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저희남편이 술을 마시고 오는날엔 자정무렵을 전후해 택시를 타고 집으로 오는데
제가 꼭 집앞으로 마중을 나가요.
술마시고 오는 남편이 한시바삐 보고 싶어 나가는게 아니고요
지갑이나 키뭉치 휴대폰 그외 잡다한것들을 차에 두고 내리는바람에
나가서 대기하고 섰다가 그것들을 챙겨와야지
나중에 번거로운일이 없어요.
나가서 기다리고 있으면 아파트입구 상가를 지나쳐 왱 달려들어오는
택시 앞모습만 봐도 저기 우리 술취한 남편이 타고 있구나 담박에 알아봐요.
십수면 갈고닦은 실력이지요.
서귀포에 살때는 주로 새벽 두세시에 남편이 돌아왔어요.
집앞 은행나무 아래서서 새벽하늘을 올려다보면
어찌 그리 별이 크고 반짝거리던지요...
은행나무위에 기어올라가 잠자리채로 저것들을 따다가 금공장을 차리면...
말도 안되는 상상도 하고
외등밑으로 미친듯 방방방 달겨드는 하루살이떼를 무심히 바라보다
비자나무아래 꺼멓게 웅쿠리고섰는 들고양이와 눈이 마주치기도 해요.
그럼, 말없이 서로 한참동안 마주보았지요.
넌 데체 뭣때메 거기 웅쿠리고 있느냐?
아줌만 뭐해요? 거기 우두커니 서서...
이런말을 주고받았던것같기도 하구요..
아뭏든 제가 짐작한 그택시가 영락없이 제앞으로 헤트라이트를 들이대고 멈춰서면
저는 얼른 차옆으로 뛰어가 호텔 뽀이처럼 차문을 열고
차비를 계산하지요.
이사람아,택시비를 마음으로 드려야지,남편이 참견을 하구요.
아니, 택시비를 돈으로 내야지 어떻게 마음으로 내냐구 지청구를 주면
아,돈에다가 마음을 얹어드리란 말이지,그럽니다.
말속에 "마음"자가 섞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저희남편 술에게 마음이 먹힌상태구나 알면됩니다.
마음이 어떻고 저떻고 실갱이를 벌여가며 택시비를 지불하고 남편을 끄집어 내립니다.
곧 주저앉을듯 비틀거리는 남편을 세워놓고 영화에서 본 LA 폴리스맨처럼
안주머니 바깥주머니 샅샅히 더듬어 검문. 지갑,키뭉치, 휴대폰을 확인하고
택시기사분께 수고하셨습니다.안녕히가세요.인사를 해요.
택시기사가 차를 돌리면 엉거주춤 서있던 남편이 택시꽁무니로 옮겨서서
오라이 오라이 택시조수노릇을 해요.
오라이 오라이 이빠이 오라이.....
됐습니다. 괞찮습니다. 택시운전수는 술취한남편이 풀썩 쓰러지며 택시 뒷바퀴밑으로
발이라도 집어넣을까 얼마나 불안할까마는..붕붕 180도 방향을 잘도 바꿔 돌립니다.
아파트입구로 택시가 방향을 바꿔잡으면 조수노릇이 끝난 남편은
이제 90도 각도로 허리를 굽혀 택시운전수분께 절을 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요.
안녕히 가십시요. 수고하셨습니다."
택시운전수는 "아, 예. 안녕히 가세요." 하고 부앙~ 핸들을 돌려 나가는데도
90도 절한번 하고
손한번 흔들고
절한번하고
손한번 흔들고...
택시가 안보일때까지 그러고 있습니다.
처음엔 말리다가 이젠 누가 볼까봐
저사람 내남편 절대 아니란듯
멀직이 서서 바라보다가 그 택시배웅 의식이 끝나면
집으로 데리고 들어옵니다.
밝은날 아침 밝은정신에 물어봐요.
"그게 뭐여. 그래. 남새시럽게. 자기 멕여살리는 회장님 출장가시는것두 아니구
택시꽁무니에 대고 수십번 절을 하냐구. 한번만 하믄 됐지."
남편이 말해요. 얼마냐 고맙냐구. 술취한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니 얼마나 고맙냐구.
그래서 그런다구.왜 어떠냐구요...
아무리 고마워도 앞으로는 절을 한번만 했으면 좋겄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