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곰솥단지를 안고 갔다. 그 안엔 얼린 뼈한덩이가 들어있었다. 힘좋은 아들을 도서관으로 밀어내고 자식처럼 허위허위 안아들고 간 곰솥은 동생의 입속에 고소한 밥알을 만들어낼 일이다. 조카는 꿀처럼 단 엄마의 젖을 토실토 실 살오른 손가락을 오물려 열심히 젖을 빨아먹을 일이다. 제발 부탁이야. 난 들어줄 수 없다고 잘라말했다. 이틀에 한번꼴로 운동을 다니겠다니. 아이도 갖고 이쁜 몸매도 포기못하겠고. 너무 과욕을 부리는 게 아니냐고 반박했다. 어차 피 결혼이야 양보 반, 희생 반 , 뭐 그런 거 아닌가? 그렇담 너란 앤 전혀 희생정신 이 없어보인단 말까지 했다. 화려한 싱글을 선택했으므로 적당한 날씨에 알맞은 운 동을 다니고 평일낮 서점에 줄창 앉아 읽고픈 책을 다 읽어내고 강아지를 자식삼아 배변연습을 시키러다니고 영화며 연극을 보는 일에 돈 아까운 줄 모르는 나와 남들 다 하는 결혼을 선택해 남편과 아파트를 갖고 그 너른 아파트속에 잡지에나 나올법한 페인트내 가득한 가구들을 보기좋게 열거하고 샘난 친구들앞에 멋스런 집들이도 벌 일 수 있는 동생과 나는 그런대로 서로의 삶을 존중하며 잘 살아내고 있었단 생각을 했다. 적어도 아기가 생기기 전까지는. 조카를 돌본 후 3주가 지나자 쏠쏠한 꼼수에 몸도 배배 꼬이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 면 아파트에 아니 갈까? 조카는 갈수록 가볍지 않았고 온몸비틀기를 하며 자는 통에 안고 있는 팔엔 근육이 생기고 얼굴엔 제 손에 긁힌 반점투성이가 여기저기 묻어났다. 갓 짜낸 꿀젖을 발라 얼굴을 제자리로 돌려놓았다싶다가도 밤새 얼굴을 비벼놓아 끝내 모든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다. 안는 동안에는 비틀고 비비고 울고 찡그리고 오만가지 표정으로 33평을 휘젓던 나를 넉다운시킨 조카이다. 엄마는 100일만을 약속했고 난 이후 론 더는 이렇게 살 순 없겠노라고 동생에게 대못을 쾅쾅 박았다. 동생은 불은 젖을 바닥 에 대이고 침을 맞는 일도 벅찬데 가족들이 하나같이 서운하게 만든다며 전화에다 대 고 울어댔다. 그럼에도 대답이 섣부를 수 없었던 건 나만의 자유를 포기하기엔 난 나를 동생보다 더 사랑한단 증거가 아닐까 생각했다. 여자의 몸이 탄력적이란 건 동생을 보며 알 수 있었다. 젖만 불은 것이 아니고 허리며 다리며 도저히 처녀적 몸매를 상상조차 수 없었다. 남편은 젖소부인이라 놀리며 게임 에 열중을 하고 언니란 사람은 시간만 되면 강아지 밥을 주러 간다며 빠져나가는 통 에 예전의 자신을 비교하며 우울해졌던가 보았다. 자유가 아무리 좋아도 가난할 수 밖에 없단 걸 아줌마가 된 동생은 잘 모르는 눈치다. 부자 아줌마는 가진 것이 많아 된희생이 뒤따르고 가난한 자유는 빈 통장을 보는 일에 주름지게 익숙해져야한단 걸 아직도 모르고 사느냐고 한번쯤 묻고 싶어졌다. 인간이 모든 걸 다 가져야한다면 세 상에 남아나는 건 공기와 먼지뿐일 일이다. 이쁜 돐잡이엄마로 보이고 싶다는데 내가 아는 돐잡이엄마들은 한결같이 짙은 화장에 덜 빠진 몸을 한복속에 그렁그렁 감춘 아 기를 안은 여인들이었던 것 같긴 하다. 양장에 심은하같은 심플한 화장칠을 하고 아예 처녀컨셉을 연출해 사람들앞에 당당한 선을 보이겠다는 동생은 아직 철이 없는 걸까? 엄마보단 여자로 더 살고픈 보통사람인 걸까? 바닥에서 일어나질 못했어. 아기랑 놀아주지도 못하고 누워있던 바닥에서 일어날 수도 없었다며 충격을 받아 또 우는 동생이었다. 우는 일이 반, 실망하는 일이 반. 동생은 며칠전에도 임신 전 입었었 던 청바지와 셔츠들을 남편앞에서 꺼내들고 입어보이며 있는대로 울고 실망하고 그랬 다고 했다. 옷에 사람을 맞추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고 동생은 운동에 대한 결전의 의 지를 전혀 꺽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이틀에 한번. 한 시간씩만 아파트에 와 있어달란 그 말이 또 나올라싶어 얼른 끊어버렸다. 매몰찬 언니. 정떨어지는 언니. 속정없고 감 사납고 에고적인 언니. 난 여러가지 단어들을 떠올리며 내 일을 할 수가 없다. 아기를 가졌다고 할때 마냥 기뻐할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때문이 아니었나 난 생각했다. 여염집 언니들처럼 먼저 시집을 갔더라면 임신이 확정된 동생에게 환한 미소를 흘려 주었을 일인데 난 내 일을 좋아하고 자유를 선호하는 사람답게 포기해야 할 것과 그 렇지못한 것들을 일일이 나열해 설명해주며 자신이 있느냐고 묻기부터 했었다. 아기 는, 저절로 자라나는 들풀이 아니라고. 아기는, 엄마의 양보와 희생정신을 밑거름으 로 천천히 성장하는 양지바른 꽃이라고. 그런 동생은 점집에서 점장이가 말한 그대로 이렇게 말했었다. 넌 낳기만 하겠구나! 딱 그랬었다고. 인생은 보랏빛만은 아닌 것 같다. 결혼생활도 어찌보면 까다로운 직장상사밑에서 호된 업무를 배워내야하는 신입사업의 초조한 마음과 같은 것일 것이다. 남자는 아침밥을 차 려낼 여자를 얻는 대신에 그 여자와 태어날 자식을 위해 고군분투 먹여살려낼 의무를 동 시에 하달받는 일이고 여자는 새 집을 얻고 밥걱정을 더는 대신에 엄마로, 아내로 살아 낼 의무가 우선시되는 삶을 하달받는 일이다. 세상에 공짜가 있어 좋을 때는 백화점에서 경품용으로 하나쯤 더 얹어주는,1개 더, 샴푸와 500원이나 700원쯤으로 아침부터 선정 된 백숙용 닭 한마리 정도일 것이다. 그 샴푸와 닭을 내 것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난 아 침부터 백화점앞에서 진을 치고 있었고 이후로 닭죽을 맛깔스럽게 만들어낼 수 있었 다. 공짜는 이따금이지만 그 이따금이야말로 그래서 더 좋은 것 같다. 동생도 자식이 공 짜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란 걸 어느 순간엔 알아주었음 싶어진다. 유기견으로 보이는 황구놈곁에 사료 몇알을 뿌려두고 집으로 돌아온다. 사람들은 덩치 큰 황 구를 무서워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난 사람이 더 무섭단 생각을 많이 한다. 한입갖고 두말하는 사람. 겉으론 웃지만 돌아서선 욕을 하는 사람. 남의 땅을 내 땅이라고 되는대로 우기는 사람. 그런 각종 사람들이 모여사는 세상이야말로 공짜를 점점 기대하기 힘들어진다. 불쌍한 걸 불쌍한 줄도 몰라주는 박한 사람들. 공원의 그런 사람들을 보고 있다 집에 돌아가서 다시 사료를 갖고 나와 녀석앞에 던져주고 온다. 녀석은 주차된 차들사이로 커다란 덩치를 숨긴 채 나를 두려워듯 바라볼 뿐이다. 가난한 자유야말로 이럴 때 전혀 아름답지 않단 걸 난 잘 알고 있다. 내가 만약 이미 아줌마였다면, 그래서 33평은 안되도 작은 텃밭이라도 먼저 가꾸고 살고 있었더라면 난 저 녀석을 저런 구석에 버려두고 오진 않았을 일이다. 아줌마와 아가씨의 호된 차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