강하단 말, 맞는 말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낮은 포복으로 두통이 기어올라오고 있다. 허리를 지나 어깨죽지로, 이어서 목언저리로... 아무래도 어제 시장에서 무리를 한 듯 싶다. 그 놈의 밥이 뭔지 아빠의 찬이 없다는 말씀하나에, 산모가 입맛이 쓰단 소리 한 줄에, 공부하는 셋째의 북어조림에 대한 열망에 난 자연 시장으로 이끌렸다. 아직 젊은 나이를 생각하고 또 요리를 즐겨하던 습성대로라면 인근의 시장길은 마냥 즐거울 수도 있는 길이었다. 매일 먹는 밥이지만 그 밥속엔 내 금쪽같은 시간이, 내 오롯한 마음이, 내 아울린 느낌과 내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다 들어가있었고 그 밥을 먹고있는 식솔들의 오물조물한 입모양이 꾸덕지게 이쁘단 생각이 들곤 했다. 엄마의 혓바늘을 없애주고 제부의 뾰루지를 달래주고 산모의 커다란 젖에서 꿀같은 젖줄기가 철철 나오길 바래었다.


마루로 거실로 주방으로 나만 졸졸 쫒아다니는 애완견. 아기가 생기며 제일 변화가 심한 건 바로 내 애완견이었다. 녀석은 주방에서 닭고기도 얻어먹고 샤워중인 욕탕앞에서 주인인 나를 기다릴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런데 다른 건 다 해주는 나의 애완견도 등에 파스를 붙여줄 순 없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결혼을 하는걸까? 결혼이 목적에 이용되면 안된단 말, 그건 뭘 모르고 하는 소릴게다. 결혼에도 목적이 있고 서열도 있고 그래서 엄연한 조건도 붙는다.


오늘 또 엄마는 몇시에나 오실라나? 아빠의 까다로운 입맛을 챙겨드리는 일도 제법 즐기게 되었다. 주부가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남자가 업무를 보는 시간과 늘 같다는 걸 알아주는 남자라면 한 번 깊이있게 생각해보고 싶어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