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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주게 되어있다??


BY 그린미 2005-04-18


 
   누구나 자기에게 돌아올 배당이나 이익을 챙길려는 건 당연하지만 그것이 온당하거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면 나무라거나 잘못된 일은 아니다.

 내 것 가지고 내가 권리 행사하는데 배 놔라 감 놔라 하는 것 자체가 주제 넘을 수도 있지만 얼토당토 안한 귄리 내 세우는데는 할말이 없어진다.

 며칠전 장애인 목욕 봉사를 나간 적이 있는데 마침 연세 드신 장애인 할머니를 만나 뵙지 못하고 허탕치며 돌아오면서 같이 간 봉사자가 겪은 얘기를 듣고 나니 속이 바글거리는 것 같았다.

 그 봉사자의 얘기는 한마디로 일축을 하고 지나칠 수도 있는 얘기였지만 사회 전반에 이런 사고가 자리 잡고 있다면 내 몸 안 아끼고 내 돈 들여가면서 사회의 어두운 구석 훑고있는 사람들의 열정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내가 몸담고 있는 장애인 봉사 단체는 그야말로 무보수로 후원금까지 내면서 서른 명이 넘는 회원들이 팀을 짜서 목욕, 주방, 재택 봉사로 나누어서 한 달 내내 움직이고 있는 순순한 주부들로 이루어진 봉사단체이다.

 얼굴 내밀고 눈 도장을 찍기 위한 것도 아니고 칭찬 받을려고 의도적으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뭔가 뜻깊고 보람 있게 보내는 일을 하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조직된 단체이다.

 말 그대로 '自願奉士'는 스스로 원해서 몸던지는 일이다.

 그러기에 이런저런 얘기도 귓등으로 흘려듣는 배포나 아량 그리고 이해심을 가지고 있어야 전천후로 움직일수 있는데 사소한 얘기도 다 낚아채서 스트레스 받는다면 자격미달인 셈이다.

 그렇지만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생각 없는 소리엔 맥이 빠질수 밖에 없다.

 

 여든을 넘긴 장애인 부부가 있다.

 자식들도 모두 출세를 해서 각각 객지에서 여유 있는 생활하는데 이 노부부는 시골에서 어렵게 살고 있다.

 자식이 있으니 영세민으로 지정은 안되었지만 장애인으로 등록이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봉사자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목욕봉사는 특수하게 제작된 차가 움직이는데 이 차에는 욕조와 물을 데우는 보일러 시설이 되어 있지만 협소한 집일 경우엔 욕조를 들일수가 없어서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씻기고 뒷정리하는데 두 사람의 힘으로는 벅찼지만 그래도 사명감을 가지고 일했다.

 두 부부는 미안해서 여러 차례 인사를 했지만 들려오는 그 자식들의 얘기는 차라리 안 듣기만 못했다.

 고맙고 미안한 맘에 자식들에게 얘기를 했더니 그 자식들은 자원봉사자들이 보수를 받고 일 한다고 떠들었단다.

 그러니 미안하게 생각하거나 고맙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부모를 나무랐단다.

 '다 해주게 되어 있어서 해 주는 거니까............'

 물론 나라에서 복지정책에 힘을 쏟고 후생시설에 투자를 해서 누구나 고르고 평등하게 생활할 권리가 있기에 국가는 의무적으로 해야만 하는 사업이고 국민은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를 누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넉넉치못한 국가재정으로는 그 많은 장애인 한사람 한사람을 목욕시키고 돌봐 주는덴 한계가 있다고 본다.

 그 틈새를 우리 봉사자들이 뛰어 들어서 국가가 할 일을 대신해서 해 주고 있지만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은 삐딱하기만 하다.

 마치 보수나 다른 경로로 적잖은 대우를 받고 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 자기들이 도움 받고 있는 건 당연히 나라에서 돈을 대 주고 있기 때문에 하등의 미안함이나 신세 진다는 생각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자식은 자식노릇 옳게 못하면서 국가는 국가가 할 일을 당연히 해야 한다는 어쩌면 억지를 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해 주게 되어 있다'는 소리를 참으로 듣기 싫어 할 때가 있었다.

 오래 전 공직에 있을 때 이 소리를 들으면 잡고 있던 펜대 집어 던지고 싶었었다.

 창구에서는 여러 종류의 증빙서류를 떼어 주는데 어이없는 일을 겪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범죄 사실을 기재하지 말라고 한다든지 나이를 속여서 떼어 달라든지 심한 경우엔 이혼 사유를 적지말고 미혼으로 둔갑시켜 달라고도 했다.

 공문서 위조가 어떤 건지도 모르면서 자기들 입맛에 맞게 맞춤형 서류를 원했다.

 안 된다고 거절했을 때 그들이 으례히 하는 소리가 '해 주게 되어 있는데 왜 안 해 주느냐' 하는 소리다.

 '해 주게 되어 있는 것'이 무언지도 모르면서 공직자는 무조건 국민이 원하면 해 주게 되어 있다고 밀어 부치는 부류들을 보게되면 너무나 속이 상했었다.

 당연한 것을 해 달라면 속상할 게 없지만 부당한 것을 당연시하는 짧은 소견머리엔 달리 할말이 없어진다.

무지에서 오는 어불성설이라고 한켠으로 미루어 놓았지만 ' 해 주게 되어 있다'라는 말은 결코 썩 듣기 유쾌한 소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리 당연한 것이라지만 마치 맡겨놓은 물건 되 찾아가는 듯한 모양새만은 보여 주지 말았으면 하는 맘이었다.