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308

회심곡


BY 그린미 2005-05-16

 
 

 '一心(일심)으로 精念(정념)은 極樂世界(극락세계)라..............

念佛(염불)이면 同參十方(동삼시방)에 어진 施主任(시주님)네 .......................'

 

 서산대사가 지었다고 추정되는 4.4조의 불교 포교가사로 巫歌(무가)와 상당히 관련이 있는 평민가사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回心曲(회심곡)은 來世(내세)의 인과응보와 忠(충), 孝(효)를 강조하고 있는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내가 이 회심곡을 처음 접한 건 여고시절 이었는데 독실한 불교 신자이셨던 친정 어머님이 다니시던 절에서 우연히 얻어오신 월봉스님의 '회심곡'을 당시에 애지중지 하던 손바닥만한 카세트에 넣고 간간이 듣다보니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었다.

 한낱 스님의 따분한 염불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별 생각 없이 듣다가, 사람이 부모 은공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온갖 희로애락 겪으며 저승길 들어서는 대목에 가서는 온몸에 솜털이 꼿꼿이 곤두서는 아찔함에 결국은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주로 팝송을 즐겨듣던 내 입맛하고는 극과 극을 이룬 장르 였지만  가요보다는 이 회심곡을 더 좋아했는데 어느 날 친정 어머님께서 이 테잎을 빼앗아 가셨다.

 나이도 어린 게 너무 청승을 떨고 애 늙은이 같이 군다는 게 압수의 이유였다.

 딴에는 부모 생각하는 교훈적인 내용이라서 오히려 반기실줄 알았는데 너무 앞질러 가는 게 몸시 걱정스럽고 눈에 거슬리셨던가 보다.
 그 테잎을 다시 손에 넣은 건 내가 결혼 할 무렵에 어머님이 나에게 건네 주셨는데 3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난 이 테잎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그 이후에 대중가수가 부른 곡을 다시 구입해서 또 다른 회심곡을 접하게 되었는데 이 두 개를 번갈아 들으면서도 대중가수가 부른 노래에 더 마음이 쏠렸다.
 같은 회심곡이라도 승려가 부르는 건 종교적인 것과 부모님을 동시에 생각게 하는 묘한 힘이 있었지만 대중가수가 부른 노래는 부모님을 먼저 떠 올리게 했기에 내 가슴에 더 깊게 감동을 남겼기 때문이다.


  난 의외로 참 눈물이 많고 여린 편이라고 생각한다.

  연속극은 말 할 것도 없지만  심장을 후비는 듯한 음악을 들어도 난 온몸이 젖어 버린다.

  이 시대 최고의 소리꾼이라고 일컫는 장 사익 님의 '하늘로 가는 길'은 끝까지 듣지 못하고 목이 메었고, Commodores 'Three times a lady'의 마지막 가사 ' I love you~~~~'는 기어이 나를 울렸다.

 감정의 깊이가 가늠이 되지 않은 탓인지 너무 쉽게 주변 상황에 동화되고 몰입하는 게 때때로 나를 곤혹스럽게도 했지만 내 감정을 그때그때 닦달하고 조절할 수 있을 만큼 성숙되지는 않았나 보다.
 이 노래를 부르는 대중가수가 꽹과리를 치면서 구슬프게 목청 높이는 부분에서 꾸역꾸역 밀려 올라오는 덩어리의 정체는 역시 부모님이셨다.
 회심곡에 빠져드는 순간부터 줄곧 머릿속은 부모님이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계셨다.
 여든을 훌쩍 넘기신 아버님, 아버님 연세에 뒤질세라 바짝 쫓으시는 어머님을 생각하면 이 회심곡이 아니더라도 난 항상 가슴이 아리고 눈가가 붉어졌다.
 애지중지 키운 자식들 다 제자리 찾아 떠나고 어쩌다 한번씩 얼굴 들이미는 자식들은 하룻밤도 유하지 못하고 서있던 자리 온기마저 느낄 새 없이 휘적휘적 뒤 한번 안 돌아보고 바람같이 가버린다.
 '어머님전 살을 빌고, 아버님전 뼈를 받고,............석 달만에 피 모으고, 여섯 달만에 육신이 생겨 열 달 만삭 고이 채워 내 육신이 탄생하니............'
 그렇게 해서 세상밖에 나온 자식들도 어느 듯 부모님 나이가 되어서 이승을 이별하는 문 턱 위에 서있다.
 그 자식의 자식도 그 부모의 부모도 모두가 가야하는 마지막 길은 오로지 외길뿐이었다.
 
 이 회심곡의 매력은 사람의 마음을 정화 시키는 거름종이 같다. - 내 경우에는.
 마음이 어지럽고 스스로의 감정이 주체할 수 없는 나락으로 곤두박질 치면서 허물어 질려고 할 때 나를 받쳐주는 지지대 역할 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다른 노래는 반복해서 들을 경우 싫증이 나거나 밋밋해 지기 일쑤지만 이 회심곡은 들을수록 심장에 펌프질 하는 마중물 같았다.
 회심곡과 부모님이 등식관계가 성립되고 있다면 엄살이라고 혹자는 고개 저을지 모르지만 요동치는 내 의식을 잠재우는 데는 부모님 버금 가는 게 없다.
 숙연해 지고, 경건해지고, 한층 성숙 된 듯한 어른스러움에 어느 듯 눈가에 고인 축축한 물기가 가슴까지 적시고 있었다.
 염세주의에 빠질 것 같은 불안함은 없으나 삶이 너무 쳐지는 것 같은 약간의 걱정스러움이 아주 없지는 않다.


 부모님 곁을 떠나온 지 어언 스무 해를 훨씬 넘겼고 내 딸아이가 그때의 내 나이를 먹기 시작할 때부터 난 어느 샌가 부모님의 자리에서 딸애를 지켜보는 입장이 되었다.
 난 영원한 딸로서 부모님 곁에 있을 줄 알았는데, 내가 부모 입장이 되고 보니 내 딸아이가 영원히 내 옆에 있지 않아야 함을 알았고 서서히 무너져 오는 가슴은 부모님의 아픈 가슴을 닮아가고 있었다.
 요즘 들어서 부쩍 이 회심곡에 심취하는 이유도 회심곡 가사처럼 이젠 부모님을 놓아 드려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죽음의 길'과 '저승사자'의 대목에서는 머리끝이 섬뜩할 정도로 가사가 적나라하다.
 第一殿(제일전)에 秦廣大王(진광대왕)에서부터 第十殿(제십전) 轉輪大王(전륜대왕)까지 열시왕(十王)이 부리는 使者(사자)가 데려갈 사람 이름 부르는 부분에서도 부모님이 생각났고, 저승 문턱에서 사자에게 사정하는 죄인들을 쇠뭉치로 등을 쳐서 서두르는 대목에서는 초점 잃은 아버님의 회색눈동자가 생각나서 또다시 울음을 쏟아야 했다.
 어이해서 사람 한평생 가는 길이 이렇게도 서럽고 굴곡 지는 지 울대의 통증이 멈추지 않았다.
 이 회심곡을 다 듣고 나면 온몸의 땀구멍에서는 번번이 찬바람이 새어 나옴을 느꼈다.
 한기가 드는 몸살을 하면서도 끈덕지게 듣고 또 듣는 이 미련함을 무엇으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초파일이라서 내가 다니던 절에 늦은 시간이지만 가야했다.- 오전에는 너무 바빴다.
 그냥 지나치기엔 가시 같은 걸림돌이 목 한 가운데를 눌렀기 때문에 내 발걸음은 빨라지기 시작했다.
 차안에 넣어둔 회심곡 테잎은 저절로 앞뒤를 들락거리며 쉬지 않고 꽹과리를 쳐 대었고 굽이굽이 꺾여서 넘어가는 가수의 목 메인 한풀이가 산사를 향하는 마음에 불을 지폈다.
 이 날 만큼은 남편도 이 회심곡을 거부하지 않았다.
 남편도 회심곡을 좋아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고개를 갸웃 거렸지만 막상 가사 한 구절 한 구절 의미를 새겨듣고는 돌아가신 시부모님 생각에 목이 잠기는 듯 눈자위가 붉어졌다.
 
 저녁 예불 시간이 조금 남아 있었지만 어느 듯  법당으로 종종 걸음 치시는 주지스님의 반들거리는 뒷머리가 낯익게 다가왔다.
 대웅전 문턱을 넘어서면서부터 목젖을 누르는 압박이 통증을 가져왔다.
 가지런히 두 손 모아 합장하고 五體投地(오체투지)로 엎드려 맘속에 담아둔 덩어리 쏟아 낼려고 입 속에 가둔 숨 천천히 몰아 쉬었다.
 '관세음보살...........관세음 보살...........'
 입 밖으론 관세음 보살 염불이 새어 나왔지만 머릿속은 어릴 적 내 손잡고 '봉암사' 일주문을 들어서시던 어머님의 회색 저고리 옷고름이 너울너울 눈앞을 가렸다.
그리고 회심곡과 꽹과리 소리가 쉬지 않고 귓전을 때렸다.

유난히 낯 갈이를 많이 한 탓에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는 항상 어머니의 치맛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절에만 가면 혼자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용감성을 보이기도 했었다.
어머님은 평소에 잔병치레를 많이 하셨지만 절에만 다녀오시면 한결 나아진 모습으로 우리에게 종교의 위대함을 몸소 보여 주신 뒤로 나도 불교에 歸依(귀의)하게 되었는 것 같다.

 

 종교를 가진 사람치고는 너무 게으르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발길은 멀어졌지만 내가 아쉬울 때면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 스님, 제가 너무 뻔뻔합니다............"

 주지스님은 빙그레 웃으신다.

 "보살님, 부처님은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잡습니다. 편하게 오고 가십시오....."

 합장하여 모은 두 손이 자꾸만 떨려왔다.

 

 추녀 끝에 달린 풍경의 청아한 소리가 해질녁 산사에 길게 꼬리를 드리운 채 부서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