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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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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와 엄마사이.


BY 합격이엄마. 2005-06-18

넌 이제 여자가 아니고 엄마야!
이렇게 소리친 제부는 지금 충청도에서 사장어른들을 모시고
올라오고 있는 중이었다. 그 어른들의 소찬을 장만한답씨고 엄
마는 엊저녁부터 치맛살을 찢어 국을 만들고 시금치에 참기름을
듬뿍 둘러 나물준비에 핏치를 올렸었다. 그렇게 오늘 오후까지 계속된 엄마의 주방일은 어둑신해져서야 끝이 났고 배부른 동생을 위해 나와 엄마, 아빠가 오고가며 국과 밥통, 나물반찬을 이고 지고 날라야했다. 33세에 33평에 새로 입주한 제부는 졸음에 겨운 목소리로 휴게소에 막 들른 중이라고 건짜증을 냈다고 한다.
어떻게 다 가질 수가 있냐?
목감기로 목이 부어 있던 나는 밥통을 이고 오느라 갈증이 나서 동생집 냉장고문을 열어 요쿠르트를 마시며 위로랍씨고 이렇게 말해주었다. 그 말이 오히려 더 동생을 자극시켰던 모양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구? 이게 다 누구때문인데!
그럼 다 제부때문이란 말인가? 난 만 3년을 버티고 또 버티다 임신을 한 동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결혼 초, 그토록 당당하게 이 나라도 이젠 이놈의 혈통주의를 다 벗고 입양문화가 정착되어야한
다고 된소리를 치던 동생이 솔직히 그립던 나다. 그러나 자신의 아이를 갖고 지나가는 갓난쟁이만 보아도, 모빌용품 그 하나만 보아도 눈물 쏙 빠지게 동공이 커지던 동생을 보며 또 이렇게 받아들이며 살아야한단 것이 있단 걸 배웠던 나이기도 했다. 그런 이 애가 자유에 연연해하고 긴 생머리에 집착을 갖고 와이드비젼의 텔레비젼에 욕심을 내고 하는 모습을 보니 둘 다 갖고픈 인간의 욕심에 어이가 없는 나이기도 했다.
이상한 건 너겠지.
난 둘 다 가질 수 없는 여자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지금처럼, 시부모님이 오신단소리 하나에 화들짝 긴장하고 친정집 식구들을 모조리 끌어모아야하는 여자의 이중생활을... 잘 하면 중
간쯤 갈 것이고 잘 못하면 지리한 부부싸움의 연속일 이 시작의 팡파레를!
언젠가 갈비집에서 젊고 늘씬한 여자를 보며 시선을 떼지 못하던 제부때문에 한바탕 부부싸움을 하고 있는 동생내외를 보며 내 미래의 모습에도 저런 것이 들어있을까 잠시 의아해졌다. 그리고 백년이고
천녀이고 여자이고픈 여자와 서른을 넘긴 여자는 지나가던 개도 안 쳐다본다고 크게 웃던 26세의 남동생의 말을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그렇담 아이를 안 낳고 있고 자유가 아직 살아있는 서른을 넘긴 나는 여자인가, 여자가 아닌 것인가?
부른 배가 자랑스러우면서도 내심 그 부른 배로 인해 아름다움을
잃고 자유를 등지고 긴 생머리를 잘라 가지런히 만들어내야하는 동생은 그렇담 정녕 엄마로만 보아야 할 것인가? 여자가 아니고 엄마로만 살아달라고 소리치던 제부였건만 그의 남성다움은 여전히 젊고 아름다운 여자의 다리에 쏠려있는 것을, 본능이 아닌 아버지로만 온전히 보기엔 씁쓸한 무엇이 있었다.
살면서 다 가질 수만 있다면 오죽이나 좋으랴! 엄마도 되고 자유도 있고, 그 자유속에 긴 생머리도 있고, 그 생머리를 날리며 와이드비젼의 텔레비젼도 볼 수만 있다면... 그러나 아이를 넷이나 낳아 허리와 배의 경계선이 불특정해진 엄마의 말에 의하면 그 와이드는 얼마 못 가 망가질 것이란 공산이었다. 그럼에도 사치스럽고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내 딸년이라면서 혀를 끌끌 차는 엄마. 아이를 가져야한다고 내심 걱정을 했던 친정엄마, 내 엄마! 그 친정엄마가 배부른 딸 대신 해 낸 육계장과 나물찬은 오늘밤 시어른들과 시이모들
의 입속으로 깔끔하게 전달될 것이다. 아들이란 말에 너털웃음까지 지었다던 시아버지가 빻아온 햅쌀을 올해도 덤으로 먹을 순 있을까, 내가 주요하게 생각한 건 그뿐이지만!
아름다운 처녀시절을 마감하고 어머니의 길에 접어선 너에게, 난 이런 말이 하고프다.
야, 애낳는 거, 되게 무섭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