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보니 아들일세!
결혼식장에서 근 1년만에 만난 고모들은 동생의 배에다 대고 하염없이 떠들어댔다. 그 소리에 마알간 눈꽃같던 제부의 눈주름. 난 그 웃음을 한동안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아는 아들이란, 엄마의 붉은 심장이다. 내가 아는 아들이란, 항상 근심덩이이고, 내가 아는 아들이란, 12시가 넘어서야 귀가하고 그러고도 큰소리치는 대상이다. 남동생은 어제도 12시가 임박해서야 들어왔는데 일찍 작파하고 들어왔다며 선처를 호소했고 그 아들로 인해 난 엄마의 아침밥을 대신 해내야했었다. 쪽잠을 잔 덕에 머리가 아프고 허리가 고달팠다.
한 유명한 영화감독이 가족이란, 안 보이는 데선 내다버리고픈 존재라고 했던 말이 귓전을 맴돈다.
올해엔 휴대전화 두 대를 잃어버렸다. 응급실엔 한번을 다녀왔고 교통사고로 인해 병원신세는 두번을 졌다. 한의원과 신경외과의 줄행진이 이어지고 그로 인해 보험료가 대폭 올른데다 설계사의 어이없던 실수로 가족전체가 흥분의 도가니탕이 되기도 했었다. 이리저리 옮겨다니던 병원밥은 하나같이 동생의 의중에 안 들었고 그때마다 도시락행진도 덩달아 이어졌으며 엄청난 몸무게에 더한 체중감은 보는 이에게 어마어마한 중압감을 전해줄 정도가 되었을 무렵 퇴원을 하게 되었었다. 연말엔 나름으론 바쁠 나이, 본인의 말에 의하면 자신도 이젠 성인이라는 것이다. 비경제인구에 속한, 미취업 100만인 대열에 합류한 성인.
디데이를 한달여 앞둔 여동생은 그래서 불만이다. 남동생만 자식이고 자신은 자식이 아니냐고 속앓이를 해온다. 그때마다 아무말도 떠오르지않는 맹한 충격들. 다만 엄마가 입으로만 외치는 말
버릇 한 가지만 떠오를 뿐이다.
딸이 이거여!
엄지가락을 치켜올리는 저 버릇. 우즈베키스탄인지 네팔인지 국적이 불분명했던 아래층 아가씨의 남편이 포대기를 짊어지고 왔을때 엄마가 내뱉던 말이었다.
첫딸이 시작되면서 등을 보이고 있었다던 나의 할아버지와 딸 셋을 두고 점집을 전전했다는 엄마의 차이점은 무얼까? 묵시적으로 두 사람은 사전합의를 거친 것인지도 모른단 생각이 든다. 아들은 반드시 있어야하는 것이라는.
그냥 엎어놓지 그랬어?
파출소엘 다녀온 직후 화가 난 내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는 덜덜 떨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얼굴이었지만 그럼에도 대쪽같은 얼굴로 맞받아쳤다.
너도 시집가봐. 그렇게 되나?
그렇다면 나 역시 엄마처럼 아들과 딸을 차등대우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말일까? 다소 모욕적인 느낌을 받으며 난 굳어졌다. 아빠와 할아버지로 인해 아들을 낳았다던 엄마. 그러나 사실 엄마 자
신이 못내 아들을 바라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엄마는 못 배운 집 딸 둘째 며느리, 그래서 등을 돌린 할아버지를 향해 그토록 아들이 낳고팠는지도 모르겠다. 할아버지는 이후 돌아왔지만 외할머니는 딸네집에 머무르던 내내 친손주들만 줄창 찾아댔었다. 어릴 적의 엄마와 할머니의 말싸움은 같은 소리만 지지부진 흘러나오는 고장난 라디오만 같았다. 왜 내 새끼들은 이뻐할 줄을 모르냐는... 그럴꺼면 차라리 친손주네로 가라는...
라디오가 꺼지면 할머니는 보일러가 고장난 2층 외방에 틀어앉아 성경책을 꺼내들었고 엄마는 안방에 붙박혀 불경책을 읽고 있었다. 엄마는 할머니의 딸이 맞다.
엄마가 구별이라고 생각한 것을 나와 두 여동생은 차별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엄마에겐 아들이 중요할 수 밖에 없었던 몇몇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이 앤 태어날 당시에 천식으로 모진 고생을 했고 아들이란 이유로 사람들의 손을 탄 후 줄곳 서울의 큰병원엘 들락거려야했었다. 또 돌아보면 이마가 깨져있거나 입술이 터져있기가 일쑤였고 잠시 요리를 하다 보면 이웃집 나이어린 꼬마에게 얼굴이 긇히거나 맞은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달려나간 나와 두 동생들. 우리 모두는 그때부터 이 애에게 수호천사였고 보호막이었고 엄마를 대신할 듬직한 하늘이 아니었을까? 나이란 세속의 의미를 갖게 만들었고, 그래서 재물의 지독함을 알게 했으며, 그 일로 불신과 계산과 응용능력을 기르게 했다. 여동생은 시집을 간 이후 엄마의 무신경함에 질려버렸고 난 내 생활에 타격을 입는 일에 진저리를 치고 있었으며 공부를 하겠다던 막내 여동생은 용돈을 달란 말을 입밖에 꺼낼 수도 없이 돼버렸다.
모자라게 길러라.
난 부른 배에 대고 중얼대고 있는 동생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산부인과 의사의 확진이후 여동생의 배는 부푼 만두처럼 하얗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자랑스러운 그 배를 처녀인 언니앞에 드러내놓고 샤워를 하고 맛사지를 받고 동화책을 읽고 하는 일, 난 이 애가 그토록 아들이 갖고 싶었었단 걸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백댄서는 어때?
웃음으로 한 말에 즉각 동생과 제부의 반응이 성난 물처럼 밀려왔다.
말도 안돼!
그럼 무얼 만들고 싶냐고 물었더니 대뜸 의사, 변호사... 이런 게 흘러나온다. 우리때랑 전혀 달라지지않은 저 전근대적 학벌주의. 10년쯤 지나면 유명학원앞에 밤새 진치고 앉아있을 그 누군가를 보게 될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결혼해보니 생각도 달라진다는 동생, 어린 나이에 내리 딸 셋을 낳고 시아버지와 신경전을 벌였을 엄마가 연상됨을 어쩔 수 없었다. 결혼한 여자는 반드시 아들을 낳아야할까? 남자가 반드시 직업이 있어야하는 이유와 같은?
아들!
전화기에 대고 큰소리로 부르는 엄마, 왜 딸들에겐 딸! 이렇게 한번도 불러준 적이 없는 것일까? 아들이라 불리운 남동생은 화답이랍씨고 왜? 꼭 짜증을 내어 말을 한다. 엄마가 하는 소린 다 잔소리로 여기긴 마찬가지인 이 애, 그것 하나만큼은 나와 생각이 꼭같은, 우린 형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