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 남편은 의젓한 모범생이었다.
모두들 철딱서니 없이 뺀질거리고 제대로 공부하는 아이가 없던 시골학교에서 유일하게 꾀 피우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였다.
당연히 일등은 도맡아서 하였고, 일류 중학교에 거뜬히 합격하였다.
시골학교에선 그리 흔치 않은 일이었다.
일류 중학교 교복을 입고 모자를 쓰고 다니던 그를 설레는 가슴으로 훔쳐보던 생각이 난다.
남편은 자기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우리 아이들을 야단친다.
철딱서니 없다고, 자기는 그 나이에 그러지 않았노라고...
난 눈도 깜짝이지 않고 거짓말을 할 줄 아는 아이였다.
선생님이 풀어오라는 수련장 숙제는 해답을 베껴내고 다 맞으면 의심할까봐 고의로 한 둘은 틀리게 쓰는 교활함도 있었다.
양이 많은 숙제는 다해가면 의심 받을까... 일부러 숙제를 덜해 가기도 하였다.
그나마 남아서 하는 수련장 답 맞추기가 싫어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고 빠지기도 잘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담임은 우리가 시험을 치던 날 내가 시험치는 학교 담장 위로 기어 올라 엎드려팔굽혀펴기 하는 날 큰소리로 응원하였다.
그 해 나는 세 번의 시험을 치고 세 번 다 떨어지고도 속상해 할 줄도 몰랐다.
혹시 하기 싫은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는 행운을 얻게 되는 것이나 아닌지... 싶어 오히려 좋아했다.
그러다 국민학교를 일년 더 다니는 수모를 겪어야 했지만 그다지 창피한 줄도 몰랐던 모양이다.
그래도 공부하는 것은 여전히 싫었던 것을 보면...
아무튼 남편과 달리 난 철딱서니 없는 아이였다.
난 아이들을 보며 엄마는 너희 나이였을 때 정말 철이 없었다고 말한다.
자기들은 철이 없긴 하지만 엄마보다는 낫다고 아이들이 낄낄 웃는다.
아이들이 잘못해도 난 그다지 화가 나지 않는다.
그 나이에 나는 더 나쁜 짓도 했는데...하면서 절로 이해가 된다.
공부 잘하고, 얼굴 허옇고, 키도 크고, 그 시절 남편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울남편을 좋아하지 않은 여학생이 있었으면 나와보라고 하던 동창여자애의 말이 아니더라도 남편을 좋아한다고 소문난 여자애들은 많았다.
그런 남편과 같이 살면서 나는 툭하면 남편을 구박한다.
모범생은 교과서만 알지 그 밖의 세상은 모른다고 바보라고 부른다.
모범생은 멍청해서 사는 것이 교과서 같은 줄만 안다고 비난한다.
모범생 남편은 항상 내일이 불안하다.
준비되지 않은 내일 때문에 오늘 맘 놓고 웃고 살 수가 없다.
날라리 나는, 내일 일은 난 몰라요...다.
준비된 내일은 없다고 한다.
나만 모르는 것이 아니고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강변한다.
그러니 주어진 순간을 즐기며 살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내일 일이 어찌되건 오늘 한송이 꽃을 바라보며 감탄하고 그 아름다움에 가슴 설레며 기쁘다.
남편은 그런 내가 한심하기만 하다.
우리는 모두 내일을 위해 일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범생과 날라리가 준비하는 내일은 조금 다르다.
모범생은 내일을 위해서 오늘을 희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날라리는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내일을 위해서 확실한 오늘을 희생할 수는 없다.
그러니 내일을 준비하는 것도 오늘 기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겠다고 한다.
남편은 그런 내가 답답하다.
나는 그런 남편이 답답하다.
"야, 좀 웃고 살자... 웃는데 돈 드냐?... 기왕 심은 꽃인데 보고 즐기고 살면 좀 좋으냐..."
밝은 미래를 위해 날마다 근심 덩어리인 오늘이 모여 이루어지는 남편의 일생을 보며 안쓰럽다.
내일은 어찌될지 모르지만 날마다 즐거운 오늘이 모여 이루어지는 일생이 행복한 것 아니냐고 물어도 그는 그것을 도무지 이해할 줄 모른다.
답답한 일이다.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