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결혼 25주년이 되었다.
30에 한 늦은 결혼이었다.
시할머니에 남편 형제가 6남매, 대가족이었다.
이미 시아버님은 50대 중반에 정년 퇴직을 하시고 집에 계셨다.
처음에 시집살이 하면서 느낀 건 자식들이 모두 효자라는 것이었다.
시아버님이 워낙 당신 주장이 강하시니
모두 아버님 말씀이라면 별로 이의 없이 '예,예' 하는 분위기였다.
아버님은 집에서도 딸들이 편안한 반바지를 못입게 하셨다.
시대가 80년대인데도 말이다.
그러니 딸들은 2층에서 편한 반바지를 입고 있다가도 아래층에 내려올 때는
월남 치마를 그 위에 덧입고 내려왔다.
한마디로 눈가림을 한 것이다.
아버지 잔소리가 듣기 싫으니까...
아버님은 경제 활동을 안하시니 세상 돌아가는 걸 잘 모르시고
그저 집에서 사서삼경을 읽으셨다.
그러니 물가가 어떻고 여자들 옷값이 어떤지 모르셨다.
시누들은 옷을 10만원에 사면 5만원에 샀다고 아버지를 속였다.
아버지가 무슨 옷이 그리 비싸냐고 난리를 하시는게 귀찮아서.
그래서 집은 조용했다.
매사가 그랬다.
어느새 아버님은 뒷방 노인내가 되어 있었다.
객관적으로 볼 때는 자식들이 아버지 뜻 안거스르는 효자 효녀로 보였지만.
내가 보기에는 노인을 점점 더 소외시켰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와 생각해 보니 아버님의 치매가 이미 10여 년 전부터 조금씩 시작되었던 것 같다.
매일 똑같은 말씀을 처음 하시는 것처럼 하시는데
그 내용이 토씨하나 안틀리게
마치 녹음 테이프를 틀어놓은 것처럼 하시는 거다.
내용은 당신의 가장 화려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러시더니 어느날엔가는 입에 담기에도 뭐한 육두문자 욕을 하시는 거다.
뇌의 어느 부분이 파괴되면 감정 조절도 안돼고 욕도 하고 그런단다.
나중에 머리 MRI 촬영을 해보고 난 후 의사로 부터 들은 이야기다.
그 후 상상할 수도 없는 힘든 과정을 거쳐 지금은 거의 식물 인간 처럼 되셔서
침대에 누워 계신다.
당신이 하실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이...
그런 상태로 3년째.
무슨 생각은 하시는걸까.
이미 뇌세포가 많이 파괴되어 말씀도 못하시고 사람도 못알아보신다.
내일은 어버이날,
어머님은 시동생집으로 휴가 보내드리고,
아버님께는 그런 날 흔히 할 수 있는 덕담 한마디 해드릴 수가 없어
심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