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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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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복하다.


BY 낸시 2005-06-10

아침에 눈을 뜨면 나는 가게자리로 달려가고 싶다.

화단 가장자리를 따라 가득 피어난 채송화를 보고 싶어서다.

연노랑, 진노랑, 하양, 빨강, 분홍, 진분홍, 연분홍, 산호색...나는 채송화가 그리 다양한 색깔을 가진 꽃인 줄 미처 몰랐다.

아침햇살을 맞고 활짝 핀 꽃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뿌듯해진다.

보지 않아도 내 꽃밭을 생각하면 생각만으로도 행복하다.

처음 남편을 따라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왔을 때 그림같은 집에 잘 가꾸어진 정원들이 몹시도 부러웠다.

한국에 돌아가 오층에 살면서 아파트 건물 입구에 튤립뿌리 서른개를 구해 심는 날보고 남편은 미쳤느냐고 하였다.

하지만 그 다음해 봄에 피어난 꽃을 보고 남편도 좋아하였다.

아파트 오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나도 흐뭇하였다.

대여섯 어린아이 서넛이서 그 꽃을 지켜보며 뭐라뭐라 하더니 한 아이가 주위를 둘러보고 꽃을 꺾어 쏜살같이 달아났다.

그 아이가 밉다는 생각보다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예쁘게 느껴졌으면 그랬을까...꽃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져서다.

그 꽃으로 인해 나는 아파트에 사는 다른 이들과 쉽게 친해지게 되었다.

그만큼 눈에 띄게 꽃이 아름다웠다.

화분에 심겨진 꽃이나 꺽어 파는 꽃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올해 처음으로 채송화를 심으면서 나도 그리 이쁠 것이란 기대를 하지 않았다.

물론 채송화가 화사한 꽃인 줄 알고 있었다.

여고시절 학교 화단 가장자리를 따라 피어있던 채송화가 수업시간이면 자꾸 내 눈을 끌던 기억도 있다.

그런데 그 때 보던 채송화보다 훨씬 색깔도 다양하고 풍성하다.

채송화가 텍사스 태양에도 꺽꽂이가 되는 꽃이란 것이 신기하다.

채송화 가지를 뚝뚝 꺽어 흙에 꽂아놓고 삼사일 물을 주면 뿌리가 내려 다시 싱싱해진다.

씨도 여러봉지 뿌렸지만 이렇게 해서 번진  채송화가 지천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처음에는 날더러 미쳤느냐고 하던 남편도 이제 얼마나 협조적인지 모른다.

사실 남편이 없었더라면 난 꽃밭을 만들고 싶은 내꿈을 이루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남편 뿐이 아니다.

지나는 사람마다 좋아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도와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시에서 일하는 사람 하나는 우리 가게 오픈 날자를 묻는다.

그 무렵에 맞추어 그 주변 길을 물청소해서 깨끗하게 해주겠단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우리 음식을 먹어보기도 전에 꽃밭만 보고도 가게 열면 꼭 찾아오겠노라고 한다.

같이 일하기로 한 종업원 중의 하나는 날마다 찾아와 꽃밭을 둘러본다.

돈 받는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옆에 있는 냇물에 떨어진 휴지도 줍는다.

시청에서 아르바이트 하고 있는 학생인데 내가 꽃밭을 더 만들 수 있도록 사람들이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한다.

물론 가게가 자리를 잡은 후에...

나는 안다.

그가 날마다 밤늦은 시간에 찾아오는 것은 행여나 누가 꽃을 훔쳐갈까봐 지켜주기 위해서란 것을...

종업원으로 일하기로 한 사람들은 자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 지 스스로 고민한다.

오전에 일한 사람들이 한 일을 오후에 일 할 사람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생각해 첵크리스트를 작성해 오기도 하고 우리가 만드는 음식이 좀더 건강음식이란 인상을 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고, 자기가 아는 요리법을 소개하기도 한다.

앞에서 손님을 맞이하기로 한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손님에게 좋은 인상을 줄 것인지 연습하고 있다.

서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 말투나 표정은 지적해가며 정말 진지하다.

이 모든 것들을 보면서 나는 정말 행복하다.

많은 사람들이, 특히 남편이 날보고 너무 세상을 모른다고 순진하고 바보같다고 빈정거렸다.

아파트 오층에 살면서 입구에 꽃을 심는 날보고, 남의 집에 살면서 내 돈 들여 잔디밭을 가꾸고 꽃을 사다 심는 날보고, 내 가게에 속한 땅도 아니고 시에 속한 길거리 땅에 꽃밭을 일구는 날보고...

물론 많은 꽃나무를 잃어버렸다.

술 취한 사람들의 발길에 밟히는 꽃도 수두룩하다.

눈에 띄는 꽃을 꺽어 데이트하는 여자친구에게 주고 행복해 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꽃은 없어지는 것보다 죽어지는 것보다 피어나는 꽃이 더 많아서 지금은 화단이 가득 차 보인다.

처음 내가 그곳에 화단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과연 가능할까...의문을 품었던 것 같다.

지금은 모두들 정말 잘했구나..하고 인정한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일부러 차를 멈추고 날보고 웃고 꽃밭이 예쁘다고 인사하고 간다.

수줍어 인사를 잘 못하는 사람들도 내가 먼저 인사를 하면 얼굴에 웃음이 피어나면서 인사를 받는다.

물론 그 중에는 웃을 지 모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열 중 아홉은 내게 가진 그들의 호감이 전해 올 만큼 잘 웃는다.

음식점이 잘 되면 난 더 많은 꽃밭을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다.

시에서 정원관리를 맡아하는 여자가 준 꽃씨도 있다.

그 여자는 삼십년 가까이 그 일을 하고 있다고 하면서 자기네가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었던 일을 해 준 것에 진심으로 고마워하였다.

부억에서 일하기로 한 종업원들은  내가 만든 요리법을 배우기 위해 정말 열심이다.

내가 빨리 부엌에서 벗어나 꽃밭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그들은 나보다 훨씬 음식점 일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요리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도 있고 십여년씩 음식점에서 일 한 사람도 있다.

우리가 쓰는 조리 기구에 대해서도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우리가 미처 모르는 것은 이런 것이 있으니 알아보라고 한다.

내가 서툰 영어로 설명한 요리법을 자기들이 잘하는 영어로 정리해서 사진까지 실어 서로 나누어 보면서 일을 한다.

더 떠벌이며 자랑하고 싶은데 날이 너무 밝았다.

얼른 준비하고 나가야 한다.

잠도 제대로 못자고 바쁘지만 나는 정말 행복하다.

정말 행복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즐기고 고마워하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행복한 지 모른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남편이 날 인정해 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가끔은 빈정거리지만, 나는 안다.

그가 진심으로 인정하기 시작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